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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6

독서근황

비번이라 하루 종일 이불 위에서 뒹굴뒹굴거리는 하루. 얼마전부터 팔굽혀펴기를 시작한지라 며칠

전부터 취침시간 딱딱 맞춰 잠자리에 들어도 피곤했던 탓에 아마도 하루 종일 잠들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잠이 안 왔다. 내무반을 어슬렁거리다가 제대한 선임의 캐비넷에서 일본소설을 하

나 찾아내어 발가락을 까딱거리며 읽게 됐다.


출판계에 아는 사람이 있다면 물어보고 싶다. 일본소설이라는 시장이 경제적으로 가치있게 평가받은

것인가? 하루에도 두세번씩 공항의 서점에 가는데, 아는 분은 알고 계실 공항의 GS서점 세 군데

모두 알록달록한 하드커버의 일본책 코너를 따로 두고 있다. 표지 디자인의 컨셉도 명확히 그러하

거니와 선채로 얼핏 읽어봐도 '일본소설'이라면 내가 기왕에 갖고 있던 이미지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 한 것은 없는, 소소한 느낌의 소품들. 소설은 세계를 움직여야 한다는 말은 정말이지 말같지도

않고, 소설은 무언가를 전달해야 한다는 말도 그리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나이지만, 적어도

책이라는 사랑스러운 물건을 손에 잡고 있었다는 흔적정도는 남겨야 하지 않겠는가. 읽고 난 직후

에도 스토리는 커녕 주인공의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글을 뭘 어쩌라는 건지.


그러고선 입이 대퉁 나와 엎드린 채로 괜스리 발을 동강동강거리며 침상 바닥에 화풀이를 하다가

문득 얼마 전 읽었던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이 생각났다. 나는 정원이나 목장, 항해 등의 단어에는

과민하게 반응하는 편인데 무려 오래된 정원이라니,  언젠가는 읽어야 할 책이다, 하고 숙제처럼

마음속에 두었던 책이었는데, 몇년이나 지나 우연히 군에서 읽게 된 것이다. 아무튼 거한 숙제였다.

눈앞에 무언가를 들이대면 눈을 돌리면 그만이지만, 뭐랄까, 엄청나게 크고 끈적거리는 덩어리가

목구멍 한가운데 걸려 버린 느낌. 숨을 쉬고 싶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어디에 걸렸는지 명확히 인지

해야만 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80년 광주와 그 이후에 관한, 아주 무겁고 무거운 책이었다.



아주 유치한 대비처럼 보이는데, 사실 요새 내 독서가 좀 그렇다. 가벼운 글은 가볍게 읽고 날리면

그만일텐데 쭝쭝대고, 무거운 글은 소설답지 못 하다며 쭝쭝대는 불평쟁이 꼰대가 되어서, 그나마

쉬 읽고 있는 건 짚어주는 대로 발걸음을 옮기기만 하면 되는 시오노 나나미의 책들. 예전같으면

아주 피곤할 때나 읽었을 것이다. 그나마도 돈이 아까워서 서서 읽지만. 시오노 나나미의 글이 책

값을 못 한다는게 아니라 이집 저집에서 책장에 꽂힌 걸 하도 많이 봐 놓아서 어쩐지 공공의 물건처

럼 생각되는 탓에 돈을 내고 사 보기가 아까운 것이다. 다이 하드가 갑자기 너무 보고 싶은데 돈

내고 빌려보기는 아까운 그런 느낌 있잖은가.


요새 좀 읽어 보고 싶은 책은 내 오래되고 비밀스런 취향인 뻥치기 고대사에 관한 신간. 제목부터

대쥬신을 찾아서인지 대쥬신을 찾아라인지 아무튼 심상치 않다. 오천원정도면 샀을 터인데, 만오

천원이라니. 지나쳐 지나쳐.


전유성아저씨는 후지필름 CF찍고 출연료를 몽땅 필름으로 받았단다. 그 필름으로 열심히 사진 찍어

남의 문화유산 답사기 냈고 지금도 엄청나게 찍어가며 지인들을 상대로 이따금 사진전을 열곤 한다

는데, 나도 말도 안 되는 애드립이나 엄지손가락을 불끈 쳐 들고는 '책은 우리의 미래여요!'같은

말을 시켜도 좋으니 공익광고나 교보문고 CF찍고 도서상품권 한 천만원어치 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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