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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김종대, <시크릿 파일 서해전쟁> (메디치. 2013, 8)

 

 

 

 

 

민간 군사 전문가이자 군사-국방 전문지인 디펜스21플러스(http://defence21.hani.co.kr/)의 편집장 김종대 씨의

 

신작. 부제는 '장성 35명의 증언으로 재구성하다'이다. '머리말'에 따르면, '한반도 전역에 평화가 정착된 데 비

 

해 유독 서북 해역에서만 1990년대 이후 다섯 번의 교전이 발생했'다 한다. 따라서 서해를 말하고 있는 이 책은

 

실은 우리나라 전체의 안보와 국방을 다루고 있는 셈이다.

 

 

 

이미 일어난 일을 진실에 가깝게 복원하는 것만으로도 그 기록은 가치가 있다. 그러나 저자는 다섯 차례 교전의

 

경과와 영향을 분석하면서 이것이 구조적으로 발원한 문제이며 장차 더 심각한 무력 충돌이 있을 수 있다고 예

 

측한다. 미래 세대에게 남기는 역사적 교훈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주요한 정치적 현안이라

 

는 것이다.

 

 

 

책은 발생한 순서에 따라 교전을 재구한다. 부제에서 밝히고 있듯 저자는 그 과정에서 해당 교전의 참전자, 혹은

 

관련자인 장성들의 육성을 전달하고 그를 통해 공식적인 발표 이면의 사실들을 살핀다. 은폐된 사실과 그의 분

 

석을 통해 얻어지는 맥락을 접하다 보면, 이런 허술한 기반 위에서 일상의 안위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 비성적

 

으로 여겨질 정도이다.

 

 

 

저자는 '에필로그'를 통해 본문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었던 주요 주장들을 정리한다. 저자가 보는, '서해 평화가

 

파괴되는 일곱 가지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국가의 핵심 이익이 있는 서해에서 남북한은 결전을 준비하고 있다.

 

2) 남북한 간 분쟁에 편승한 강대국의 재균형 정책이 문제다.

 

3) 한국군 내 위기관리 전략과 시스템의 부재가 해역의 안정을 파괴했다.

 

4) 군에 대한 문민통제의 실종이 잦은 교전을 자초했다.

 

5) 작전본부와 사령부의 무능 또한 빼놓을 수 없는 확전 요인이다.

 

6) 안보 실패를 국내 정치적 논란으로 확대한 정치권력이야말로 가장 큰 평화의 적이다.

 

7) 진실을 조작하고 감춘 결과 영웅은 속출하고 평화는 파괴됐다.

 

 

 

 

 

각각의 주장에는 본문과 잘 연결된 타당한 근거가 제시되어 있으니, 이 책을 읽을지 말지 고민하는 분이시라면

 

위 부분을 인용한 333-345 쪽을 먼저 접해 본 뒤 결정하시는 것이 좋겠다. 단, 7) 부분은 내가 읽어본 초판 1쇄

 

는 삭제되고 없다. 본문의 소챕터 제목도 '일곱 가지 이유'이고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책소개에도 일곱 가지

 

모두 실려있는 것으로 보아, 집필은 되었으나 막판 편집 과정에서 삭제되고 그 흔적이 남은 모양이다. 증언자의

 

명예 탓인지 아니면 사실관계가 논쟁적이어서인지, 괜한 흥미가 동한다.

 

 

 

나는 의무경찰로 복무를 했기 때문에, 직제와 같은 기초적 군사상식조차 몇 차례씩 정리해 가며 읽어야 했다.

 

캐스트와 강연을 통해 접한 저자의 분석력에 감탄한 적은 있으나 그 아닌 다른 군사 전문가의 식견을 찾아 보고

 

비교해 본 경험은 없다. 말하자면, 나는 이 책의 주장이 진실에 가까운지 아닌지, 혹은 진실이라 하더라도 어떤

 

종류의, 그리고 얼만큼의 영향력을 가지는지 가늠할 만한 충분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오늘의 독후감

 

은 훗날 관련된 독서를 할 때에 이 책의 인상과 주요 내용을 다시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만 정리해 두고 그치려

 

한다.

 

 

 

단, 해당 분야에의 전문적 지식이 없더라도, 일반적 상식의 차원에서도 충분히 문제적인 상황이라 여겨졌던 부

 

분들 중 하나를 발췌하여 끝에 덧붙인다.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이 있었다. 같은 해의) 12월 20일 . 군은 재차 연평도에서 사격훈련을 실시

 

한다. 국제사회의 우려 속에 강행된 훈련에 북은 대응하지 않았다. 이튿날 보수 언론은 "우리의 주권을 쏘았

 

다"며 정당한 훈련에 북은 겁먹고 대응하지 못한 것으로 묘사했다. 이것으로 우리가 북한을 완전히 힘으로 제

 

압한 것 같았다. 그러나 실상은 이러하다. K-9 자주포를 쏘기는 쏘았는데 딱 한 발 쏘았다. 대부분이 물기둥

 

이 아닌 물방울만 튀는 벌컨포였다. 11월 23일 훈련처럼 다량의 포를 쏜 것도 아니고 한 시간 이내로 사격훈

 

련도 짧게 끝났다. 그리고 언론에는 무슨 화기를 얼마만큼 쏘았는지 일절 발표하지 않았다. 이걸 다 보고 있

 

는 북한에는 비밀이 아니었지만, 우리 국민에게만 비밀이었다. 북에 강경한 한국 내 일부 여론을 의식한 '국

 

내 정치용 사격훈련'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소규모 사격훈련을 하면서도 합참은 또다른 과잉조치로 해, 공군과 갈등을 빚었다. 합참은 공

 

군에 무력시위의 일환으로 "북한이 잘 보이도록 F-15K 한 개 편대를 일렬로 비행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

 

지시에 공군은 경악했다. 그런 비행은 에어쇼에서나 하는 것이지 접적 공간에서는 위험천만한 것이다. 이에

 

반발한 공군은 아예 합참의 지시를 이행하지 않았다. 제1연평해전 때처럼 "NLL 선상에 모양 좋게 늘어서 있

 

으라"는 지시와 마찬가지로 비전문적인 조치였다.

 

 

(p 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