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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6

19일째 - 다즐링

이곳은 해발 2200m의 다즐링. 뉴 잘패구리 역에 도착하고도 눈썹이 휘날리게, 강원도 저리 가라

하는 절벽길을, 삼십도에서 사십오도 각도를 유지하며 날아가는 지프차를 타고도 네시간이 걸려

올라올 수 있는 곳입니다. 과연 고도가 고도인지라, 평지를 걷다가도 숨이 차고, 항상 멍하니 졸린

듯한 느낌이 듭니다.


전술했듯이, 다즐링은 여러가지 정치적 상황 뒤에 이 곳을 차지하게 된 영국이 휴양지이자 차 재배지

로 건설한 도시이지요. 갑작스런 발전 상황 탓에 인력이 부족해지자 영국인들은 인근의 네팔인들을

영입시켰고, 이후 달라이 라마와 함께 피난을 온 티벳인들이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영국인

이 떠나고 나자 이 곳은 인도이지만 인도인을 보기 어렵고, 인도이지만 인도 풍경을 보기 어려운

기묘한 곳이 되어 여행객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지요. 한국인으로서의 감상을 말하자면, 사내고 계집

이고 뒷통수 한 대만 치면 빠질 것 같은 눈알을 데굴거리며 사기를 치려 드는 인도인이 없고, 우리네

얼굴과 똑같이, 정말 똑같이 생긴 사람들이 걸어 다녀 괜찮은 기분입니다. 네팔인도 그렇지만 특히

티벳인들은 정말 우리와 똑같이 생겼거든요. 심지어 오늘 어떤 서양 여행자는 내게 현지인이냐고

묻기까지 했지요.


역시나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인도인은 다소 게으른 것 같아요. IT산업의 메카라고 하지만, 그것은

남한의 33배 되는 그 넓은 인도 땅에서도 두세개 동 정도의 구역에서, 전 인구의 0.000001%도 채

안 되는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역사일 뿐이고, 농업을 제하고 나면 아직도 인도의 주요 산업은 관광

업입니다. 뛰어난 선조들이 만들어 놓은 것을 가지고 먹고 사는 것이지요. 인도를 여행하다 보면 호미

하나 없이 맨손으로 농사를 짓거나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 등, 도무지 발전에의 의지를 보이지

않는 모습을 흔히 접하게 됩니다. 배낭여행자들끼리 이 화제로 이야기를 시작하면 대단히 공감하며

다들 몇개씩의 사례를 늘어 놓을 정도로 많은 면에서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그러면서 자신들이

행복하다면, 행복해진답시고 취직해서 얼굴 찌푸리며 사는 우리네보다 낫겠지만, 그리고 대부분의

우리가 인도와 인도인에 대해 갖는 이미지도 그렇지만, 그러나 실제 옆에서 보면 전혀 그렇지 않아요.

나는 인도인들을 보면서 행복해 한다든지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 무사안일하

게 그저 오늘을 살아갈 뿐이지요. 어제는 지났으니 상관 없고, 내일은 아직 안 왔으니 상관 없고,

오늘은 지금이니까 어절 수 없이.


그러나 다즐링을 꾸려가고 있는 네팔인들과 티벳인들은 다른 것 같습니다. 일단 해발 2000m가 넘

는 이 곳에 학교를 세워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기차역을 만들어 기차를 끌어 오고, 끊임없이 마을

을 청소하고 꾸미는 것을 봐도 그렇습니다. 나는 새로운 도시에 가면 일단 조각상등을 파는 기념품

가게부터 찾고 보는데, 오늘 돌아 본 다즐링의 가게들에서 나는 정말 놀라 버렸습니다. 대충 나무나

돌을 깎아 팔던 다른 도시들과 달리, 이 곳의 기념품은 정말 휘황찬란해요. 세밀하고, 아름답고.

물론 그러니만큼 가격은 비교가 안 되지만, 뭐랄까,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느낌입니다. 게다가,

안일하게 불교나 힌두의 조각상들만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산악지역에서 살아 온 자신들의 생활

을 적극적으로 상품화시켜 여러가지 기념품을 마련해 두었는데, 자세한 내용은 이미 개중 몇가지

를 지인들을 위해 구입했기에 적기가 어렵습니다.  


날씨는 한국의 초겨울 날씨 정도. 그러나 해가 지고 나면 온도가 무섭게 내려가, 다른 도시에서는

치안 때문에 밤 늦게 다닐 수가 없었지만 다즐링은 정말로 추워서 못 나다닙니다. 현지 시각 여덟

시인 지금, 나는 이제 들어가 씻고 빨래를 한 뒤 일기를 쓰고 바로 잘 생각입니다.


아주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휴가를 주도록 청원한 뒤 이리로 데려

오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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