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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지승호/표창원, <공범들의 도시> (김영사. 2013, 10.)

 

 

 

 

 

 

 

0.

 

이 글은 인터넷 서점 알라딘으로부터 책을 제공받고 숙제로 쓴 리뷰를 간단히 수정한 것이다.

 

 

 

 

1.

 

 

지승호 씨의 인터뷰 북 시리즈 근작. (2013년 10월에 출간되었는데, 한 달 뒤 이 리뷰를 쓰는 시점까지 두 권의

 

책이 더 출간되었다. 신작이라고 쓰기 애매하게 된 셈이다.) 이번의 인터뷰이는 전 경찰대 교수 표창원 씨이다.

 

 

작년, MBC 해직기자 이상호 씨와 진행한 <이상호의 GO발뉴스>나 영화감독 양익준 씨와 진행했던 <렛츠 시네

 

마 파티? 똥파리!>에서 전문 인터뷰어로서의 직능적 회의감과 현실적인 고민들을 적극적으로 토로하였던 저자

 

는, 무슨 계기가 있었는지, 올해엔 정말로 정력적인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사정없이 날뛰는 인터뷰이를 따라가

 

기만 하면 되었던 정봉주와의 <대한민국 진화론>은 그렇다 치더라도, 두께에서 압도당하고 내용에서 한 번

 

압도당했던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이나, 전문적인 특정 분야에 접근까지 꾀해야 했던 정동영

 

씨와의 <10년 후 통일>, 이석연 씨와의 <페어플레이는 아직, 늦지 않았다>를 보면 그 활력에 혀를 내두르게 된

 

다.

 

 

오늘 소개하는 책인 <공범들의 도시>에서도 그러한 미덕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서문에 싣고 있는 기획 단계의

 

일화부터 그러하다. 저자는 인터뷰를 준비하던 도중 개인사에 관한 다른 인터뷰가 행 중이라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하는데, 작년의 (저작물에서 연상되는) 그라면 아마 조금쯤 좌절하거나, 혹은 이 프로젝트를 조용히 접고

 

른 프로젝트로 넘어갔을 것 같다. 그러나 2013 지승호는 전 경찰대 교수이자 범죄 전문가인 표창원의 직능에

 

주목하고 그와 관련된 깊은 내용을 준비하였다. 표창원 또한 언론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며 정치, 문화, 사회의 보

 

편적인 주제들에 대해 다소간 범박한 의견도 섞어가며 발언하던 중 오랜만의 본인의 전공 분야를 만나 그 교양

 

의 넓이와 고민의 깊이를 마음껏 뽐내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표창원의 전문성과 지승호의 활력이 만난 결과물

 

이다.

 

 

 

 

2.

 

지금 대한민국에서 정치를 이야기하며 싸우지 않기란 지난한 일이다. 누군가의 편을 들거나 누군가의 적이 되지

 

않는 것조차 하나의 편향성으로 지목되는 한 때이다. 그러나 표창원은 그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싸움을 하는 이

 

중 하나일 것이다. 그는 '같은 편이었던' 사람들을 상대로 싸우는 중이기 때문이다. 한 시사프로에서 밝힌 바와

 

같이 17대 대선에서 별다른 고민 없이 이명박 후보를 찍었던 그는, 6년 후인 지금 야권의 거대정당조차 '대선불

 

복' 프레임 앞에서는 기가 죽을 때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면 하야하는 것이 옳다' 라고 가장 소리 높게 외치는 이

 

이다.

 

 

그 동인(動因)으로 그가 스스로 적시한 것은 '원칙'과 '정의' 등의 덕목이었다. 안정된 직장과 존중받는 지위를

 

내던지며 시대에 가장 결핍된 가치를 현현한 그에게, 진보-개혁 진형은 뜨거운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나는 그를 보며 위태로움을 느꼈다. 그에 대한 지지 가운데에는 적실하게 그를 향한 것도 있었지만, 보수

 

측을 자극하고 조롱하기 위한 도구로만 그를 소비하려 드는 전략 또한 분명히 있었다. 하나의 생물 같은 이 전략

 

