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遊記/2014 교토

9. 우지(宇治) 1일차

 

 

 

 

9일차의 행선지는 교토의 남쪽에 위치한 우지(宇治)이다. 지하철을 타고 가야한다. 가는 길에 관월교觀月橋라는 역 이름이 예뻐 찍어보았다.

 

 

 

 

 

 

 

 

우지역에서 나와 다리를 건너면 큰 표지판을 만나게 된다. 우지는 아주 작은 휴양관광도시라 지도를 몇차례 읽어두고 조금만 걸어보면 대강의 지리를 금세 파악할 수 있다. 표지판의 오른쪽으로는 방금 지나온 관월교가, 왼쪽으로는 목적지 중 하나인 평등원平等院과 아마가세 댐이 표기되어 있다.

 

 

 

 

 

 

 

 

우지역에서 만나게 되는 왕자 캐릭터. 정확한 이름은 모른다. 주로 녹색이 칠해진 이유는 우지가 말차로 유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교토 인근은 예로부터 물 맛이 좋기로 유명해서, 후시미 지역에서는 술이, 우지에서는 말차가 일찍부터 이름을 날렸다. 일본의 3대 차 중 하나로 꼽히는 '우지 말차'는 한번쯤 들어보셨을 것이고, 이자카야 등에서 일본술을 시킬 때 비교적 저렴한 자격 때문에 종종 시키게 되는 '월계관月桂冠'이 후시미 지역의 명주名酒이다.

 

 

 

 

 

 

 

 

기념품으로 말차를 사가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대부분 사람들이 우지를 찾는 첫번째 이유, 평등원平等院이다. 11세기 경 높은 관리가 우지 지역에 세워놓은 자신의 별장을 희사하였고, 전체를 사원으로 개조하면서 세운 것이 일본의 10엔짜리 동전의 뒷면에 나오는 봉황당鳳凰堂이다.

 

 

 

 

 

 

 

이것이 봉황당.

 

 

 

 

 

 

 

 

그러나 천하에 이름난 풍경이라도 내가 피곤하고 추우면 말짱 꽝. 이번 여행에서 방문한 곳 중에는 가장 유명한 장소였겠지만 나는 시큰둥하니 슥슥 지나고 금세 나왔다. 봉황당보다 봉황당을 그린 엽서가 더 예뻐서 한 장 샀다. 날씨와 컨디션이 모두 좋을 때 방문하면 분명히 감흥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혹 교토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봉황당 코스를 넣었다가 이 글을 읽고 다시 생각하게 된 분이 있다면 본래의 계획대로 한 번 가보시길 권한다. 게다가, 혹 봉황당이 마음에 안 들었다 하더라도 우지에는 크게 알려지지 않은 명소가 몇 군데 더 있다.

 

 

 

 

 

 

 

 

우지는 평등원 봉황당이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문학 작품인 <겐지 이야기>의 한 무대이기도 하다. 나는 시간에 쫓겨 <겐지 이야기>를 읽지 못한 채로 우지를 밟았지만 혹 책을 읽으신 분이 있다면 한층 더한 감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지에는 우지가와宇治川가 흐른다. 작은 개천 정도의 크기인데 구비구비한 옛모습을 그대로 지키고 있다. 강의 양쪽으로는 야트막한 산으로 둘러싸인 산책로가 이어지고, 너비가 넓은 구간에는 작은 섬이 있다.

 

 

 

 

 

 

 

 

조용하고 한적한 풍경. 전체적으로 이런 분위기이다.

 

 

 

 

 

 

 

 

숙소에 들어왔다. 숙소의 이름은 '花やしき浮舟園'이다. 검색해보니, '하나야시키花やしき'는 '

 

 

 

 

 

 

 

 

이 여관의 앞에는 여관주인 일가의 가택이 있다. 여기에서 우지 출신 인사 뿐 아니라 일본 근대의 정치인 가운데에서도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하나인 산본선치山本宣治, 야마모토 센지가 나고 자랐다.

 

야마모토 센지는 1889년에 태어나 1929년에 죽은 정치가이자 생물학자이다. 일본 성교육의 기반을 닦았으며 무산계급의 해방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던 그는, 중의원으로 활동하던 중 치안유지법을 제정하는데 반대했다가 우익의 손에 암살당했다 한다.

 

치안유지법은 1925년, 일제가 어떠한 사회운동이라도 조직하거나 선전하기만 하면 중벌을 내릴 목적으로 입안한 법이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부정하는 이 치안유지법은 이후 조선에서도 시행되어 독립운동을 차단하고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로 작용했다. 교토에서 잡혀 죽은 윤동주의 죄목도 치안유지법 위반이다. 야마모토 센지는 이 법안에 반대를 주장한 단 한 명의 의원이었다.

 

기사를 검색해 보니 그의 손자인 야마모토 유지씨는 무산계급의 평등을 주장했던 할아버지의 유지를 이어 저소득층을 위한 진료소의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한다.

 

 

 

 

 

 

 

 

겨울에 찾았음에도 여관 이름이 어디에서 왔는지 생생히 느낄 수 있는, 멋진 정원이 꾸며져 있다. 정원 자체로도 감상의 흥취가 있고 건물 중에는 야마모토 센지가 생전에 서재로 활용했던 건물을 그의 자료실로 꾸며 관람할 수 있게 해 둔 곳도 있으니 시간이 된다면 꼭 들러보길 권한다.  

 

 

 

 

 

 

 

숙소는 우지가와가 내려다보이는 다다미 방. 제공해 주는 기모노로 갈아 입고 멋을 부려본다.

 

 

 

 

 

 

 

 

한층 더 멋을 부려본다.

 

창 밖으로 보이는 것이 우지가와 가운데의 작은 섬이다. 다리를 통해 건너갈 수 있다.

 

 

 

 

 

 

 

 

전통 있는 여관의 저녁식사. 어떤 식단이 나올지 식단표를 따로 준다.

 

 

 

 

 

 

 

 

'헤이세이 이십육년 십이월육일'로 시작하는 식단표. 그저 흰 종이에 요리의 이름을 적은 것 뿐인데도 묘한 풍취가 있다.

 

 

 

 

 

 

 

 

한 사람 앞에 하나씩 나오는 종이냄비.

 

 

 

 

 

 

 

 

비수기였기 때문에 사람이 적은데다가, 식당이 널찍널찍하고 천장이 높아서 고즈넉한 기분이 한껏 들었다. 우지가와와 그 위에 뜬 달을 보면서 먹는 석식. 천금에 값한다.

 

 

 

 

 

 

 

 

 

 

 

별 것 아닌데 사람을 홀리는 맛. 입맛 돋우라고 준 조개국을 먹었을 때에 이미 정신이 나가서 이 이후의 음식은 찍을 생각도 못하고 먹기만 했다. 와구와구 먹느라 정신이 나간 것이 아니라 분위기에 취해서 정신이 나갔다.

 

 

 

 

 

 

 

방으로 돌아와서는 다음날 방문할 장소의 정보를 다시 정리했다. 정리가 필요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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