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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12

<멋진 몰카 >- 완전무결의 컨시어지

 

 

 

 

 

영화 '멋진 악몽'의 개봉 기념으로 일본에서 방영되었던 드라마 '멋진 몰카'. 隱이 '숨다, 몰래'의 뜻이고 '撮'이

 

'취하다', 현대 한자에서는 '찍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으니 합치면 '몰래 찍다'가 된다. '몰카'라는 우리식 표현

 

멋지게 대응되는, 좋은 제목이다. 미타니 코키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인지 어떤지, 아무튼 어떤 분이

 

한글 자막을 만들어 함께 올려 주었길래 고맙게 보았다.

 

 

 

 

 

 

 

 

 

 

'멋진 몰카'는 영화 '멋진 악몽'의 캐스트들이 전부 등장하여 찍은 새로운 TV 드라마이다. 영화에서 패전 무사의

 

유령을 법정의 증인으로 세우는 기상천외한 발상을 했던 여 변호사 후카츠 에리가 드라마에서도 다시 주인공을

 

맡았다. 이 작품에서 그녀의 역할은 손님들의 부탁을 충실히 들어주는 '컨시어지'. 미타니 코키의 영화를 쭉 보

 

아왔던 이라면 이 설정에서부터 웃음이 나기 시작할 것이다. 호텔이라는 제한된 공간, '손님들의 부탁이라면 무

 

엇이든 들어준다'는 '신념'을 가진 주인공, 그리고 그 신념을 뒤흔들 상황과 주변 캐릭터들. 감독의 장기 중 장기

 

이다.

 

 

 

 

 

 

 

 

 

 

작품의 구조는 간단하다. 주인공의 신분과 신념을 소개하는 프롤로그, 한 명씩의 캐릭터가 등장하여 주인공과 2

 

인극을 펼치는 여덟 개의 단막극, 그리고 다시 주인공에게로 포커스를 맞추는 에필로그. 영화에서는 많이 시도

 

되지 않았지만, 연극에서는 드물다고는 할 수 없는 구조이다. 작품을 보면서 생각한 것인데, 특히 이번에는 미타

 

니 코키가 연극 '굿 닥터'를 의식하며 집필을 하지 않았을까 나는 강력히 의심하였다. '굿 닥터'는 '써야만 한다'

 

는 신념을 가진 작가가 머리 속으로 구상하는 이런저런 이야기가 십여 개의 단막극으로 상연되는 연극이며, 국

 

내에는 백재현 씨가 '루나틱'이라는 뮤지컬로 각색하여 유명세를 탄 바 있고, 개인적으로는 상연했던 공연 가운

 

가장 많은 추억이 어린 작품이기도 하다.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 가장 좋아하는 연극의 다른 버전을 보여준다

 

면, 기쁘지 않고 배길 수 있겠나. 위 사진은 연극에서 '막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 스위트 룸의 앞 복도이다.

 

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새로운 막이 시작된다.  

 

 

 

 

 

 

 

 

 

 

 

 

 

영화와 완전히 상관 없는, 새로운 내용이 전개되는 것은 아니다. 컨시어지의 도움을 요청한 첫 번째 손님은 뮤지

 

컬의 안무가. 그가 안무를 만들지 못해 고생하고 있는 뮤지컬의 제목은 'once in a blue moon'.  영화 '멋진 악몽'

 

의 영미권 제목이다. 여기에서 나오는 BGM 뿐 아니라, 드라마 전체에 나오는 음악들은 모두 '멋진 악몽'의 OST

 

에 실려 있는 것들이다.

 

 

 

 

 

 

 

 

 

두 번째 손님은 무려 미타니 코키 감독 자신. 예전의 인터뷰에서, 대학 시절 연극부에 있을 때에 연기를 무척 잘

 

했지만 극작을 더 잘 했기 때문에 연출의 길로 들어섰다는, 사나이다운 일갈을 읽은 적이 있었다. 일갈에 필적할

 

만한 연기는 아니지만, 아무튼 새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바짝 긴장한 감독 역할을 맡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영화가 재미있었다는 컨시어지의 평에 기뻐서 춤을 추기 시작하는 미타니 코키.

 

 

 

 

 

 

 

 

 

 

그러나 솔직히 말해달라는 요구에 컨시어지가 '앞부분이 좀 길었던 것 같다'는 평을 하자

 

 

 

 

 

 

 

 

 

 

 

 

 

광분하기 시작한다. 나는 혼자 보다가 이 부분에서 한참 웃었다. 미타니 코키 영화의 웃음의 핵심은 촘촘히 짜

 

놓은 설정들이 인물들 간의 충돌이나 상황의 변이로 인해 연쇄적으로 꼬이는 데에서 나오기 때문에, 설정을 잘

 

보여주어야 하는 앞부분이 다소 '길고 지루하다'는 것은 그의 영화를 늘 따라다니는 악평 가운데 하나이다. 특히

 

이번 영화에서는 팬인 나조차 '이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렇게까지 긴 앞부분이 필요할까?'하고 속으로 갸웃

 

을 정도였는데, 그걸 캐릭터로 승화시키다니. 하나 더. 이 단막극에서 감독은 '결말도 좀 긴 것 같다'는 평을 듣

 

고는 미쳐 날뛰게 된다.   