은 그의 가치가 떨어지면 다음 상품을 찾아 떠날 것이었다. 아울러, 그를 향한 열광조차 아주 현실적으로 말해

 

그의 안위를 담보해 주는 것은 아니었다. 주로 SNS 등을 통해 말로 오고가는 그 응원은,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

 

힘든 일에 보람을 느낄 수 있게는 해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극우층의 협박이나 국가기관의 사찰까지는 막아

 

줄 수 없는 노릇이다. 아주 작게 말하자면 그가 있어 더 맛깔났던 '그것이 알고싶다'의 광팬으로서, 나는 그가 걱

 

정됐다. 영웅화, 신격화된 인물의 비극적 결말은 이미 충분히 봤다.

 

 

 

 

3.

 

그러나 이 책 <공범들의 도시>에는 정의감과 환호에 도취된 어수룩한 영웅이 아니라, 묵묵히 체중감량과 고된

 

훈련을 감내하는 파이터의 모습이 드문드문 드러난다. 이것은 특히 그가 현재 싸우고 있는 대상인 국정원을 언

 

급할 때에 직설적으로까지 표현된다.

 

 

 

 

일단 강해 보이고 싶었죠. 거대한 권력과 싸우고 있는 상태다 보니까 약한 모습은 절대 보이고 싶지

 

않았어요. '내가 약점을 보이는 순간 저들은 기고만장하고 우습고 짓밟고 싶을 것이다'라는 생각도

 

있었어요. 뭔가 나에게 저들이 두려워할 무기가 있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고 싶었거든요... ...제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힘없는 일개 개인에 불과하고, 저들이 마음만 한 번 잘못 먹으면 훅하고 날아

 

갈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 제가 인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적인 공포로 늘 자리했겠죠.

 

                                                                                                               (p337 - 338)

 

 

 

 

 

 

 

행동하는 양심이라지만, 그 또한 인간이다. 두려움이 없을 수 없다. 유난스런 강성 발언은 어찌 보면 '허세'의 일

 

종이기도 했다. 앞서 내가 했던 걱정을 공유하는 사람이라면 이 부분을 읽으며 연민보다는 우려의 심정이 더 강

 

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유난스런 정의감을 가진 사람들이 잃기 쉬운 중요한 덕목이 있었다. 바로 생존과

 

승리의 전략이다.

 

 

 

 

 

(국정원과의 싸움에서) 직접적으로, 직설적으로 부딪히는 돌직구적인 모습도 보였지만, 저는 나름

 

대로 고도의 심리전도 병행해 왔습니다. 국가 최고의 정보기관하고 혼자 싸우는데 미련스럽고 우직

 

하기만 해서 되겠습니까? 그건 아니거든요. 충분한 고도의 심리전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상황과

 

 환경에 따라서 다시 제가 안정된 모습, 차분하고 분석적인 모습으로 바뀌는 것을 보시게 될 거예요.

 

                                                                                                                                                 (p335)

 

 

 

 

신념만으로 투쟁을 하는 이는 요절하고 자위만으로 투쟁을 하는 이는 변절한다. 그러나 그에게서는 끈덕지게 살

 

아남아 신념을 지키겠다는 단호함이 느껴진다. 구체적으로 자기 좌표 확인과 앞으로 선점해야 할 위치에 대해서

 

그는 명징한 인식을 보여준다.

 

 

 

 

 

저를 반대하는 분들이 최악의 선동가라는데, 일부 맞기도 해요. 제가 순수하게만 해온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던졌을 때 여론이 제 말에 귀를 기울이고, 언론이 반응을 하고, 제가 혼자 외롭게 고립돼서 저

 

들이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는 상태가 되지 않을 것인가. 늘 첨예하게 계산도 하고, 계획도 하고, 그

 

에 따른 레토릭 수사도 준비하고, 글도 고민해서 쓰고, 그렇게 해왔던 거죠. 제가 그렇게 탄압받거

 

내쳐지거나 피해 입고, 불쌍하게 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늘 대중의 관심사에 있는 것이었어요.

 

중의 관심 속에 있는 이상 함부로 못 건드리거든요. 그렇게 건드리면 저는 더 큰 투사가 되고, 저

 

 더 불편해할 수 있는 존재가 되기 때문에...

