본문 바로가기

일기장/2003

바지가 벗겨졌다.

그렇다. 입고 있던 바지가 벗겨졌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과외가 끝나면 사촌형네 집에서 오락하며 밤을 새우기 위해 집을 나서던 어제

오후, 창밖에는 심한 사선을 그리며 빗발이 내리치고 있었다. 긴바지를 치덕치덕 끌어가며 가기 싫었

던 나는 마침 방학이고 인천 내에서만 돌아다니는 기분을 오랜만에 느껴 보고 싶어 엠티등에서 물놀

이 갈 때나 입는 펑퍼짐한 반바지를 꺼내 입었다. 허리조임은 고무였다.


과외를 마치고 예정대로 오락을 하며 밤을 새운 뒤 또 과외를 하기 위해 나서는 길이었다. 길을

건너기 위해 서 있던 곳은 사거리, 게다가 8차선이 서로 교차하는 곳이었는데, 그곳에서 허리춤을

슬쩍슬쩍 추다가 뜬금없이 바지가 확 내려간 것이다. 그동안 살이 많이 빠져있던 것도 한 원인일

테고 바지 안의 한 벌이 어제는 있었는데 오늘은 모종의 사정으로 없어진 것도 한 원인이었을 것

이다.


마침 신호가 바뀌어 차들은 스윽스윽 지나갔다. 어쩐지 잽싸게 치켜 입으면 더욱 민망할 것 같아

흔히 있는 일이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려 노력하며 천천히 끌어올려 입었는데, 여하튼 근래 있었던

가장 당황스러운 순간 중의 하나였다. 덧붙여 말하면 마침 KTF에서 온 문자를 보느라고 손은 올려져

있어서 더욱 당황스러웠다.



교훈. 집밖에 나갈 때는 꼭 팬티를 입자.

'일기장 > 2003' 카테고리의 다른 글

...  (14) 2003.06.30
개고기  (2) 2003.06.30
은하수  (5) 2003.06.27
다녀왔소  (2) 2003.06.26
방학  (10) 2003.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