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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나카무라 요시후미 / 진 도모노리, <건축가, 빵집에서 온 편지를 받다> (더숲. 2013, 9.)

 

 

 

 

독서일지에 어느덧 세 번째 출연인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후미中村 好文의 2013년 작.

 

 

 

원제는 일본어가 아닌 영로 'PANYA NO TEGAMI'라 적혀 있다. 빵은 일본어로도 빵, 야는 나고야名古屋할 때

 

가게 옥자렷다. 노는 of이고, 테가미가 난제였으나 다행히 일본 노래의 제목에서 보았던 '편지'라는 단어를

 

억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합해 보면 '빵집의 편지'이거나 '빵집으로부터의 편지' 정도가 되겠다. 질박한 원제

 

이 마음에 들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저자의 유명세가 덜 할 터이니 대강의 내용을 설명한 평범한 제목으로나

 

출간해 준 것이 고맙다.

 

 

 

전작들과 다르게 진 도노모리 幸紀라는 공동 저자가 있다. 책날개를 들춰보니 직접 지은 빵집의 리모델링을 나

 

카무라 요시후미에게 맡긴 젊은 빵집 주인이라 한다. 파리에서 제과 기술을 배워 일본의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근무를 하다가 조립식 패널로 직접 지은 빵집을 열어 장사를 하던 진 도노모리는 나카무라 요시후미의 저작들을

 

접하고는 그에게 매혹되어 빵집의 수리를 의뢰하게 된다.

 

 

 

그러니까 이 책은 기본적으로 건축주 진 도노모리와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후미가 참여한 빵집 '블랑제리 진

 

Boulangerie JIN'의 리모델링기이다. 재미있는 것은 책이 건축가의 작업 기록이나 건축주의 회고록이 아니라

 

둘 사이에 실제로 오고간 편지를 모은 구성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의 본문은 2009년 3월 7일, 건축주

 

진 도노모리가 리모델링을 의뢰하며 직접 써 보낸 편지로부터 2010년 11월 20일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후미

 

가 새로 지은 빵집에서 '첫 불 기념식'을 함께 치룬 뒤 돌아와 그 감상을 적어 보낸 마지막 편지까지 총 27통의

 

편지로 이루어져 있다.

 

 

 

건축 책인만큼 다른 분야의 책들에 비해서는 사진이 많은 편이지만, 두세 장 간격으로 사진과 직접 그린 그림이

 

난무하던 나카무라 요시후미의 전작들에 비하면 그 양이 훨씬 적다. 그리고 이 책의 사진과 그림은 처음, 중간,

 

끝에 몰려 있다. 이것은 공간의 의미와 실제 구성에 대해 조곤조곤하게 의견을 나누는 두 사람의 목소리를 읽으

 

며 그 결과를 상상하게 하려는 기획 의도로 보인다.

 

 

 

하나하나의 '꼭지'라고 부를 수 있는 한 통의 편지는 이렇게 편집된다. 일단 편지의 제목 위에 편집자가 작은 폰

 

트로 그 편지의 성격을 요약해 준다. 이를테면 첫 번째 편지의 제목인 '처음 뵙겠습니다, 홋카이도 맛카리무라에

 

사는 진 도노모리라고 합니다'의 위에는 '맛카라무라의 빵집 주인 진 도노모리 씨,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후미에

 

게 빵집 설계를 의뢰하는 편지를 보내다'라는 요약이 적혀 있다.

 

 

 

이 요약은 위와 같이 객관적인 사실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때때로 편지를 쓰고 있는 필자의 감정까지 분석하

 

고 있어 또 하나의 재미를 전달해 준다. 이를테면, '굳이 이렇게까지 엄하게 지적해주시지 않아도 되지 않을

 

.....하는 생각이 들어요' 편지가 대표적이다. 이 편지는 건축주인 진 도노모리가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후미에

 

게 보낸 것이다.

 

 

 

이 편지를 쓰기 전 건축주는 공사 현장에서 건축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좀 더 오래된 느낌으로 할 수

 

는 없을까요'라는 건의를 한다. 나카무라 요시후미는 그 건의를 불편하게 여기다가 큰 용기를 내어 '오래된 느낌

 

을 연출하는 것은 본말전도로, 일종의 화장이다. 의뢰인에게 이렇게 직접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사물을 본

 

질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있는 진 도노모리 씨 부부라면 이 점을 알아줄 것이라 생각한다'라는 편지를 보내게

 

된다. 건축주인 진 도노모리가 이 편지를 받고 답장으로 쓴 것이  '굳이 이렇게까지 엄하게 지적해주시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편지이다. 편지는 대단히 예의바른 말투로 '깊은 의도가 아니었다', '앞으로

 

도 선생님의 감각과 의도를 더 배우고 싶다'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편지의 요약은 '나카무라가 보낸,

 

단호하게 타이르는 팩스를 읽고 진 도노모리 씨 부부는 적잖이 동요한다'라고 되어있다. 그렇게 보려면 그렇게

 

볼 수도 있구나 하는 재미도 있고, 제멋대로 요약하는구나 하는 재미도 있다. 

