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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2

11월 1일, 11시 1분.



마치 일부러 그려 놓은 것처럼 노란색과 초록색, 빨간색이 어우러져 그 안에 작게나마라도 있는 사

람이 거슬려 보인다. 연세대학교를 다닌다는 것이 자랑으로 느껴지는 때는 국내 최고의 사학이니 어

쩌니 하는 되지도 않은 말을 듣는 때보다 이런 사진 한 장을 볼 때라고 감히 말할 만 하다.



빛나씨가 연극과 인생 동아리 커뮤니티에 올려준 덕분에 지난 <굿 닥터> 공연 사진이 몇 장 생겼다.

새로이 시작하는 모종의 프로젝트 때문에 요새는 연극에 관련된 책을 하루에 거의 두세권씩 읽고 있

는데, 마음에 닿는 부분이 많아 일기에 올려 보고 싶었지만 글만으로 올리기에는 너무 딱딱한 내용

들이라 약간 저어하고 있던 차에 잘 되었다. 무대 위에서 기라기라 조명을 받을 때나 멀쩡해 보이던

얼굴을 형광등으로 비추면 과연 어떤 몰골이 나오는가 잘 감상하시라. 공연이 끝난 뒤에 눈끝이 올

라가고 턱선에는 온통 검은 칠을 해 놓은 사진들 가운데 유일하게 류왕수만이 잘 나와 줬다. 워낙

액션이 많아서 땀으로 다 지워졌던 모양이다.


말고도 이런저런 주제들로 묶어 놓은 사진군들이 일기에 올라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한번에 다 올렸

다가는 또 한동안 올릴 사진이 없어 고민할 것이 뻔하기에 참지만 얼른 올리고 어울리는 글을 쓰고

싶어 안달이다.


오늘은 같이 사는 정훈이형이 추천해준 '이자까야'라는 술집에 가 보았다. 분위기도, 음식도 모두

훌륭해서 돈이 없는 요즘의 현실이 또다시 개탄스러운 순간이었다. 그제에는 그 유명한 -나비씨의

단골이라는- 홍대옆 기찻길 소금구이집도 가 보고.  빛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즐겁고 따뜻한 인

생의 한 때이다. 세상에 태어나게 해 줘서 고맙다, 정도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살 만하다고 느끼는

것은 이런 날들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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