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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박인하, <만화공화국 일본여행기> (랜덤하우스. 2009, 7.)

 

 

 

만화평론가 박인하의 2009년 작. 저자는 한국 만화에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라면 익숙한 이름일 청강문화산업대의 만화창작과 교수이기도 하다. 책은 일단은 제목 그대로, 일본 여행 도서 카테고리에 들어간다.

 

 

총 4부로 이루어지는 책의 구성은, 다소 산만하다.

 

 

1부 '만화'는 네 개의 챕터 중 하나에 불과함에도, 책의 2/3를 차지하는 분량이나 독특한 기획에 있어 이 책의 뼈대를 구성하고 있다.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이 1부를 써놓고 분량이 모자라서 2-4부를 덧붙인 것이 아닌가 하는의심이 들 정도이다.

 

기획은 흥미롭다. 2009년 교수로서 연구년을 맞은 작가는 일본을 방문하였고 이때의 방문기, 여행기를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직업이 만화평론가인만큼 만화에 나온 장소들을 탐방하고 취재해 일종의 가이드북을 썼는데,이 원고가 출판사로부터 퇴짜를 맞았다. '만화에 나온 명소'에 관한 간단한 소개나 지리 정보 등은 이미 기존의가이드북에도 충분히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에 나온 문화와 일본 현지에서 관광객으로 느끼는 문화가 교차되는 지점을 최대한 담아내'는 '문화여행에세이'를 쓰기로 결정한다. 쉽게 말해, 직업이 만화평론가인 형이, 일본의 만화나 만화영화에 나온 그 장소에 직접 가보고, 느꼈던 소회를 정리한 책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오사카의 낡은 상점가와 주택가에서는 <요츠바랑>의 조용한 일상을 떠올리고, 만박기념 공원을 산책하며 <20세기 소년>의 중요한 코드들을 분석하고, 도쿄의 메이지진구에서 일본 술을 마시며 <명가의 술>을 언급하는 것이다. 긴자에서 읽는 <시마 과장>, 미술관에서 읽는 <갤러리 페이크>, 츠키지 시장에서 읽는 <어시장 삼대째> 등도 일본 만화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독자라면 흥미로운 기획이다.

 

아쉬운 점 하나. 이 기획은 대도시인 도쿄와 오사카에 한정되어 있다. 필자가 움직일 수 있는 반경이 그 정도였는지 아니면 실제로 일본 만화의 배경이 그 두 도시에 집중되어 있어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좀 더 다양한 지역이 소개되었더라면 하는 욕심은 버리기 아깝다.

 

아쉬운 점 둘. 이 책에는 40개가 넘는 작품들이 언급되고 있는데, 해당 작품의 컷이 등장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저작권 문제 때문이었을까? 그래도 직접 만화에 등장하는 장소에 가고 사진까지 찍었는데 그 광경이 만화에서는 어떻게 묘사되었는지를 함께 보지 못하는 것은 역시 서운하다.

 

 

2부 '애니메이션'은 약 40쪽의 분량으로, 특히 아키하바라와 이케부쿠로를 거닐며 일본의 '오타쿠 문화'에 대해 고찰한다. 오타쿠 문화, 좀 더 나아가 서브컬쳐 문화에 대해 흥미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유용한 정보와 시사점이 충분하다.

 

다만, 아키하바라나 이케부쿠로나 도쿄에 있긴 매한가지인데 여기서 언급되는 작품의 장르가 애니메이션이라고 해서 따로 2부로 분리한 것은 어색하다는 생각이 든다. <전차남>이나 <현시연>과 같이 오타쿠가 등장하는 작품이 언급되긴 하지만 그것은 개별 작품의 특성일 뿐이지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가 따로이 갖고 있는 특성이 아니다. 이것은 아마도 만화평론가로서 특히 관심을 쏟고 있는 주제이기 때문에 따로이 분리시킨 것이 아닌가 싶다.

 

 

3부 '캐릭터 & 토이'에서는 약 30쪽 분량 대부분을 아예 '인간은 왜 장난감을 좋아하는가', '어른이 장난감을 좋아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장난감에는 어떤 분류가 있는가' 등의 질답에 할애하고 있다. 후반부에 이르러 '일본에서 장난감 사기'라는 소꼭지에 몇 개의 대형 장난감 가게들을 소개하고 있지만 1, 2부에서 유지되던 컨셉이 무너졌다는 인상은 버리기 어렵다.

 

 

4부 '테마파크'는 약 30쪽 가량의 분량에 일본 각지의 만화와 관련된 테마파크들을 소개한다. 주요하게 소개되는 지역은 도쿄와 돗토리이다. 특히 돗토리에서는 미즈키 시게루, 다니구치 지로, 아오야마 고쇼의 세 만화가가 소개되고 있는데, 두산백과에 의하면 '일본에서 현청소재지로는 인구가 두 번째로 적다'는 돗토리가 따로이 소개되는 것으로 보아, 역시 필자가 방문할 수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해 집필이 되었다는 추정이 설득력을 얻는다.

 

 

흥미로운 기획에도 구성과 포장에 허술함이 있어 단점을 주로 언급하게 됐지만 나는 대체로 즐겁게 읽었다. 언급되는 만화들도 이른바 '대작' 위주로 편성하고 있어 대부분 아는 작품들이었고 일본의 예쁜 사진들을 컬러로 보는 것도 즐거웠다. 필자의 직업이 만화평론가인만큼 개별 만화에 대한 평도 '그것 참 재미있었지' 정도의 수준에 머물지 않고 관련된 추가 정보나 새로운 해석 등에까지 나아가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가이드북이 아닌만큼 실용 정보가 많지 않고, 논문이 아니라 에세이인만큼 분석과 평론의 깊이에도 한계가 있지만, 적어도 나는 만약 일본 현지에서 동행한 누군가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분명히 아주 즐거운 하루를 보낼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독서를 마쳤다. 일본 여행이나 일본 만화에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어느 정도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검색해 보니 2011년, 같은 학교의 교수인 만화가 최호철과 함께 여러 나라들을 돌아다녀보고 함께 쓴 <펜 끝 기행>이란 책이 있다. 나는 곧 구해서 읽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