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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4

대나무






신흥사는 그 입구서부터 안내판이라든가 광고판같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긴 '봄날은 간다 촬영지

여기서부터 200m'같은 게시판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으면 더 싫었겠지만 어쨌든 좀 불편했다.

길도 여러갈래고, 영화를 보지 않았으니 눈으로 보고선 찾을수도 없고 해서 그냥 산책나왔다고 생각

하기로 하고 가장 가까이 나 있는 산길로 휘휘 올라갔다. 주먹밥군은 산길을 날렵하게 누비며 또

한 차례의 고된 산행을 여러가지로 도와주었다. 나무틈과 바위들 사이를 날렵하게 누비는 모습이

마치 한마리의 닌자개같아 약간 존경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산책이라 생각하기로 마음을 먹었다지만 그래도 영화의 한 장면같은 멋진 풍경을 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여긴 아닌 것 같다 아닌 것 같다를 계속 뇌까리며 올라가던 산길에서 마침내 이 길은 영화

촬영에 쓰일만한 곳이 확실히 아니다라고 판정할 수 있을 만한 곳에 이르렀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이렇게나 평범한 곳을 영화에 썼을리가 없다. 혹여 이 곳이 맞다 할지라도 이건 너무나 평범해서

별 감흥이 없지 않느냐. 그래서 그나마 대나무가 제일 많이 난 곳을 찾아 대나무가 딱 사진내에

꽉 찰 만한 포커스를 잡아 사진을 찍었다. 찍은 곳 주위로는 온통 잡풀과 소나무들 뿐이다. 어쨌든

괜찮은 사진이 나와 줬으니 그냥 만족해야지. 더 올라갈 것이 없다는 듯이 주먹밥군이 먼저 돌아서

길래 그냥 따라서 내려왔다. 담양의 대나무밭같은 광경을 기대했던 나를 위로해 주려는지 주먹밥군

은 항문에 지푸라기 핀을 꽂고 시종일관 앞에서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나를 위로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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