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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8

3월

제물포의 한 예식장에서 있었던 홍기 누나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중학교 때에는 학교가 서로 달랐음

에도 열흘에 한 번 정도는 홍기네 집에서 늦게까지 놀다 자곤 했는데, 십여년이 넘어 다시 뵌 홍기

의 부모님은 전혀 모르는 얼굴이었다. 비록 기억이 흐릿한 어릴 때의 일이라지만 2008년 들어 부쩍

자주 일어나는, 세월이 흘렀음을 절감하게 하는 또 하나의 기제였다. 친구들 중에서는 가장 빨리 도착

한 탓에 예식장의 의자에 혼자 앉아 나도 누군가에게는 변한 얼굴일까, 등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기

상과 현관은 식이 시작되기 얼마 전에야 왔다.


보건소 의사 선생님인 현관이는 부임지인 전남 고흥에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일찍 일어나고, 한참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기상과도 동네까지 함께 버스를 타고 온 뒤 집 앞에서 헤어졌다. 뷔페로 잔뜩

부른 배를 부여잡고 뒹굴거리고 있는데 엄마는 주섬주섬 짐을 싸기 시작했다.


엄마는 이전부터도 관절이 썩 좋지 않았다. 그런 중에 그제, 마침 인천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 있어

서울로 올라가지 않고 있던 내게 수영장에 다녀온 엄마는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했노라고 말을 했다.

수영장의 셔틀버스 운전사가 급정지를 하는 바람에 바닥으로 넘어진 뒤부터 통증을 느끼게 되었다

는 것이다. 운전사가, 정식으로 보험 접수를 하면 보험금이 올라가니 일단 의료보험으로 하시고 치

료비는 모두 개인적으로 부담하겠다는 말을 했다고 엄마는 전해 줬지만 군생활 2년동안 교통계에

서 근무하며 사고 가해자가 사고처리가 끝난 뒤 입을 싹 씻는 꼴을 수백 차례나 보아 왔던 나는 직접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니나 다를까, 운전사는 사모님께서 이전부터 관절에 통증이 있으셨다는

데, 그렇다면 지금 느끼시는 통증이 오늘의 사고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느

냐는 말을 해 왔다. 어른의 교통상식 하나. 회사에 소속된 버스나 택시의 운전사가 사고를 냈을 경우

보험금을 내는 것은 운전사 개인이 아니라 회사이다. 운전사와 몇 시간이고 실랑이를 해 봐야 남는

것은 울화통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알았으니까 일단 회사 전화번호나 일러 달

라고 했다. 제대로 된 처리법을 아는 상대를 만난 탓인지 운전사는 갑자기 부쩍 고분고분해진 말투

로 협상을 걸어 오다가 상대하지 않는 내게 이내 화를 내더니 결국 짜증을 내며 번호를 일러 주었다.


전화를 받은 회사 쪽 사람도 어떻게든 보험 접수를 하지 않으려 사고를 처음 당한 사람이라면 혹

할 법한 이런저런 말들을 주워 섬길 뿐이었다. 담당자 분과 제 생각에 차이가 있는 것 같으니까, 그

러면 공정하게 사고처리반에 신고해서 관할서 가서 얘기하시죠, 라는 내 말을 듣고 나서야 담당자

는 정나미 떨어지는 목소리로 그럼 접수할 테니까 기다려 보세요, 라며 전화를 툭 끊어 버렸다. 어른

의 교통상식 둘. 교통사고가 일어났을 때에 경찰에 신고를 하면 교통계의 사고조사반이 출동하게

된다. 이 때 물적피해만이 있었다면 쌍방합의가 이루어진 경우 신고취하가 가능하지만, 인적피해가

있다면 1차량 (교통계의 경찰은 공정성을 위해 ‘가해’와 ‘피해’라는 단어를 쓸 수 없게 되어 있다. 하

지만 1차량이 가해차량이라고 보면 대부분 맞다.) 과 2차량 간에 합의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형사처

벌이 집행된다.


인천에서 가장 큰 응급실을 가지고 있는 길병원으로 향했다. CT를 찍으러 들어간 엄마를 기다리며

버스회사와 해당 보험사인 관광버스공제조합과 수차례의 불쾌한 통화를 나누었다. 어느 정도 일을

끝내고 멍하니 주위를 둘러 보는데, 뼈가 부러진 사람과 피를 흘리는 사람, 절뚝거리며 걷는 사람들

과 초췌한 가족들, 두툼한 파일과 유니폼 점퍼로 알 수 있는 보험사의 사람들이 시야를 가득 채우

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어딘가의 구석에서는 고장난 트럼펫 소리같은 아기의 울음이 들려 왔다. 오

래 있고 싶지 않은 곳을 하나 꼽으라면,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어떤 답이 나올지 모르겠지만 나는 잠

시도 고민하지 않고 응급실을 말하겠다.


엄마는 심한 통증을 말했지만, 다행히도 CT결과상으로는 골절 등이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근육통

이 지속된다면 그것도 문제고, 애당초 관절에 문제가 있는데도 계속해서 그냥 지내왔던 터라 며칠 뒤

입원을 해 보는게 좋겠다고 말하며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이것이 그저께의 일이다.


그래서 엄마는 내일부터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입원을 하게 됐다. 그 준비를 하느라고 이런저런 짐

을 싸고 있었던 것이다. ‘라디오의 시간’의 마지막을 버텨 가며, 3년만의 복학생활을 시작하던 차에

엄마가 입원을 했던 것이 딱 1년 전의 일이다. 하루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아침에 나갔을 때와 똑같

은 상태로 있는 집을 발견하는 것은 무척 우울한 기억이었다. 내일부터 다시 그 생활이로구나, 는 생

각에 대학원 생활에 대한 걱정을 더하니 그저 씁쓸하게 웃는 것 밖에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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