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遊記/2015 교토

2일차 - 3. 배워봅시다 나오시마直島

 

 

목적지인 나오시마에 대해 잠깐 설명하고 넘어갈까 한다. 설명이 좀 길어질테니 나오시마, 메세나, 안도 다다오 등의 단어에 별달리 흥미를 갖지 않은 분은 읽지 않고 지나가셔도 좋다.

 

 

 

 

 

 

 

 

나오시마는 세토 내해에 위치한 섬이다. 위 지도에서는 '세토 나이카이'라는 글자 중 '카'자 근처에 위치해 있다.

 

세토 내해는 시코쿠四國, 혼슈本州, 큐슈九州의 큰 세 개의 섬에 둘러싸인 일본 최대의 내해이다. 규슈 뿐 아니라 대륙의 문물을 교토 지방으로 연결해 주던 해양 운송의 중심지로 수많은 항구취락이 발달한 지역이다. 운송업 뿐 아니라 벼농사와 연안어업이 가능하여 오랫동안 흥성을 누렸던 기록이 있다.

 

섬의 이름이 나오시마로 된 데에는 이러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12세기에 스토쿠천황崇德天皇(이 글에서는 고유명사로 취급하여 천황이라고 적기로 한다.)이 이 섬을 지나가다가 섬 주민들의 순진하고 소박한 모습을 보고 감화되어, 곧을 직直자를 붙여 나오시마直島로 부르도록 했다는 것이다. 나오시마에만 유난스레 순진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살았을 리는 없으니, 경제가 크게 발전하지 않았던 시절에도 사람들이 순박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 만한 최소한의 수요와 공급 시스템이 갖추어졌다는 뜻이 아닐까 한다. 하기사 깊게 생각할 것 없이 높은 양반 앞에서 순진하고 소박한 모습 외에 달리 보일 만한 모습이 뭐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2차 대전 이후 세토 내해의 도서 지역에는 수많은 공장과 제련소가 들어섰다. 여기에서 엄청난 양의 산업폐기물이 배출되었으며 대부분이 불법 매립되었다. 심각한 환경 오염은 당시에도 거주지로서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었다. 아울러 일본의 산업화가 진척됨에 따라 기계화, 자동화가 이루어져 기존의 제조업 및 광업이 쇠퇴하여 일자리가 줄어들었으며 도시화의 영향으로 젊은 인구층의 대도시로의 대량 전출이 일어나게 됐다.

나오시마 또한 이런 운명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둘레 16km, 면적 14.23km2의 땅에 1960년대 8000명이던 인구는 1980년대 중반 무렵 절반으로 감소하였다. 나오시마는 현재도 카가와香川 현 내 16개 지자체 중에서도 가장 인규 규모가 작은 곳이다.

 

 

 

 

 

 

 

 

 

이런 나오시마를 오늘날 세계인들이 찾아가는 관광 명소로 만든 것은 '베네세'라는 회사의 공이다.

 

베네세 그룹의 시작은 1955년 오카마 시에서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교육지 사업을 펼치던 후쿠타케福武 출판이었다. 이 학습지 사업은 크게 성공을 거두어 1980년대에는 중고등학생 뿐 아니라 초등학생과 미취학 아동들까지 대상을 넓혀가, '일본에 태어나 살면서 베네세를 거치지 않는 학생은 없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우리네로 말하자면 옛적의 아이템풀이나 구몬 같은 회사를 떠올리면 되겠다. 

 

1990년 후쿠타케 출판은 베네세라는 새 이름을 기업의 브랜드 로고이자 경영철학으로 도입한다. 위의 로고 이미지에 나온 바와 같이 베네세는 라틴어 bene(well) + esse(being)의 합성어이다. 말하자면 주식회사 웰빙인데 조금 더 멋있게 라틴어로 표현한 것이다. 베네세는 이름을 바꾸면서 주력 사업을 기존의 학습지에서 교육과 복지 전반으로 주력 사업을 전환한다. 현재 베네세의 주력 사업은 교육, 노인복지, 인재개발, 환경, 지역사회발전의 5개 분야이다.

 

이 중 나오시마와 관련된 사업은 환경, 지역사회발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다. 베네세 그룹의 회장인 후쿠타케 소이치로는 기존에도 예술에 관한 독특한 철학을 갖고 있는 이였는데 새로 변환한 기업 전체의 주력 사업과 그의 성향이 맞아떨어지게 된 것이다. 소이치로는 1986년 나오시마의 토지를 매입하며 다음과 같은 원칙을 세웠다고 한다. 자연환경과 건축, 예술작품의 조화, 나아가 지역활력의 재생을 추구한다. 건축가 또한 일본의 자연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어야 하므로 외국인을 배제하며, 도쿄나 대도시 출신의 건축가 또한 우선적으로 제외한다.

 

그렇게 해서 선택된 건축가가 안도 다다오安藤 忠雄였다.