 

 

 

요약과 제목 뒤에는 마침내 편지의 본문이 시작된다. 본문 중에 등장하는 건축, 제빵 등 전문 분야의 용어나 혹

 

은 일반적인 독자가 알기 어려운 인명, 지식 등에는 각주 해설이 붙는다. 그런데 이 각주는 우리가 흔하게 접하

 

게 되는 위치인 본문 하단이 아니라 넉넉하게 비워진 본문 상단에 달려 있다. 작은 차이이긴 하지만, 나는 실제

 

로 재미있게 편지를 읽다가도 널찍한 여백에 적혀진 각주를 만나면 그 또한 눈길이 가 찬찬히 읽게 되는 경험을

 

했다. 흥미로운 편집이다.

 

 

 

한 통의 편지가 끝난 뒤에는 폰트를 다르게 하여 그 편지와 다음 편지 사이에 일어난 주요한 설계 및 공사 작업

 

을 건조하게 소개해둔다. 덕분에 공사가 지금은 얼만큼 진행되었는지를 가늠하며 읽을 수 있다. 앞서 이야기한

 

'요약'과 쌍을 이루이 책이 단순한 편지 모음집이 아니라 하나의 리모델링기임을 확실히 보여주는 형식이

 

다.

 

 

 

하지만 이렇게만 소개하면 정말로 곤란하다. 나는 아직 이 책의 두 가지 백미를 말하지 않았다.

 

 

 

첫번째 백미는 그야말로 연애편지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내용과 문체이다. 건축주인 진 도노모리는 리모델링을

 

할 때가 되어서 건축가를 찾고 있었다든지 아니면 가진 돈에 맞추어 건축가를 찾고 있었다든지 하는 것이 아니

 

다. 그는 '세계적 건축가'인 나카무라 요시후미의 건축과 저작을 깊이 흠모하고 있었고 그의 작업을 함께 경험하

 

고자 하는 열망을 갖고 있었다. 말하자면 일종의 팬인 셈이다. 그런 그가 열정과 예의를 갖추어 건축가를 극진하

 

게 대접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놀라운 것은 나카무라 요시후미의 편지들이다. 그는 자신이 대학에 입학한 지 2년 후에 태어난 이 젋은

 

빵집 사장을 직접 만나보고는 그의 성실성과 인격에 반하여, 기대에 답하고자 정성을 다한다. 전작에서도 그의

 

상냥한 말투와 귀여운 발상은 독서 중 문득 웃음을 짓게 하는 요소였지만, 실제로 편지에서까지 그런 글을 쓰고

 

있을 줄이야. 다음은 다른 일로 출장을 가 있던 나카무라 요시후미가 출장지의 호텔에서 건축주에게 보낸 엽서

 

이다.

 

 

 

 

 

 

 

 

대강의 내용은 이전에 있었던 창고를 해체하며 나온 들보의 처리에 관한 것이다. 건축주의 희망은 새로운 빵집

 

을 지으면서도 이전의 재료들을 활용하여 분위기를 이어나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것을 숙제로 여기고 있던 나

 

카무라 요시후미는 빵 가마가 놓일 방의 지붕에 십자가 모양으로 배치하여 경건한 느낌을 내 보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이 엽서를 썼다. 귀여운 글씨와 함께 공을 들여 그린 예상도에 눈길이 간다. 마지막 줄에 '이 아이디어

 

가 마음에 들면 바로 준비 작업에 들어갈게요'라고 '건의'를 한 것 또한 그답다는 생각이 든다.

 

 

 

엽서에 쓴 것이라 내용이 길지 않은 위의 글에서도 따뜻함이 묻어나는데, 길게 작성한 다른 편지들은 달달하기

 

그지 없다. 분명히 주제는 건축 설계와 작업에 관한 것인데도 서로의 가치관과 인생에 대한 감상까지를 실은

 

내용을 읽다 보면 심지어 감동하게 되는 지점까지 있다. 이건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적어도 '공손하면서

 

도 사이 좋은 관계를 보는 즐거움'까지는 누구나 공감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두 번째 백미는 '드라마'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이 책의 내용은 한 건의 재건축일 뿐이다. 건축주는 자신이 필요

 

로 하는 직능을 구하여 대가를 지불하고, 건축가는 설계와 작업에 상응하는 임금을 받는다. 그러면 깔끔한 경제

 

행위로 끝날 일이다. 하지만 진 도노모리와 나카무라 요시후미는 그 안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내고자 했다.

 

 

 

 

 

 

 

 

이를테면 이런 장면이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상량식 때에는 떡과 술 등을 준비해 땅의 신과 집의 신

 

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다. 그런데 건축주도 아니고 건축가인 나카무라 요시후미가 '빵집이니까 상량식

 

때 빵을 뿌리면 어때요'라는 건의를 대뜸 하였다. 만약 빵으로 결정된다면 샴페인이 어울릴테니 본인이 가져가

 

겠다는 추신까지 덧붙였다. 이 제의를 재미있게 받아들인 진 도모노리 부부는 다섯 상자의 빵을 구워 인부와 마

 

을 사람들, 그리고 네 살 난 아들인 고타로의 어린이집 친구들에게까지 마음껏 뿌렸다. 사진에는 안 나왔지만 나

 

카무라 요시후미도 신나게 빵을 뿌렸다고 한다.

