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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6

9월 5일 -1 (D-21)

오늘 있었던 일이다.


요새의 근무는 저녁 여섯시부터 새벽 두시까지 순찰차를 타는 당직근무이다. 주간에도 평균적으로

200개에서 1000개의 112 신고가 떨어지는 일선과 달리, 소속된 인천 국제 공항경찰대로는 하루를 통

틀어 약 다섯개에서 열개의 신고가 떨어진다. 사정이 그러하다 보니 이름만 근무이지 그 실상은 쉬고

있는 반장들의 옆에서 인터넷을 하거나 TV를 보며 무전을 듣는 것이다.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다고, 쉬면 쉴수록 더 쉬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 마음. 공항경찰대

의 직원들이 전쟁을 방불케 하는 일선의 직원들보다 더 일을 피하려 애쓰는 모습을 보기란 결코 어

려운 일이 아니다.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매일같이 백개가 넘는 사고현장에 나가는 사람에게 열개 더 처리하라는 무

전이 날아 와도 그 사람에게는 그리 큰 일이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애당초 허리띠 풀러 놓고 TV나

보다가 아침 되면 퇴근해야지 하며 출근하는 사람에게 떨어지는 새벽신고는 마치 사형선고와도

같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저녁 여섯시 반쯤에 떨어진 음주운전자 신고에 내가 별 긴장을 하지 않고 있

었던 것도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평소와 같이 좀 쫓는 척 하다가, 에이 안 보이네 벌서 영종대교

넘어서 인천 가 버린 모양이네 아이 아깝네 하며 인천 시내 쪽 순찰차들에게 그쪽으로 간 것 같은

데 한 번 찾아 보세요 무전이나 해 주겠거니 싶었던 것이다. 운전을 하고 있던 조 경장은 한참 일할

나이인 30대 중반임에도 짱박히기로 유명한 젊은이였기 때문에 추측은 확신으로 굳어지고 있었다.


슬슬 영종도 드라이브나 한 바퀴 하고 저녁 먹으러 갈테지, 뭘 먹을까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저녁

을 같이 먹으러 가기 위해 순찰차에 탑승하고 있던 FM의 상징 이 경사님이 갑자기 추격해 보자고

말을 꺼내신 것이다. 버스 운전자가 음주운전을 하고 있다는 신고내용이었기 때문에 처음엔 장난스

레 지나가는 버스 번호판이나 흘끗흘끗 확인하던 우리는, 어찌 된 일인지 급기야 인천시내까지 나

가 다른 관내의 순찰차 세대와 합동하여 해당차량을 찾는 대수색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2년 군생활

동안 공무원 조직의 일원으로서 있는 일을 없애는 것만 철저히 수업받은 나는 없는 일을 만들어 내

는 이 초유의 현상에 당황하며 설마 이런 식으로 찾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저 멀찌감치 보이는

신고차량을 보고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반장님, 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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