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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8

대학원 신입생 환영회

대학원의 신입생 환영회에 다녀왔다. 생각해 보면 애당초 즐거울 것 까지야 없는 성격의 모임일테지

만, 내 경우에는 말하자면 우시장 끌려가는 소새끼의 기분 정도였다.


지난 2월 초 생활비와 다음 학기 학자금을 위해 조교직에 신청했지만 탈락한 터였다. 그런가 보다,

하고 어찌 돈을 벌까 고민하는 와중에 오늘 이른 오후, 학부 때부터 이런저런 충고를 해 주시던 박

무영 선생님에게 교수실로 불려 가서는 졸업을 하고 개강을 하는데도 얼굴 한 번 안 비친다고 핀잔

을 들었다. 그렇다면 3월 초까지 연구실이고 과사무실이고 얼굴 한 번 비치지 않았던 것이 선배들에

게 밉보여서 조교 신청 건이 그리 된 것일까, 하는 혼자 생각에 유난스럽게 굴어서는 안 되겠다 싶어

가기 싫은 발을 억지로 떼었던 것이다. 며칠만에야 얼굴을 본 막내동생 세현이도 세현이지만, 삼

성 계열사의 리쿠르팅을 위해 몇 년만에 학교를 찾은 동기 재령이와 차 한 잔 마시지 못 하고 헤어진

것이니 마음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나름으로, 대비를 했다고 여기고 있었다. 대학원 생활이 교수님과 1:1로 앉아 공부만 하는 것은 아

니고 자신들도 나름의 위계들로 구성된 사회가 있을 테고, 나는 신참이니 밑부터 시작해야지. 다시

대학 입학 때와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돼. 스스로가 얼마나 자랐는가를 알아 볼 좋은 기회이다.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해 두었는데, 몇 살 차이가 안 나는 한 선배가 ‘신입생 노래 한 번 해 봐’라고 말할

때에는 몇 시간 째 들통나지 않게 잘 유지하고 있던 웃음을 한 순간 놓치고 말았다. 이후에도 굳이

긴 시간 앉아 이야기할 필요가 없는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들으며, 요 근래 후배들 앞에서 진섭이와

나만 아는 이야기를 몇십분이고 일삼은 기억들이 떠올라 새삼 후회했다. 반면교사가 없어도 스스로

자신의 단점을 뼈저리게 깨닫고 후회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이제는 사실 첫인상의 힘을 그리 믿지 않는다. 첫인상이 좋아도 노력하지 않으면 관계란 멀어지기

마련이다. 첫인상은 좋았지만 속이 빈 사람에겐 더 크게 실망하게 된다. 그래서, 술자리의 후반에

는 대체로 뚱한 얼굴로 앉아 있었음에도 내 첫인상이 어떻게 전해졌을지에 대해서는 그닥 크게 우려

가 되지 않았다. 지나치게 마신 맥주의 불쾌한 포만감과 술자리를 떠도는 경솔한 말들이 집으로 걸

어들어 오는 길에까지도 귓전에 끈적하게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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