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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6

35일째 - 델리, 슬그머니

아, 이것 참. 멋지게 인사말을 써 놨는데. 나 아직 인도야. 비행기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짐을

풀렀다 다시 쌌는데도 시간이 아직 아홉시간이나 남았네. 민망하지만, 내가 하는 일이 그렇지 뭐.


리컨펌이라는 걸 해야 한대. 항공사에다, 내가 예약했던 그 날짜대로 돌아갈거다, 라고 통보해 주는

건데, 내가 그걸 좀 허술하게 했어. 델리에는 에어 인디아 본사가 있으니까 가서 확인하면 되지 뭐,

하고 마음 편히 생각했는데 막상 델리 와 보니 일요일이라 문을 닫았네. 이것 참. 어떤 사람은 리컨

펌 해 놓고도 자리가 없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인도 수차례 왔다갔다 해도 리컨펌 한 번 안 해

봤다고도 하고. 결국 운 나름이라는 것인데. 인도 여행담을 풀어 놓기만 했다 하면 반년 넘게 여행

한 사람들도 넋을 잃고 듣는 나의 고생담을 반추해 보면, 덜컥 걸려들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돌아갈 때에는 좀 안락하게 앉아 그간 써 온 여행기를 읽으며 따스히 미소지으려 했는데 계획에

없이 또 하루 있게 된다면 평온한 마음이고 자시고 델리 공항에 폭탄 던질 거야. 그정도 고생시켰

으니까 갈 때 정도는 그냥 보내 주라고. 이 빌어먹으르 인도 자식아.


무사히 한국의 방에 앉아 나 돌아왔어, 라고 적을 수 있기를. 하지만 인도여행 중 나를 만난 사람들

은, 내가 비행기에 자리가 없어 델리 한 가운데 주저 앉아 있다고 해도 전혀 놀라지 않을거야. 난

인도에서 자신과 주위에 역병을 몰고 다니는 여행자로 유명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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