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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15

크로스커브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이렁구렁 지내는 한 때. 그림과 여행까지 따로 카테고리로 독립시키고 나니 생각없이 지내는 일상 덕에 일기 란은 귀신나오는 집마냥 비워놓은지 오래다. 그나마 오늘은 하릴없는 웹서핑 도중 아주 오랜만에 굉장히 갖고 싶은 물건을 찾아서 기록 삼아 남겨둔다.

 

언젠가는 도전해 봐야지 싶은 취미 가운데 주변의 만류가 가장 강한 것은 역시 오토바이이다. 말리면 말릴수록 더 하고 싶어지는 것이지마는 다른 취미에 비하자면 초기 투자 비용도 어느 정도 있고 게다가 면허를 딴 때부터 적성검사가 다시 나오는 올 해까지 단 한 번도 운전을 해 본 적이 없는 탓에 차일피일 미루는데. 

 

 

 

 

 

 

 

 

 

구체적인 구매 일정이 있지는 않지만 사게 되면 이것을 사겠거니 싶었다. 혼다의 벤리 110이다. 벤리에 관해서는 일기도 쓴 적이 있었다. 드림 머신에 가까운 원래의 모양이 새 모델이 나오면서 오리너구리로 바뀌었다는 내용의. 그래도 오토바이의 명가 혼다답게 딱히 흠잡을 데 없는 성능에다가 기종이 스쿠터라 땡기면 바로 가는 편한 조작법이라는 것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단점이라면 뛰어난 성능 덕에 도미노 피자의 배달 오토바이로 쓰이고 있다는 것 정도.

 

 

 

 

 

 

마지막까지 고민하다가 마음 속의 준우승으로 밀려난 것이 이 모델이다. 혼다의 수퍼커브 110. 수퍼커브는 오토바이로 이름난 혼다의 라인업에서도 각별한 의의를 차지하는 모델이다. 각종 바이크 동호회와 TV 프로그램, 전문가의 칼럼 등에서 공통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오토바이'로 여러 차례 꼽힌 바 있다. 10m의 높이에서 떨어지고도 멀쩡히 작동하는 내구성, 1리터 당 60km가 넘어가는 연비, 그리고 우리 돈 200만 원이 약간 넘는 뛰어난 가성비. 오랜 역사만큼 여러 차례 모델 디자인이 바뀌었고 현 기기인 수퍼커브 110은 그 가운데에서도 썩 호평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커브 특유의 단정함과 귀여움의 흔적은 남았다.

 

그러나 뭐라고 상찬을 한들 무슨 상관이랴. 한국에서 수퍼커브는 중국집 배달 오도바이 취급이다. 배달용으로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대림의 '씨티'시리즈의 원 모델이 바로 이 수퍼커브이기 때문이다. 제원도 다르거니와 애정을 갖고 찬찬히 살펴보면 디자인의 매무새도 커브 쪽이 훨씬 낫지만 붕 하고 지나가는데 누가 제원이나 매무새를 살필 수 있으랴.  

 

 

 

 

 

 

 

 

다 넘어간 마음을 돌린 것은 올해의 교토 여행에서였다. 지난 겨울의 여행에서는 날씨가 추워서 그랬는지 내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랬는지 오토바이를 많이 보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유난히 많이 봤다. 그리고 그 대부분이 수퍼커브였다. 위의 사진은 내가 교토 '철학의 길'에서 직접 찍은 수퍼커브 50이다. 혼다코리아에서는 위에서 소개한 수퍼커브 110만을 유통한지 오래 되었는데, 일본에서는 그 전전 기종인 수퍼커브 50이 대부분이며 또한 쌩쌩하게 잘 다니고 있었다.

 

50의 디자인이라면 고민도 없었을 것을, 하는 원망스런 맘이 들다가도, 디자인이야 개인의 안목에 달린 거니까, 현지가격과 큰 차이 없는 값으로 현세대 기종을 수입해 준 것에 여하튼 고마운 마음도 좀 들고. 역시 오리너구리보다는 수퍼커브 110으로 간다, 고 나 혼자 멋대로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는 돌아와서 정신 없이 지내다가 문득 생각이 나 수퍼커브를 키워드로 이리저리 웹서핑을 하다 보니.

 

 

 

 

 

 

 

 

떡 하니 걸려들었다. 수퍼커브 110을 베이스로 해서 나온, '크로스 커브'. 이렇게 예쁠 수가 있나! 멀쩡히 이런 모델이 있는데 알지도 못하고 괜히 끙끙거렸지. 오토바이 잡지라도 가끔 봐야 하겠다.

 

 

 

 

 

 

 

 

빨간 색과 검은 색, 이른바 '검빨'도 있지만.

 

 

 

 

 

 

 

 

중장비 운전을 꿈꾸어 보지만 면허도 없고 막상 하라면 겁나서 못할 것 같은 나의 선택은 역시 검노. 만약 수퍼커브 110을 사게 되면 뒤의 배달용 쇠판은 떼어내고 한 사람이 더 앉을 수 있는 시트를 장착하려 했는데, 검노라면 쇠판마저 예뻐서 떼어내지 않을 것 같다. 어차피 스스로 운전실력을 믿지 못하여 다른 사람은 영영 안 태울 생각이니 상관도 없다.

 

일본 현지 가격은 286,200엔. 오늘자 환율으로는 260만원이 조금 안된다. 현재 혼다코리아에서 정식 수입을 안 하고 있어, 꼭 구하고 싶은 사람들은 인터넷의 한 공구카페를 통해 300만원대 초중반으로 구매를 하는 모양이다. 정식 수입을 기다려봐도 좋고, 여유분의 돈이 생기면 그냥 공구 가격에 사도 좋을 것 같다.

 

 

 

 

 

 

아무튼 크로스커브에 대한 일기이지만 막짤은 크로스커브 사진을 구하다가 우연히 찾은 수퍼커브50 커스텀으로. 레트로 커스텀에 레드 컬러. 전시만 해놓으래도 좋을 것이다. 자반을 쳐다보며 밥만 먹었다는 고사처럼, 안주 삼아 쳐다보자면 몇 병의 술이라도 마실 수 있을 것 같다. 

 

 

 

 

 

 

 

 

막짤을 올리고서도 멈추지 못한 서핑. 순정인 듯 순정 아닌 이 튜닝 좀 봐.

 

 

 

 

 

 

 

 

헤드 램프에 쳐놓은 철망과 너클 가드, 백미러. 정말 멋지다.

 

 

 

 

 

 

 

 

평생 본 오토바이 짐 박스 중에 제일 멋지다. 특히 뒷바퀴의 양쪽으로 단 짐 박스는 그럭저럭 볼만한 것들이 있었지마는 뒷자리의 위쪽으로 다는 것은 실용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어떻게 하더라도 멋스러움이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위치를 좀 더 뒤쪽으로 밀고 도색을 검은색 노란색 검은색 노란색으로 교차되게 하면 통통한 벌꼬리 같아 더 멋질 것 같다. 윈드 배리어에 노란색 너클가드까지 달아주면 천하무쌍이겠다.

 

 

 

 

 

 

 

요런 취미도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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