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기장/2006

매일은 아니라지만

1주일에 보통 너댓번의 꼴로 달리기를 이어나가고 있다. 생애의 가장 큰 세 장애물이 자존심과 가난

과 유산소운동임을 고려해 보면 이 현상은 성실함을 넘어 중독이라고 해야 옳다.


짧은 러너인생이지만 나름의 깨달음 몇가지를, 혹여나 있을 후배 러너들을 위해 적어 놓는다.


하나. 달리기할 때에는 밑을 보지 말자. 지속적인 패배감을 느끼게 될 뿐 아니라 때때로 고꾸라지는

수가 있다. 전투기 비행사들이 레이더에 걸리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바다에서 저

공비행을 피하는 이유는 어느 순간부터 어느 쪽이 하늘이고 바다인지 알 수 없게 되기 때문이라고 한

다. 좌절과 영예를 경험한 굴곡 많은 내 러닝인생에도 당연히 한 번은 있었던 경험. 사실은 한 번

이상이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 넘어가자.


둘. 열중할 수 있는 음악을 찾자. 내 경우에는 미리 이러한 계획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맞는 음악

을 찾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것도 이게 괜찮을까 선택한 음악이 아니라 될대로 되라지

하고 재생시켜 놓은 와중에 흘러나온 것이 적중한 것. 한 곡이 덜렁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장르의 대표

곡들을 통째로 모아 놓은 폴더가 있었기에 그 뒤로부터의 나는 그야말로 헤르메스, 03학번이 신입생

이던 해의 총엠티에서 복원준이 절규하던 것처럼 거칠 것이 없다. 복원준은 만물박사 편박사에서

거칠 것 없는 선배인생에 종지부를 찍었지만 나는 계속 나아가고 있다.


셋. 잡생각을 하지 말자. 몸이 계속하여 자극을 받고 있기 때문에 달리기가 끝날 때까지 한 생각에

몰두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갑작스레 생각에서 깨어나 이것밖에 못 달렸나, 라고 생각하면 체력이

갑자기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게다가 앞에 나타나는 돌부리나 (이따금) 전봇대를 못 보는 일

이 있기 때문에 전투기를 소중히 하려면 잡념은 금물이다. 뭣보다, 탁탁 발소리나 바람소리가 귓속

으로 뛰어 들어오면 잡생각을 할 겨를이 없는 것이다.



처음 뛰던 날 세번씩 쉬어 겨우 부대까지 돌아오던 러닝코스를 완주하게 된지 이제 고작 삼일째

이지만, 오늘 나는 비교적 평안한 호흠으로, 어젯밤 틀어놓고 잔 탓에 방전되어 버린 엠피쓰리는

부대에 놓은 채로, 마지막에는 러닝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노래까지 불러 가며 끝까지 달렸다.

더워서 나는 물땀이 아니라, 맺혀서 흘러 내리지 않는 땀을 흘리며 근력운동까지 마치고, 이제 하루

의 끝. 군생활 스물한달째가 평온히 저물어 간다.

'일기장 > 2006'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집에 왔다.  (0) 2006.07.08
드디어 7월이구나.  (0) 2006.07.01
6월 18일  (6) 2006.06.18
알퐁스 무하  (1) 2006.06.11
길은 외줄기 서역 삼만리  (4) 2006.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