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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7

너나 잘하세요.

요새 집의 컴퓨터에서는 이 일기장이 자꾸 튄다. 고육지책으로 한글 프로그램에서 일기를 작성한

뒤 가져다 붙이곤 했지만 붙이는 과정에서조차 튀어버리는 일이 종종 있었던 탓에 쓰고 싶은 내용

은 많아도 적지는 못했던 것인데.


그 때문인지 방명록에 또 음란사이트 홍보가 올라왔다. 비밀번호를 모르니 지우지도 못 하고. 울컥

치솟아오르는 노기에 새삼 얼마나 이 곳을 아끼고 있는지 다시 느끼게 됐다. 특히 군에 다녀온 뒤로

일의 과정과 결과를 미리 살펴 보는 버릇이 생겼고 덕분에 쓸데없이 화를 낼 일이나 주먹다짐을 할

일이 적었던 것인데, 이러한 글을 올린 놈이 지금 눈앞에 나타난다면 나는 단 일초조차 앞뒤를 잴

생각도 하지 못 하고 주먹이 으스러질 때까지 그 면상을 흠씬 갈겨줄 것이다.


인터넷상에 일기를 쓰고 있는 한 언제나 각오하고 있어야 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이런

일에 익숙하지 못 하다. 한 사람이 몇년씩 관리하는 곳에 이렇게 오물을 휘갈기는 그 언행이 비열한

것이라고 여기는 것은 지나치게 편협한 마음인가.



단지 그 하나의 일 때문만은 아니다. 근래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무신경함과 무례함에 어느 정도 분

이 치밀어 있던 차였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은 대개 인상이 달라졌음을 지적한다. 며칠 전, 수 년만에 통화를 나눈 한

동기는 목소리가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몇차례나 해 왔다. 스스로의 변화를 자각하기란 어려운 일이

지만 그럼에도 그 지적들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쉬이 추측해 볼 수 있을 정도로, 나는 변했다.

단지 위악적인 수신의 한 방책이거나 성인다운 사회생활의 의식적인 체현에 지나지 않았다면 일고

여덟살씩 차이나는 어린 후배들한테나 통했을까, 주위의 지인들에게는 한번에 간파당했을 것이다.

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실한 이유가 내 자신에게 있었다. 시간은 지나갔고, 내가 떠나온 것도 아

닌 사람들이 많이도 주위를 떠났다. 어린 날 빛을 발하던 재기발랄한 문장과 화술은 간 데 없고, 이

제는 뜻을 올바르게 전달할 단어를 찾는 데에도 한참을 고심해야 한다.

즉, 만나는 상대방들을 모두 대단하게 여겨서가 아니라, 스스로가 하찮게 여겨져 나는 누구에게도 함

부로 대하지 못 했던 것이다. 복학 후에 학교에서 만난 사람들은 적게는 두세살, 많게는 여서일곱살

까지 차이가 나지만 나는 동아리의 후배들 외에 누구와도 말을 편하게 두지 못 하였다.


자연스레 화를 참는 버릇이 생겼다. 살아가며 만나게 되는 화나는 상황들은, 대개 한 호흡 쉬고 나면

해결을 하는 데에 파괴적인 언행이 오히려 독이 될때가 더 많다. 본래도 호전적인 성격의 나에게는

더더욱 좋은 습관이었다. 그러나 곧 어려움이 생겼다. 스스로 자계하며 참고 넘기기에는 일반적인 사

회의 상식 수준을 관대하게 적용하여도 그냥 넘어가기 어려운 일들이 눈에 띄게 된 것이다. '일반적'

이라는 것도 결국 내가 생각하는 '일반'의 기준인 것이지, 상대방의 기준에서는 어떨지 모른다는 말

로 스스로를 필사적으로 설득해 보지만, 정도가 지나친 일들을 계속해서 당하게 되면 여유가 줄어드

는 법이다.


지금도 고민한다. 가만히 있으면 인상 좋은 대호씨인데, 굳이 한마디 해서 이미지 버릴 것이 있을까,

하다가도, 서른도 안 되어 이따위 생각을 하다가 커서 뭐가 되려고 이러는지 생각하면 또 섬뜩하고.

이를 일러 이승환 옹은 세상 사는 것이 만만치가 않다는 노래까지 불렀던 것인데. 일기에 글 올린

놈이야 잡히면 목줄 딴다며 칼을 가는 수밖에 없지만, 내 일상의 사람들은 어쩌면 좋은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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