 

 

 

 

 

 

 

 

이런 장면도 인상적이다. 새 빵집의 간판은 예전에 사용하던 것을 그대로 사용하였고, 간판을 고정시킨 기둥은

 

철거한 창고의 들보로 만들었다 한다. 이런 시도는 단순히 자재비를 아끼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위에

 

서 소개했던 '십자가 모양의 들보' 아이디어도, 건축주인 진 도노모리가 '예전에는 빵을 만들기 전에 십자가에

 

기도를 했었다 합니다'라고 무심코 언급한 것을 기억하고 있던 나카무라 요시후미가 연계시켜 구상한 것이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끝도 없다. 새로 지은 빵 가마에 첫 불을 때던 날에는 건축주 일가와 나카무라 요시후미의 건

 

사무소인 '레밍'의 사원들, 그리고 유명한 류트 연주가가 모여 류트 연주를 듣고 새로 만든 빵으로 파티를 했

 

다. 이들은 첫 빵이 나올 때 다 같이 노래를 부르기도 했는데 이 노래의 작사 또한 나카무라 요시후미가 직접 했

 

다 한다. 내가 제일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은 설계 비용의 절반을 빵으로 받기로 했다는 것이다. 덕분에 레밍 건

 

축사무소에는 한 달에 두 번씩 큰 골판지 상자가 택배로 온다고 한다. 물론 상자를 가득 채운 것은 '블랑제리

 

진'에서 갓 구워 보낸 갖가지 빵이다.  

 

 

 

 

 

 

 

 

이왕에 흥이 났으니 재미있는 일화 하나만 더. 새로 크게 빵 가마를 지으면서 기존에 있었던 작은 장작가마 벽돌

 

집은 그 역할이 사라지게 됐다. 건축가와 건축주는 기억이 얽혀 있는 건물을 없애지 말고 작은 도서실이나 서재

 

로 꾸미기로 한다. 그런데 이때 나카무라 요시후미는 우연히도 이 빵집의 작업과 함께 옆 동네의 레스토랑 작업

 

을 겸하고 있었다. 덕분에 이 동네를 오락가락 하면서 진 도모노리의 집에 자주 놀러가 빵도 얻어먹고 자고까지

 

가는, 본인의 표현에 의하면 '뻔뻔한 친척 아저씨가 되고 말았다'. 이왕 이렇게 된 바, 어차피 도서실로 만들려 

 

했던 그 방, 게스트 룸으로 개조합시다. 대신 내가 자주 사용하게 될테니 개량 비용은 반은 이 친척 아저씨가 부

 

담하는 것으로!

 

 

 

 

 

 

 

 

그 작업의 전후이다. 사진을 너무 많이 올리게 되는 것 같아 실내 사진은 빼었지만 외양만으로도 이미 고즈넉한

 

느낌의 멋진 건물이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전작인 <집의 초심, 오두막 이야기>의 독후감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좁은 공간을 활용하는 그의 귀신 같은 솜씨를 접한 분이라면 그 멋스러움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세 가족의 한 구성원인 네 살 고타로. 아버지와 건축가 할아버지의 설계안을 듣고는 자기

 

갖고 싶은 것이 있다며 위와 같은 편지를 써서 부쳤다. 그네나 사다리야 그렇다 치지만 '닌자의 문'이라는 주

 

을 앞둔 세계적 건축가의 고뇌는 얼마나 깊었을까. 그렇게 지어놓은 건물에서 굳이 장수풍뎅이를 길러야 할

 

유는 무엇이며 또 망원경으로 보긴 뭘 본다는 것인가.

 

 

 

 

 

 

 

 

하지만 뻔뻔한 친척 아저씨는 여기에서까지 상냥함과 정성을 잃지 않았다. 나무 그림에 음영을 넣는 상냥함.

 

톱과 망치를 그려넣는 정성.

 

 

 

 

 

 

 

 

 

그리고 고타로는 실제로 공사에 참여를 했다. 이렇게 생겨난 트리 하우스라면 추억이 생기지 않고 배길 수 있을

 

까. 훌륭한 장수풍뎅이로 보답해라, 고타로.

 

 

 

 

 

그만 덧붙여도 충분할 내용을 죽죽 늘어놓는 데에서 이 책에 대한 내 애정을 짐작하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의 온도에서 즐거움 뿐 아니라 깊은 위안까지를 얻었다. 서로에게 존경과 애정을 품으면, 경제 행위로 만난 사

 

이조차 이렇게 아름다운 결과물을 낳을 수 있다, 는 생각. 근래에 접한 어떤 소설, 어떤 영화보다 훨씬 더 크게

 

마음이 움직이는 시간이었다. 되도록 많은 내용을,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싶다보니 글이 길어지고 말았

 

다. 완성된 건축물의 평면도와 전체 배치도 스케치로 마무리를 갈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