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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4

결론은 하나






아카라카에 다녀왔다. 사정이 있어 노천극장 대기실에 들어갔다가 승훈이형을 만나 악수를 나누

기도 했다. 조금 얘기를 나누다가 혹시 시간이 되시면 최대호가 여자친구를 사랑한다고 말씀해

주십사 내 이름과 정인의 이름까지 누차 말했는데 막상 무대에 나온 승훈이 형은 자기 노래만 쌀랑

부르고 들어가 버렸다.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버려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고 이야기를 해주자 그걸 다

듣고 난 정인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좋아했지만 아카라카의 분위기가 최절정이었던 마지막에 승훈이

형이 직접 말해줬더라면 훨씬 더 감동했을 것이다. 성공해야만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꼭 성공해서 다시 만나야지. 다시 만나서 약속 지키라고 할거다. 실제로 봤을 때에도 방송에서

보는 것처럼 사람을 기분좋게 해 주길래 믿었는데, 쳇, 착한 얼굴로 사람 뒷통수 때렸다.

두고보자 신승훈.


뒷풀이는 즐거웠다. 언제나와 같이 즐겁고 한편으로 공허한 모임이었는데 어떻게 생각해 보면 그것

이 신촌이라는 곳의 한 색깔이지 않은가, 하고 뇌까려 보았다.


신입생 음주대장 희원이의 소맥에 완전히 취해 버렸다. 나는 술 마실 때에 쉴새없이 떠들고 있는

탓에 안주를 거의 먹지 않는 편이다. 어제 새벽에는 이제부터라도 안주는 꼭 먹어야지 꼭 먹어야지

하고 토를 내뱉으며 몇번씩이나 생각했다.


곤란한 일이 생겼다. 난 술버릇이래봐야 보통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큰 소리를 낸다든가, 많이 취하면

잔다든가 뭐 그런 건데, 한 이년전부터는 벽이나 백미러를 때리는 버릇이 생겼다. 왜인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대개 반나절 정도 주먹이 욱신욱신할 정도로 여기저기 치고 돌아다니는가본데

(별로 기억이 나지 않으므로 내 얘기같지가 않다.) 요번엔 좀 일이 커졌다. 애끼손가락 아래서부터

팔목까지가 시퍼래져서는 도무지 가라앉을 기미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손가락 마디마디가 굽힐

때마다 삐걱거리는 바람에 생활 구석구석이 불편하다. 샤워도 못 하겠고 (사실 이건 좀 핑계다.

그렇지만 딱히 집밖에 나갈 일도 없는데 굳이 물써가면서 샤워까지 할 건 없지 않을까. 그렇다고

세수정도는 했다는 얘기는 또 아니다.), 컵도 못 잡겠고, 요새 한참 연필로 뭘 좀 쓰는데에 취미를

붙였는데 그것도 쳐다만 보고 있다. 목격자에 의하면 어제는 벽에 머리까지 박았다고 한다. 어쩐지

이마엔 핏멍울이 있고 목이 뻐근하다 싶었지.


아카라카를 보며 입학이후 처음으로 고대에게 진짜 악감정을 가지기도 했고, 뒷풀이에서 새사람들

을 만나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아무튼 여러가지로 파란만장한 하루였지만 어쨌든 결론은

하나밖에 내릴 수 없다. 두고보자 신승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