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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3

2009 Lost memories

서기 2005년, 경제적 압박과 정치적 혼란에서 촉발된 중동지역의 산발적인 국지전은 이내 국제사회

에서의 역량신장을 바라는 아시아의 신흥국들과 예전의 역량을 되찾고자 하는 유럽의 강호들을

불러들여 대미국 전쟁을 일으키게 한다. 세계 3차대전의 발발이다.


제국의 마지막 광영을 바라는 러시아의 갑작스런 참여로 전황은 일견 반미 연합군쪽에 승산이 있는

듯 보여졌다. 그러나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반미 연합군이 승리한다면 세계의 중심은 17세기까지

와 마찬가지로 아시아로 넘어가 버린다는 미국의 백인 대통합설에 넘어간 영국과 프랑스의 배신

으로 연합군은 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2006년,  전후 미국의 복구작업을 도울 수 있는 경제적

여력을 갖춘 나라들이나 유럽에 속해 있는 백인의 나라들은 평화적으로 종전서약에 사인하나 경제

적 잠재성만을 가지고 있는, 주로 아시아에 속해 있는 나라들은 모두 주권을 빼앗기고 미국에 복속

된다.


재래적인 군사력만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3차대전중 특이할 만한 군사적 역할을 맡지 못했던 대한

민국은 활발한 국가간 외교활동으로 그 위치를 보장했는데 이것이 도리어 미국의 신경을 건드림으

로써, 종전후 잠재적 독립을 약속하는 신탁보다 한단계 아래인 점령국 취급을 당하게 된다. 미국은

주권침탈의 역사가 있었던 대한민국의 반발에 단단히 준비해 놓지만, 20세기 후반 무렵 시작된

진보층의 약진으로 입지에 불안을 느끼던 보수-기득권층의 큰 협조를 얻어 일은 매끄럽게 처리된다.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산발적인 데모는 계속되지만 전세계를 통치하게 된 미국이 건네주는 실질

적 이익에 대다수 국민들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중고등학교에서 3차대전은 우리의 실수였다고 배운

세대들이 입학하면서 결국 시위등도 잦아들기 시작한다.


2008년 봄, 러시아의 갑작스러운 연합군 참여가 미국의 사주였다는 소식이 흘러나온다. 그 증거로서

패전국 취급이라고 보기 어려운 미국의 전후 원조가 언급되며 루머는 뉴스가 된다. 2008년 여름,

일신상의 사유를 원인으로 러시아 국방장관이 전격 사퇴하지만 사흘 후 휴양지의 별장에서 저격당

한다. 이를 시작으로 중동과 남부아시아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던 테러집단의 목표는 전부 러시아

로 향하게 된다. 2003년 가을 크레믈린 궁이 폭파되는 시점에 러시아는 러시아 주재 미군의 원조를

요청하게 되고, 대테러 전쟁을 제 4차 세계대전으로 천명한 미군의 총포 앞에 경제적 능력을 갖춘

중동의 테러집단이 일소당한다.


2009년, 다음 차례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남부 아시아의 테러집단은 보다 강력한 대상을 목표로

삼는 데에 합의하고, 미국과 러시아의 공동연구로 태어난 대량살상무기, 상층권 레이저가 실려 있는

인공위성을 조작하기로 결정한다. 조작실이 위치하고 있는 모스크바에 무사히 침투한 작전조는 작

전 도중 미군의 반격을 받게 되고 이 과정에서 잘못 조작된 상층권 레이저는 폭 50km의 거대한 빛

줄기를 시간분계선부터 흩뿌리기 시작한다.


폭으로는 하나의 도시 정도이나 그 과정에서 증발된 수증기가 하늘을 가리고, 갈라진 땅에서 용암이

흘러나와 곳곳에서 가스폭발이 줄을 잇는다. 레이저가 태평양에서 오래 지체하는 바람에 잔뜩 증발

된 물을 채우기 위해 곳곳에서 물이 몰려들고, 이 과정에서 동아시아의 연안 도시들은 높이 2-30m

의 해일을 경험하게 된다. 유라시아 판과의 결정적인 분리로 일본은 침몰하고, 주로 섬으로 이루어진

동남아시아의 나라들은 모든 건물을 잃었다.


마침 과외가 없어 인천에 내려가지 않았던 최대호는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하고 정신을 차리자

마자 어렵게 해외전화를 건다.


"박졍! 우주로 도망가! 레이저가 덮칠거야!"


왜냐하면 캐나다는 우리보다 하루가 느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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