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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4

민망한 이야기

아침나절에 물이 떨어져서 근처에 있는 편의점으로 물을 사러 갔었다. 비가 오는 와중에 슬렁슬렁

걸어 간 것이라 기분이 과히 나쁘지 않아 물을 들고서도 이리저리 고개를 기웃거리는 가운데 계산

대 옆에 놓여져 있는 콘돔이 눈에 띄었다. 하나는 빨간 색으로 딸기가 그려져 있고 하나는 노란 색

으로 바나나가 그려져 있었다. 딱히 여행이 이어지는 여름시즌의 초입이어서라기보다는 어떤 것이든

경험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나의 신념이 드디어 편의점에서의 첫 콘돔 구입을 부추겼다.


'저, 딸기맛 콘돔 하나 주세요.'


그 말에 왜 주인이 그렇게 대답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아니, 무슨 말을 하든지 말을 하면서

원하는 상품을 싸 줬더라면 어쨌든 황망하더라도 사서 들고는 왔을 것이다. 나는 손하나 까딱 안

하고 멀뚱멀뚱 날 쳐다보며 내뱉은 주인의 대답에 어쩐지 얼굴이 시뻘개져서 허둥지둥 집으로 돌아

왔다.


'손님, 딸기맛 콘돔이 아니고 딸기향 콘돔입니다.'


집에 와서 두어시간이 지났는데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지금까지, 나는 내가 왜 이렇게 민망해 하는

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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