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기장/2003

독후잡감-'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어떤 책에서인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그런 말을 했다.

"...소설적 상상력이 없는 작가들이나 소설적 자서전, 혹은 자전적 소설을 끄적이고 있지."

그 당시에는 개미를 비롯한 일련의 그의 작품들을 사 모으며 한 작가의 여러 작품을 읽는 기쁨에 눈

을 떠 갈 즈음이었어서 참으로 듣기 좋은 말이로다, 그것 참 명언이로다, 하며 음음 했던 것인데.


근래 창작욕의 촉발제로 쓰고 있는 성석제 선생님의 글은 다분히 개인의 경험에서 출발했다고밖에

는 볼 수 없다. 혹여 선생님의 이야기가 아니라도 선생님의 주위 어디에선가 일어났던 일일 것이다.


그 둘과 관련이 되었다고도, 혹은 되지 않았다고도 할 수 있는 내용인데. 전공이 전공이다 보니

학년이 올라갈 수록 뜬금없이 구름잡는 이야기들에 대해 배우고 생각하게 된다. (물론 전공이 전공

이다 보니 이제는 그런 이야기가 아주 재미있다.)

개중 작년부터 지속해서 생각해 오고 있는 문제가, 문학은 과연 거대담론을 담아내야 하는가,인데

혹여 그 문제에 이미 답을 낸 사람들이 있다 하여도 그것은 그의 생각, 만약 더 크다면 그가 속한

시대의 생각일 뿐 스스로 낸 해답이 아니므로 납득할 수 없다. (결국 문학이란 그런 것이니까.)

성석제 선생님의 글들은 '유목민의 삶'이라고 정평이 난, 이를테면 거대담론에 소외된 주변적 존재,

그리고 주변적 문체를 통해 이른바 메인 스트림을 통렬히 야유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것이 또 아주

멋들어져서, 장면장면마다 그 목적이 살아 있고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전달하려고 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글은 식상하고 유치하다,라고 생각하던 차에,


또 한 권의 책을 읽게 되었다. 소설이다.


본디 나는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내가 라난 청소년기에, 사회에서 통칭하는

이른바 '소설'이란, (더 정확히 말해 당시 '소설'의 주류, 더 정확히 말해 주류라기 보단 베스트 셀러

란, ) 은희경을 비롯한 일련의 여성작가들로 대표되는, 집요한 문체로 인간의 심리심리를 집어내는

작품들이었다. 문학의 효용을 크게 교훈과 쾌락의 두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때, 이전까지의 우리

문학에서 교훈을 중시하는 와중에 소외되었던 쾌락(문체에의 탐미도 크게 보면 쾌락에 속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체에 포커스를 맞춘 것인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러한 '소설'들을 기피했던

것은 제도교육에 물든 머리 탓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그냥 재미가 없어서 싫다.) 소설은 무언가를

남겨야 한다는. 혹은 무언가를 가르쳐 줘야 한다는 강박.


어찌하였든 나이를 먹고 재미있는 건 재미있다고 볼 수 있게 된 뒤로는 소설이라 해도 기피하지 않

게 되었고, 개중 성석제 선생님의 책처럼 굳은 머리를 깨어주는 글을 만날 때마다 기쁨을 느끼던

차에(혹여 이 글을 읽고 서점에서 선생님의 책을 집어들 사람이 있을까 넌지시 일러두는 것인데,

선생님의 글이라고 모두 재미있지는 않다. 다만 모든 글이 문학의 효용이 교훈에 있다고 믿는 머리는

확실히 깨 준다는 건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고민하는 것에 직격탄을 날리는 소설을 읽게 된 것이다.


앞서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성석제 선생님을 비교했던 것이 실은 여기와 연결이 된다 볼 수 있는데,

내 삶의 문제와 내 문학이 유리되어도 괜찮은가, 라는 질문이 있었다. 그 질문까지도 펑하니 날려

버린 소설을 읽게 된 것이다. 이전에도 그 소설 문체가 참 재미있더라는 평을 들은 적이 있어 관심

을 두고 있던 중에 우연히 후배가 빌려주어 읽게 된 것으로, 제목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

클럽'인데, 아무튼 읽어 보시라. 아무튼 고민해 보시라. 보헤미안과 부르조아의 사이에서 고민하고,

본질과 형식,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텍스트-혹은 아이콘-에 고민했던 분이라면 과연 무릎을 칠

것이다. 어설픈 서평이나 개략적인 스토리 소개로는 느낌이 전해지지 않을 것이고, 읽어본 후라도

같은 문제로 고민한 적이 없는 분께도 느낌은 전해지지 않을 것이라 독후감보다는 독후잡감으로,

그저 내 생각만을 적어둔다.


-다만 문체가 재미있다는 말은 조금 잊고 읽는 편이 좋다. 재치가 넘치기는 하지만 그것이 과용하여

아침에 갈비를 먹는 기분이다.

'일기장 > 2003'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본인의 뒷머리올시다  (6) 2003.10.18
2003년 10월 17일 금요일  (1) 2003.10.18
이야기  (0) 2003.10.15
그대, 나와 통하겠는가?  (3) 2003.10.12
다음 분. 어디가 아파서 오셨죠?  (5) 2003.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