 

 

 

 

 

 

 

 

안도는 당시에도 '자연과 빛'이라는 주제 하에 이미 파격적인 시도로 이름을 날리고 있던 건축가였다. 그런 그에게 '자연과 어울려야 하며', '너무 드러나지 않는' 건축을 해 달라는 의뢰가 들어간 것은 호랑이에 날개를 달아준 형세였을 것이다.

 

안도 다다오는 나오시마의 풍경과 지형을 바꾸지 않기 위해 '보이지 않는' 건축을 시도한 뒤 이렇게 말했다 한다.

 

"건축가로서 나는 항상 자폐적이고, 동굴과 같은 공간의 이미지에 대한 성향이 있어왔다. 이는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 어두워지고, 서늘해지고, 고요해지는 이미지를 가지며, 나에게는 공간의 전형에 관한 열쇠가 마치 땅 속에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땅 속에 묻혀 보이지 않는 건축에 있어 피상적인 형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전개되는 경험이 얼마나 심오하고 순수한가이다."

 

안도 다다오는 2004년 나오시마를 대표하는 현대미술관인 지추地中 미술관을 개관하였다.

 

 

 

 

 

 

 

 

 

이것은 지추 미술관을 상공에서 찍은 사진이다. 지추地中라는 이름 그대로 이 미술관은 나오시마의 산을 그대로 두고 그 땅을 파고 들어가 건축되었다. 여기에는 안도 다다오와 마찬가지로 '자연과 빛'이라는 주제에 천착해 온 클로드 모네, 월터 드 마리아, 제임스 터렐의 단 3명의 작가의 작품 9점만을 전시하였다. 미술관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를 가진 작품인데다가, 이 넓은 공간에 9점의 작품만이 전시되어 있으니 관광객은 일단 커다란 낯섬부터 경험하게 된다.

 

 

 

 

 

 

 

 

2010년에는 이우환 한 명을 위한 이우환 미술관이 지어졌다. 이 또한 안도 다다오가 건축한 것이다. 이우환은 1960-70년대 일본 현대미술의 획을 그은 '모노하物派' 운동을 이끈 예술가이다. '모노하'란 '가공하거나 조작하지 않은 상태 그대로의 물체로부터 미술의 언어를 끄집어내려는 예술적 시도'를 가리킨다고 한다. 쉽게 말해 위 사진처럼 우뚝 선 기둥이나 넓은 공간에 턱 하고 놓여진 큰 돌 등을 통해 무언가를 표현하려는 예술 기법이라 할 수 있겠다. 기둥이나 돌 뿐 아니라 그림도 그런 분위기를 갖는다.

 

 

 

 

 

 

 

 

이것은 이우환의 1980년 작, '선으로부터'이다. 이우환 미술관은 이러한 분위기의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2013년에는 약 25년간 나오시마 프로젝트에 꾸준히 참여해온 안도 다다오의 업적을 기려 '안도 다다오 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안도 미술관은 나오시마 주택지구에 있는 고택을 골라, 외형은 그대로 두되 지하를 파서 새로운 전시 공간을 확보했다고 한다. 주변 환경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것을 25년 간 추구해 온 안도 다다오다운 시도였다고 할 수 있겠다.

 

안도 다다오가 주도한 큰 규모의 미술관 외에도 나오시마에는 볼 것이 많다. 버려진 집을 골라 그 안에 여러 예술가들이 작품 활동을 한 '이에(家) 프로젝트'는 벌써 10여 건이 넘어갔고, 낙후한 목욕탕을 귀엽게 개조해 홍보에 성공한 'I♥湯' 목욕탕은 나오시마의 명물이 됐다. 여기에 섬 곳곳에 놓여져 있는 설치미술들까지, 한 차례 돌고나면 '예술의 섬 나오시마'라는 호칭에 고개를 끄떡이게 된다.

 

나오시마 프로젝트의 성공으로, 나오시마는 2006년 세계적 여행잡지가 선정한 세계 7대 명소에 선정됐고, 다음 해인 2007년에는 가가와 현의 36개 지자체 중 1인당 평균소득 1위를 기록했다. 관광 명소로 부상하면서 숙박업, 요식업에 종사하려는 젊은 인구의 유입이 가속화됐다. 기업의 이름을 앞세우지 않고 이 작업을 묵묵히 후원한 베세네는 메세나 대상 등 각종 상을 수상하는 등 홍보 효과를 톡톡히 보았으며 2011년 동일본 대지진 후에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한다.

 

사회적 기업과 예술가, 그리고 주민이 어우러져 의미 있는 성과를 낸 이 프로젝트는 자체로 관광 상품이 되었으며 또한 세계의 각 지자체들의 큰 관심을 끌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몇몇 지자체에서 관련 연구를 수행하였으며 구체적으로 시행된 사례는 많지 않지만 보고서와 논문이 차츰 축적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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