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遊記/2014 교토

14. 우론자

 

 

 

 

천 년 수도 교토에는 숙소 또한 각기의 매력을 가진 곳들이 많다 하여 여행 전에 계획을 짤 때 여러 군데에서 머물 수 있도록 예약을 했었다. 17일의 여행 기간 동안 14일차부터 16일 밤까지 머물게 될 '우론자'로 이동한다. 여행용 가방에다 여기저기서 사 모은 기념품과 선물 봉지들을 따로 들고 낑낑대며 버스를 타는데 비까지 추적추적 내린다. 버스를 타고 가며 이런 생각을 했다.

 

교토에 처음 도착했을 때, 익히 들어 알고 있으면서도 막상 보고 놀랐던 것은 일본인의 질서의식이다. 특히 버스 정류장에서 질서정연한 모습을 여러 차례 볼 수 있었다.

 

타려는 버스가 멀찌감치서 오고 있다면, 우리나라 같은 경우엔 버스가 설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 쯤으로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본 교토 사람들은 버스가 도착해서 문이 열릴 때까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문이 열리고 나면 문에서 가까운 순서대로 천천히 올라탄다.

 

내릴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의 버스는 뒷문으로 타서 앞문으로 내리게 된다. 이 때 맨 뒷좌석에 앉은 사람까지도 미리 일어나서 앞문 쪽으로 가 있거나 하는 법이 없다. 버스가 완전히 서서 문이 열리고 나면 그제서야 앞문 쪽으로 향해 걸어가는데 내리는 사람이나 앉아있는 사람이나 누구 하나 초조한 인상이 없다. 기사도 뒷쪽을 흘끔거리며 혹 못 내린 사람은 없나 계속 살핀다. 이따금 못 내린 사람이 있는데 출발하려 하면 승객이 '내립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다시 서서 그 사람이 내릴 때까지 기다린다. 

 

한동안은 이것이 무척 보기 좋았다. 배려심이 많은 것으로도 보이고 성숙한 시민의식으로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열흘이 넘어가자 점차 다른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탈 사람이든 내릴 사람이든 분명히 천천히 기다려준다. 하지만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라거나 나처럼 비를 맞으며 짐을 잔뜩 들고 있는 여행객처럼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사람이 있어도 도와주지는 않는다. 자리에 앉으려고 버스에 먼저 타려 기를 쓰지는 않는다. 하지만 버스를 타서 자리에 앉게 되면 노인이 그 앞에 와도 일어나지 않는다. 외양으로만 보면 친절하고 성숙한 모습이지만 가만히 관찰해보면 그것이 본심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철저한 훈육에 의한 일종의 습관이라는 인상이 강하게 들었다. 그럴 바에는, 혹 앞의 사람이 짐이 많아서 버스에 못 올라서고 있을 때에는 뒤에서 '에이, 왜 이렇게 안 올라가'하고 불퉁거리다가 '이리 줘봐요'하고 함께 버럭 들어주는 우리 쪽이 좀더 정감 있고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은 귀국날 인천공항에 내리자마자 나보다 한 발 앞서 에스컬레이터를 타려고 이리 저리 밀어대는 동포들을 보고 싹 사라지긴 했다.)

 

 

 

 

  

 

 

 

여행이 2주가 넘어가니 푹 자고 맛난 것 먹고 다녀도 금세금세 지치는 것 같다. 머물었던 숙소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하고 가옥의 구조도 무척이나 재미났던 우론자이지만 내가 죽을 판인데 무슨 상관이랴. 짐을 부려놓고 방 사진만 몇 장 겨우 찍었다.

 

 

 

 

 

 

 

 

식민지 시대 시인의 책상 같은 단정함이 마음에 쏙 들었다.

 

 

 

 

 

 

 

등받이 없는 의자도 검소함이 오히려 멋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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