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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13

공항에서

 

 

 

 

 

 

영종 공항에서 2년의 군 생활을 보낸 나는, 공항에 갈 일이 있으면 항상 정해진 시간보다 넉넉하게 일찍 도착해

 

옛 일을 떠올리며 이곳저곳을 둘러보곤 한다. 며칠 전 공항에 가게 되어, 말년 시절 저녁을 먹고 나면 사회에 나

 

가 무엇을 할까 생각하며 산책을 하곤 하던 딱정벌레 모양의 교통센터 쪽을 찾았다. 순찰하는 척 하며 시간을 때

 

우는 데 제격이었던 긴 에스컬레이터를 오락가락 재미삼아 타고 있는데 인근에 새로 생긴 전시물이 눈에 띄었

 

다. 다가가 보니 해외여행 시 반입과 반출해서는 안 되는 물건들을 따로 전시해 두고 있었다. AK-47과 같은 소총

 

이야 당연히 들고 타서는 안 되는 것을 알겠지마는 의외의 것들이 보여 사진을 찍어 보았다. 첫번째로 눈에 띈

 

것은 소형 권총들. 그 중에서도 특히 열쇠고리형 권총에 눈이 갔다. 생각해 보면 초등학교 시절 학교 앞 문방구

 

의 뽑기에서 비슷한 상품들을 많이 보았던 것도 같다.

 

 

 

 

 

 

 

 

 

 

 

 

 

사실 제일 관심이 갔던 것은 역시 도검류. 특히 맨 아래에 있는 두 자루는 무척이나 탐이 났다. 외국에 나갔던 것

 

은 인도와 캄보디아 두 차례인데 저렇게 생긴 칼을 사 가지고 오는 바람에 두 번 다 세관에 걸려들었던 경험이

 

떠올라 씁쓸했다. 결과는 다행히도 약간의 설교 끝에 훈방 조치.

 

 

 

 

 

 

 

 

 

 

 

 

 

어휴 예뻐. 몰락한 왕족의 마지막 왕자가 자결하던 순간에 손에 들고 있던 칼이라든가 하는 전설이 서려있을 것

 

만 같다.

 

 

 

 

 

 

 

 

 

 

 

 

 

위의 검보다 장식이 좀 과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상상력을 자극하는 좋은 모양의 칼. 무기를 따로 모아놓은 이

 

장식장을 보며 눈여겨 보았던 점은, '석궁'은 분명 금지되어 있지만 국궁이나 만궁 형태의 일반 활에 대한 언급

 

은 없었다는 점. 몽고에 가고 싶은 심사는 끝도 없는 초원에서 말을 타 보고 싶은 마음 반, 작고 성능 좋은 활을

 

한 자루 사오고 싶은 마음 반이다.  

 

 

 

 

 

 

 

 

 

 

 

 

 

무기와 함께 이것들도 안 된다. 왜 안 되는지에 대해서 함부로 입을 놀렸다가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5년을 다시

 

내게 된 바람에 이 부분은 여기까지만. 사진을 찍으면서도 괜히 불안해 두리번두리번거렸다. 단, 6.15 남북공

 

선언은 우리 정부에서도 같이 한 일이고 보수 일간지를 포함한 모든 언론에 버젓이 보도되었던 일인데 그 사

 

진이 왜 금지품목인지는 정말로 모르겠다는 의문 하나 정도는 붙여둬야겠다.  

 

 

 

 

 

 

 

 

 

 

 

 

 

'아니, 아무리 위에 바지를 입는다 하더라도 눈에 띄지 않을 수 있는 크기인가?', '혹 서양에서 사용되었던 것이

 

라 서로 별로 특별하다고 인식하지 않았던 것일까?' 따위의 불경한 생각을 일삼다가 자세히 살펴보니 실제 테러

 

에 사용되었던 속옷 폭탄라고 쓰여져 있어 머쓱해졌다. 그냥 예시품이거나 발명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테러

 

를 소재로 이상한 생각을 해서 정말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한 마음에 집으로 돌아온 뒤 검색을 해 보니 2009년의 성탄절에 암스테르담을 출발해 디트로이트로 향하

 

민항기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성탄절 속옷 테러'라는, 정확한 내용을 추측하다

 

보면 상상력이 자극되기 시작하는 이름이 붙었고, 외국에서는 'Underwear Bomber case'라는 비교적 건조한 이

 

름이 붙어 있었다.

 

 

 

주범자는 스물세 살 먹은 나이지리아 국적의 알카에다 조직원으로 밝혀졌는데, 공항검색대까지 무사히 통과한

 

이 최첨단 팬티 폭탄은 폭파 시 폭죽 터지는 소리와 함께 착용자였던 우마르 파압둘무탈라브(23) 군의 사

 

타구니에 2도 화상만을 남겼다고 한다. 주범자 외의 피해자는 한 명으로, 테러범을 제압하기 위해 손으로 연기

 

가 나는 부위를 려치다가 오른손에 화상을 입은 네덜란드의 영화 감독 야스퍼 슈링거였다. 기록을 찾아보니

 

공교롭게도 범인과 같은 나이였던 야스퍼 슈링거(23) 군은 '내가 영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다.

 

 

 

당시의 기사들에는 사건의 정황만이 적혀져 있어 그 뒤로 어떻게 되었나 궁금해 외신을 좀 더 뒤져보니, 289명

 

에 대한 살인 미수 및 '대량 살상 무기(weapon of mass destruction)' 사용 등의 혐의로 'life without parole', 그러

 

니까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었다. 여러 생각이 드는 잠깐의 공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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