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기장/2006

3. 그래서

하나. -전의경 관리는 모두 규정대로.

새로울 것도 없는 이 지침의 하달은, 보통의 군인이라면 저 '규정'이라는 말에 치를 떨겠지만, 인원

이 줄어들은 탓에 규정외적으로 대기소에서 살게 되었던 공항경찰대 의경들에게 내무반을 돌려 주

었다. '규정'대로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비가 주룩주룩 오던 지난 주말 이틀에 걸쳐 공항으

로 옮겼던 살림을 다시 내무반으로 들고 가야 했던 대원들은 모두 울상을 지었지만 귀찮아서 옮기

지 않고 있던 내게는 배의 기쁨을 안겨 주었다.


둘. 인천 내 전 전경대원들을 섞는다는 발상 때문에, 열명뿐이던 내 교통 후임들 중 세명이 날아갔

다. 두명은 배치된지 몇 달이 되지 않은 아이들이라 다소간 아쉬울 뿐이었지만 한명은 꽤 오랜 시

간 군생활을 함께 해 왔고 내 손으로 도로교통법을 가르친 후임이라 크게 서운했다. 좋지 않은 일

로 가게 된데다 새로 배치받게 되는 곳에서는 더욱 기수가 내려가게 됐다는 소식에 셋이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눈물을 글썽거리는 모습이 오래 눈에 남았다.


셋. 직원들이 그대로 남아 난처해진 계장님께서 (난처할 만 했지. 딴데로 발령 보내려고 그렇게나

애쓰는 모습을 보이셨으니.) 분노를 표출하실 곳을 찾다가, 대원이 셋이 줄었다는 핑계로 내 보직

을 내근에서 외근으로 돌려 버리셨다. 사무실에서 하나쯤은 당신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외근근무는 외근대로 하고, 외근 근무가 끝난 뒤에 지금까지 사무실

에서 하던 일을 다 하고 하루를 끝내라는, 다분히 규정외적인 발상이자 전두환식 전의경관리의 좋은

사례였다. 계장님은 끝에 군인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거지? 라는 말도 잊지 않으셨다.

외근 근무는 오전 일곱시부터 오후 일곱시까지 열두시간 중 여덟시간의 도보순찰근무와 식사시간을

포함한 네시간의 휴게시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근무환경인 국제공항의 도로는 전부 아스팔트인데

다 시절은 여름이라 말년에 꼬였구나 하며 덤덤히 짜증을 내고 있었다. 하지만 계장님에의 반발심과

그간 들은 정, 그리고 내가 사무실에서 나가면 그 업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될 것이라는 인간적인

계산 하에 직원들은 내 근무를 하루 여덟시간의 승무로 고정 배정해 주었다.

승무란 여덟시 반부터 오후 여섯시 삼십분까지 순찰차를 타는 근무로서, 외근근무 중에서는 그나마

땡보라고 평가받는 보직으로 외근 아이들이 돌아가며 하고 있었는데 하던 내근 업무를 계속 하는

보상으로 내가 맡게 된 것이다. 직원 분들은 아무리 고정승무라는 배려를 해 주었다지만 내근과

외근을 동시에 하는 대원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며 차라리 외근만 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걱정

을 해 주었는데, 실제로 하루 중 일하는 시간이 한시간 정도뿐이었던 나는 침울한 얼굴을 하며 속으

로 만세를 불렀다.


말년에 계장님 얼굴 뵙는 게 하루하루 짜증이 나던 차에 에어콘 빵빵하게 나오는 순찰차 타고

영종도 드라이브나 하게 생겼으니. 게다가 사무실 지키느라 새벽 여섯시에 나와서 밤 아홉시까지 꼼

짝 못 하고, 다음 날 새벽에 또 나가야 하니 TV도 못 보고 수경 달고서도 열시면 꼬박꼬박 잠자리에

들었었는데, 이젠 여덟시 반까지만 나가면 되니 누워서 책도 보고 웃찾사도 보고 아침잠도 실컷

자고. 컴퓨터에 저장해 놓은 오락도 만화도 다 질려가던 참에. 만세 안 하고 배기겠냐고.


뭐가 됐든, 어차피 얼마나 남았다고, 내무반이 없어진대도 그냥 그러려니 했던 나이지만 말년에

풀리니 좋긴 좋구면. 엇, 나 나가 봐야 돼. 정리는 안 되지만 아무튼 근래 그런 일이 있었다고.

이제, 61일. 아주 약간 보인다. 남이병이 보면 어처구니 없겠지만 말이야.

'일기장 > 2006' 카테고리의 다른 글

1. 계장님  (2) 2006.07.26
2. 한편  (0) 2006.07.26
근황  (3) 2006.07.23
이름  (1) 2006.07.20
7월 16일  (1) 2006.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