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遊記/4대강 자전거길

0. 4대강 자전거 길 종주

 

 

 

 

전기자전거에 흥미를 갖기 시작한 무렵부터 함께 바라왔던 일이다. 자전거를 타고 자전거 도로를 통해 남한을

 

일주할 수 있다는 것. 실질적으로는 자전거 국토종주라고 해야 하지만 애석하게도 공식 명칭은 4대강 자전거길

 

종주. 이승만의 농지법 개혁이나 전두환의 과외 금지처럼, 피눈물을 머금고라도 공은 공이라고 인정해 주어야

 

할 17대 대통령 이명박 씨의 업적이다.

 

 

 

단지 기왕에 흩어져 있던 자전거 길을 정비하고 하나로 연결했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 일주를 위해 국토교

 

통부와 안전행정부는 손을 잡고 '4대강 국토종주 자전거길 여행'이라는 수첩을 발행하였다.

 

 

 

 

 

 

녹색 바탕에 금색 글씨, 비닐로 한 번 더 감싼 표지, 자전거 그림 밑에 그려진 'PASSPORT라는 단어까지, 이 수

 

첩은 진짜 여권과 대단히 흡사하다. 히히히, 갖고 싶지? 라고 혀를 낼름거리며 으쓱거릴 전임 대통령의 표정이

 

떠올라 분하긴 하지만, 진짜 여권에도 도장 몇 개 없는 나로서는 갖고 싶긴 갖고 싶은 마음 감출 수 없다. 그런데

 

수첩을 넘겨보면.

 

 

 

 

 

 

 

수첩을 펼쳐보면, 각 자전거길 별로 적게는 두 개부터 열 개까지 거점이 나와 있다. 위 그림의 왼쪽에는 종주길

 

의 출발점인 인천-서울 간의 '아라자전거길'과 서울 내의 '한강종주자전거길'의 지도가 나와 있다. 각각 두 개의

 

거점, 3개의 거점이 포함되어 있음을 보실 수 있을 것이다.

 

 

 

해당 거점에 직접 가 보면, 전화 부스 모양의 빨간 구조물이 있다. 그 안에 들어가 보면, 그 거점의 특징을 살린

 

디자인의 스탬프가 있다. 이 디자인은 거점마다 다르다. 이렇게 한 자전거길의 스탬프를 모두 모으면, 위 사진의

 

오른쪽 그림에 보이듯 그 자전거길을 종주했다는 '스티커'를 붙여준다!

 

 

 

나는 공무원이 어쩌다 문득 이 아이디어를 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건 조그만 조그만한 미션을 주어 사람의

 

돈과 열정을 계속해서 빨아먹는 온라인 게임 회사의 프로듀서나, 혹은 따조나 국찐이 빵의 스티커를 만들어냈던

 

마케팅 팀의 역작일 것이다.

 

 

 

우리 MB 정부가 총 600여 km에 달하는 4대강 자전거 길을 정비했다우, 다들 가서 살펴 보시우, 하고 그저 말만

 

했더라면 과연 몇 명이나 되는 사람이 도전했을까. 아니, 그런 경우라면 보상이 없으니 딱히 도전이라 할 것도

 

없다. 하지만 자전거길을 10km, 20km 단위로 잘라놓고 하나하나 달성할 때마다 스탬프를 직접 찍게 하다니. 어

 

쩐지 톰 소여에게 속아 왕구슬을 주고 내 손으로 페인트칠을 하고 있는 멍청이가 된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날카로운 분석과 고찰은 들어갈 틈이 없다. 스티커를 열심히 모으면, 이번엔 '메달'을 주기 때문이다!

 

 

 

 

 

 

 

공문서의 양식에 맞춰진 종주 인증서와 함께 이 메달, 진짜로 준다. 고급 박스에 넣어서 택배로 보내준다. 게다

 

가 무료다!

 

 

 

이런저런 손짓에 혹해 어머 저 오빠 좀 봐, 하고 흔들려 버렸던 내 마음. 새로 구입한 전기 자전거로 왕복 40여

 

km의 출근길을 두어 번 왕복한 것이 전부인 초짜 주제에, 느지막히 일어난 어느 토요일 점심, 쏘세지를 구워서

 

냠냠 밥을 먹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시작할 거라면, 오늘이 그 날이지 말란 이유가 있는가?

 

 

 

2014년 5월 31일 토요일 오후. 시작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