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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2

귀향

어쩐지 조금은 억울하다. 물론 귀향이라는 말이 갖는 어감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나에

게는 정든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야말로 귀향인 것이다. 나름대로 애상감 넘치는 행위이건만, 대부분

의 사람들이 C급 유머인 줄 알고 예의바르게 웃어주고 만다. 여하튼, 그렇게 내 고향 인천으로 귀향.


열흘여만에 보는 동네는 그대로이다. 눈에 익숙한, 그 모습들 그대로에 다시 눈이 맞춰지기까지

잠시의 낯설음은 항상 나에게 소소한 즐거움이다.


집으로 내려오는 교통수단 중에 꽤 고급에 속하는 삼화고속 시외버스는 최종도착지인 우리집 앞으로

바로 오지 않고 인천 이곳저곳을 돌아서 온다. 대학생활 동안 수십여차례 타본  덕분에 눈에 익은

곳도 있지만 그 대부분은 기왕부터 내가 알고 있던 곳이다. 이렇게 스쳐 지나가며 다시 한번 예전

을 떠올리는 것 또한 귀향의 즐거움 중 하나이다.



계절은 돌아서 다시 온다. 그리고 그 계절의 절실한 느낌을 다시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인생의 즐거

움이다.  가을은 그러한 계절의 느낌에서 단연 최고이다.


겨울의 폐쇄성에서 오는 안락함과 따뜻함, 봄의 나뭇가지 사이로 새어드는 햇살도 매력적이지만, 감

정의 폭으로 따지자면 가을의 느지막한 햇살을 받는 일상의 모습처럼 그 행보가 큰 것은 없다. 오늘

도 아린 가슴을 부여잡고 죽어버릴 뻔 했지 뭐야.


인천의 건물들은 서울의 그것처럼 뽀대나지 않는다. 삼층, 이층의 건물들이 차례로 늘어지어 주홍

색 벽돌에 쓸쓸히 저녁햇살을 받고 있는 그 광경이라니. 덕분에 어제밤 급작스레 다시 시작된

공연후유증과 겹쳐 멋진 시너지 효과가 나버렸다.


어쩐지 골덴 소재의 옷을 다시 꺼내어 입어보고 싶은 저녁이다. 다들 즐가.


-기분을 업시키기 위해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는데, 조금은 두렵기도 하다. 여하튼, 기대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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