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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2

권미랑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무슨 일식 체인점 이름같다. 미다래같은. 혹은 '권미'와 함께, 이렇게 읽히기도

하고.


인천 집에서 미리 찾아 놓은 크리스마스 사진들을 서울에서도 쓰기 위해 (프리챌 자료실이 없어진 것

에 궁시렁궁시렁 신경질 내면서) 한메일에 첨부하여 나한테 보냈다. 어, 그런데 그게 순식간에 용량

이 넘어 가더라고. 그 때엔 뭐, 별로 크게 신경쓰지 않았는데.


월요일 아침에 인천에서 등교를 했단 말이지. 아버지가 부개역까지 태워다 주셔서 직통은 못 타고

굼벵이 국철을 타고선 꾸역꾸역 가고 있는데, 온수인가 소사쯤에서, 퍼뜩 생각이 나더란 말이지.  


어, 용량이 꽉 찼으면 앞 부분 메일들이 날아가지 않았을까.


마음은 초조해지기 시작하고, 두시간 잔 눈은 따끔거리고, 게다가 신촌은 얼마나 추웠는지!


후다닥 후다닥 달려서 학교에서 제일 빨리 들어갈 수 있는 컴퓨터실인 공대를 찾아 확인하고는,

지워지지 않은 것을 보고 나서야 한 시름 놓았다.(난 아무리 추워도 더플코트의 후드는 잘 뒤집어

쓰지 않았었는데, 어제 하도 추워서 써 보고서는 의외로 따뜻하다는 걸 알고 계속 뒤집어 쓰고 다

닌다. 덕분에 추레한 취미가 하나 더 생겼구나. Thanx, pal.)


그냥 그 메일들만으로 스무살을 추억하는 것이 가장 행복하지. 앞으로 삶을 살면서 나는 수많은 사

람들을 더 만나고 운명같은 사랑도 만나겠지만, 그 때의 나는 삶에서도 즐거움을 얻고 주위의 사

람들에게서도 즐거움을 얻고 있을 테니, 그 어느 때도 스무살처럼, 한 사람만으로 온통 삶의 즐거

움이 채워지는 일은 없을 거야.  고마웠다. 지금도 고맙고. 내 행운의 여신님.  ...C컵 이하인데도  

여신님 자리를 꿰차고 있는 것은, 내 머릿속 신화세계에서 오로지 너뿐이야. 고마운 줄 알라구.




빠알간 배경 보고 있으니까, 브리짓 존스의 일기 생각 나지 않냐. 어쩐지 연말 기분도 나고.

우리 꿈이잖아. 박 여장군님 성공하여 귀국하시고, 지연이는 성공적인 디자이너가 되어 있고,

인주씨는 일찍도 장가 가서 자기랑 똑같이 생긴 아들 쌍둥이가 있고, 그리고 연말에 누군가의 원룸

에 모여 인주의 부부생활을 흥미롭게 듣기도 하고 (분명히 있겠지만) 연애로 고민하는 누군가의 상담

도 해 보고, 다 같이 연말특집 프로그램이나 크리스마스 영화 보다가 샴페인 한잔 쨍. 대박이로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랑. 이제는 성별도 모호한 my old p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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