 

...(반대편의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제가 정치를 해서 힘이 생기는 것이라서) 저는 계속 혹

 

시 뛰어들까, 혹시 저 사람이 정치권으로 갈까 하는 의혹과 비난이 나올 수 있는 한계까지만 나아가

 

고, 그 직전에서 멈추는 거죠. 대신에 제가 정치권으로 들어가는 순간, 제 순수성과 상품 가치 내지

 

특별함, 대중의 관심, 이런 것들은 없어져 버리는 거예요.

 

                                                                                                                    (p 345)

  

 

 

 

 

원칙이나 정의와 같은 원론적 덕목을 거듭 발언하기 때문에, 선하기는 하지만 혹 나이브한 사람이 아닐까, 그래

 

서 우리는 곧 또 하나의 곧은 목소리를 잃게 되는 것은 아닐까 했던 우려는 싹 날아갔다. 생각해 보면, 범죄심리

 

전문가이자 가장 유명한 프로파일러인 그는 사회적 인생의 거의 전부를 바쳐 대화와 행동의 전략에 관해 고민해

 

온 사람이다. 이와 같은 결과는 필연의 산물이라고 해도 좋다. 우리는 이 사람을 꽤 오랫동안 지켜볼 수 있을 것

 

같다.

 

 

 

 

4.

 

물론, 지금 그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영원할지는 미지수이다. 공정 대 반공정의 프레임 상에서 지금 그는 진보-개

 

혁 진영과 비슷한 지점에 서 있지만, (실현되기는 지난하나) 진정한 진보 대 보수의 프레임만으로 토론을 할 수

 

있는 때가 오면 지금 그의 지지자들은 자신과 그 사이의 간격을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언급이 그렇다.

 

 

 

 

(일베 현상에 대해 말하며) 일베 현상은 절대로 보수가 아니에요. 보수가 뭔지도 몰라요. 상당수는 그냥

 

반항 심리, 겉으로 깨끗하고 좋은 척 하는, 소위 말하는 진보적 지식인과 진보적 정치인에 대한 혐오와

 

반감으로 그 반대편에 서 있는 거예요. 그런 것들을 해체시키고 이념적으로 하려면, 정계 개편처럼 전체

 

시민들이 다시 한 번 논의를 해서 정말 보수인 사람은 보수 쪽으로, 진보인 사람은 진보 쪽으로, 중도인

 

사람은 중도인 쪽으로 나뉘면 좋을 것 같아요.

 

                                                                                                                                                      (p417)

 

  

 

 

여기에서 그는 일베를 '해체시켜야 할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발언의 바탕에는, 사회에는 떤 목소리들

 

을 '해체'시켜서라도 존중해야 할 모종의 '가치'가 있으며, 또 그런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해체'를 행할 수 있는

 

모종의 '권위'가 있다는 인식이 숨어있다. 예시로 들어지는 일베가 워낙 극단적이기 때문에 암묵적인 공감을 불

 

러일으키는 것이지만, 이 인식은 분명 완고한 보수주의자의 그것이다.

 

 

시민들이 스스로의 사상적 좌표를 밝히면 좋겠다는 의견도, 물론 그 의도는 불필요한 정치적 정쟁종식시키고

 

건강한 공존 상태를 형성하고자 하는 선한 것이기는 하지만, 과정에 수반될 수 있는 폭력성에 대한 고려를 찾아

 

보기는 어렵다. 아주 적극적으로 해석하자면, 좋은 결과를 위해서라면 다소간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는 인식까

 

지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또한 진보가 추구하는 가치관/세계관과는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이기도 하다.

 

 

 

 

5.

 

다시 한 번 물론. 위의 논의는 '진정한' 진보 대 보수의 구도가 도래하는 세상을 전제로 한 것이므로, 그는 한동

 

안 진보의 여러 입 중 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어떤 입에 비해서는 덜 세고, 어떤 입에 비해서는 덜 화끈할 수

 

도 있겠지만, 이제의 나는 확신한다. 이 입은, 그 몸에 탈이 없는 한 가장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 독

 

후감의 결론. 표창원에게 소식과 규칙적인 운동을 요구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