 

 

 

 

 

 

 

 

 

 

 

 

귀여운 영화 홍보 끝에, '손님이 원한다면 무엇이든지'라는 컨시어지의 신념을 방해하는 캐릭터들이 본격적으로

 

속속 등장한다. 사진을 찍다가 흥분하기 시작하면 옷을 벗어 던지는 사진가.

 

 

 

 

 

 

 

 

 

 

내일 요리 생방송이 잡혔는데, 실제로는 스스로 요리를 전혀 해 본 적이 없는 요리 연구가.

 

 

 

 

 

 

 

 

 

 

 

 

 

새로 '상자에 들어가는' 곡예를 연습 중이지만 상자에 완전히 들어가지 못하고 계속 머리나 다리가 삐져 나오는

 

곡예가. 곡예가 역할에는, 영화에서는 후카츠 에리의 죽은 아버지 역할을 맡았던 쿠사나기 츠요시, 초난강 씨가

 

열연해 주었다.  

 

 

 

 

 

 

 

 

 

 

 

 

 

그리고 이 홈페이지에서 집요하게 나의 경애심을 표현해 온 여배우, 토다 케이코. 국회의원인 아버지와 그 아버

 

지를 따라 국회의원이 된 아들, 부자 2대를 손님으로 모신 고급 콜걸 역할을 맡으셨다. 부자 모두, 그녀의 치명

 

적인 매력을 견뎌내지 못하고 섹스 도중 그녀의 위에서 복상사하였다. 암요. 지당하십니다.  

 

 

 

 

 

 

 

 

 

 

 

 

 

 

 

 

 

 

 

 

 

 

암요, 지당하십니다.

 

 

 

 

 

 

 

 

 

 

 

 

 

 

 

 

 

단막극의 마지막 에피소드는 역시 '멋진 악몽'의 두 주연 중 한 명이었던 니시다 토시유키가 등장하였다. 평범한

 

샐러리맨이었으나 눈 앞의 회사 공금을 보고는 그만 갑작스러운 충동에 도둑질을 한 그. 사치를 모르고 산 인생

 

의 끝에 단 한 번 돈을 펑펑 쓰고 싶어 이 비싼 호텔을 찾아온 것이다. 기본적으로 웃음에 깊이 방점이 찍혀 있는

 

이 각본에서 페이소스 어린 연기를 함께 보여주었다. 이런 배우와 지속적으로 함께 일하는 감독은 참으로 행복

 

하다 할 것이다.

 

 

 

 

 

 

 

 

 

 

 

 

 

경찰서에 자수하러 가기 전 그가 컨시어지에 부탁한 마지막 소원은, 누군가를 도와주고 '고맙다'는 말을 듣는

 

것. 그냥 '고맙다'는 말을 들으면 안 되고 반드시 고맙다는 말을 들을 만한 일을 해야 하는 것이 핵심이다. 팬이

 

라면 예상하시겠지만, 아저씨가 우물쭈물하다가 제안한 그 '일'은 괴상한 것이고, 고맙다는 말을 듣기 어려운 성

 

격의 것이다. 이 부분은 직접 감상해 주시라.  

 

 

 

 

 

 

 

 

 

 

우여곡절 끝에 마지막 손님의 요청까지 다 들어준 주인공. 흐뭇한 마음으로 방을 둘러보다가 숨어있는 '몰카'를

 

발견한다.

 

 

 

 

 

 

 

 

 

 

훔쳐보고 있었던 것은 호텔의 장기 투숙객 중 한 명. 스위트 룸 바로 아래의 방을 빌려 오랫동안 도촬을 하고 있

 

었다. 배역은 달라졌지만, 영화 '멋진 악몽'의 헤어스타일 그대로 등장.

 

 

 

 

 

 

 

 

 

 

 

 

 

오랫동안 스위트 룸의 손님들을 몰래 촬영해 왔던 이 아저씨. 경찰에게 팔을 붙들려 끌려나가기 전, 주인공 컨시

 

어지에게 하고 싶은 말이 한 마디 있다며 잠깐의 시간을 부탁한다.

 

 

 

 

 

 

 

 

 

 

 

 

 

아저씨에게도 할 말은 있었다. 멋진 컨시어지의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손님들의 요청을 한 번도 제대로 끝마친

 

적 없는 '최악'의 컨시어지. 이 컨시어지 때문에 그의 도촬은 빛이 바랬다. 제대로 된 컨시어지를 도촬하다가 잡

 

혔더라면 분하지나 않았을 것이다.

 

 

 

 

 

 

 

 

 

사실 주인공은 내내 힘들어하고 있었다. 컨시어지라는 직업을 지망한 것이 아니라 본래는 마케팅 과에 있었는데

 

컨시어지는 여자가 맡아야 한다고 해서 갑자기 컨시어지가 된 주인공. 손님들의 요구 자체가 괴상하긴 했지만

 

아무튼 손님의 요청을 끝까지 제대로 들어주지 못했다는 것에 자책하고, 또 자신이 이 직업에 어울리는 사람일

 

까를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나...

 

 

 

 

 

 

 

 

 

 

 

 

 

 

멋진 말 남기고 경찰들 인솔하여 성큼성큼 돌아서는 몰카 현행범.

 

 

 

 

 

 

 

 

 

 

 

 

 

 

정말 뭐하는 놈인지는 끝까지 안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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