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기장/2006

10일째 - 바라나시

이곳은 갠지스강으로 유명한 힌두교의 성지 바라나시.


다른 곳이 아닌 인도로 여행을 결정했다면 필경 무언가 의미를 찾고 싶다는 건방진 마음이 있을 터,

그런 것을 찾고 싶다면 바라나시로 가 보라는 여행길 스승님들의 충고를 따라 오게 되었는데.


과연, 이것은 평지 위에 세워진 인간의 도시이고 그리로 물방울의 모임인 강이 하나 흐를 뿐인데,

게다가 주위의 건물들도 아그라나 카주라호에 비하면 형편없는 것들 뿐인데도, 나는 여기에서

'평화로움'이라는 단어를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느꼈다.


도시의 특성상 이곳에는 장기 체류자들이 많기 때문에, 다른 여행자들을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곳에 오래 머물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나름대로 이 곳에서 시간을 보

내는 법을 터득하고 있다. 강가에 앉아 그림을 그리거나, 영어소통이 가능한 다른 나라의 여행자들

과 물 한 병 들고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인도 악기를 연주하거나 한다. 어젯밤 나는 강가에서

인도식 단소로 아리랑을 불러 주고 각국의 여행자들로부터 갈채를 받았다.


나는 인도식 옷을 입고 바짓단을 펄렁거리며 일기장을 든 채로 이곳저곳을 어슬렁거린다. 목욕하는

아이들의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보트를 타 보기도 하고, 화장터에서 시체가 타는 것을 물끄러미

보다 보면 하루는 잘도 지나간다. 어제는 마음 맞는 여행자들과 이야기를 하고 노느라 새벽 한시

까지 깨어 있었다. 일기를 다 쓰고 소등한 것은 두시. 어제는 런던 토박이 청년에게서 브리티쉬 액센

트와, 오사카 출신의 두 젊은이들로부터 오사카 사투리를 단기간 집중 전수받았다.



오늘 낮, 나는 이한철의 수퍼스타와 스티비 원더의 레잇틀리, 여행스케치의 별이 진다네를 부르며

강가를 타박타박 걷고 있었다. 멀찌감치 그늘에서 주홍색의 싸리 비슷한 것을 입고 있던 사제가 부스

스 일어나더니 나를 물끄러미 보면서, 마침 그의 옆을 지나갈 때쯤이 되자 나를 향해

'You look really peaceful and happy'

라고 말했다. 나는 씩 웃어 주었다.

'일기장 > 2006' 카테고리의 다른 글

13일째 - 바라나시  (0) 2006.11.11
12일째- 바라나시  (0) 2006.11.10
7일째 - 카주라호  (0) 2006.11.05
5일째. 오르차 - 잔시 - 카주라호  (0) 2006.11.03
4일째. 오르차.  (1) 2006.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