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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6

망상

지인과의 통화 중에 다시 스무살로 돌아가게 되면 뭘 해 보고 싶은가, 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근래 가장 많이 하던 질문은 30억이 생기면 뭘 하겠는가, 였지만 그건 '취직안해'로 답이 똑같았기

때문에 재미없어서 관두고 있던 차.


얼마 전 학교 앞 사거리에서 지루하게 파란불을 기다리다 생각났는데, 나는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의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축제를 기획해 보고 싶다고 떠올렸던 적이 있었다. 피날레에야 다같이 락공연

이라도 보면서 날뛰면 좋겠지만, 그렇게 확 타오르는 것 말고, 아침부터 솜사탕 손에 들고 여기저기

기웃거릴 수 있는 축제. 신촌 거리를 다 막고 장터가 들어 서는 거다. 하루 종일 서 있다가 추억은

못 만들고 부은 다리만 잡지 않도록, 그리고 모두가 물건 하나쯤은 팔 수 있도록, 한 자리에 한 사람

당 딱 이십분씩만 허가권을 내 주는 거지. 사이즈가 안 맞는 옷도 좋고, 여행 가서 사 온 기념품도

좋고, 내 경우엔, 내가 상인이었다면 여행 갔던 이야기를 팔겠다. 자, 여기 자리에 앉아 봐요, 하고

사진과 함께 이야기를 풀어 놓은 뒤 그에 걸맞는 돈을 내고 가라고 해야지. 아주 마음에 들거들랑

가게 접고 같이 술 마시러 가고.  

그러다 보면 같은 자리를 공유했던 사람끼리, 최소한 내 앞 순번과 내 뒷 순번의 사람끼리 맥주도 한

잔 할 수 있고. 지나가다 포옹을 파는 가게에서 기분 좋게 포옹도 한 번 하고 가고. 재미있겠지. 이게

또 한 번 생각하기 시작하면 무한하다니까. 이십분씩이기 때문에 어디에 무슨 가게가 생길지 모르니

까 계속 돌아다녀야 하는 것이다. 야, 세번째 골목에 뽀뽀 파는 가게 십분 전에 생겼대! 라는 소리가

들리면 냅다 뛰어야 하지.


야, 재미있겠다, 싶으면서도 이젠 생각만 하다가도 지치네. 요새는 좀 애가 방전된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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