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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13

우크페페

 

 

 

 

일산에 갔다. 십여년 전 볼 일이 있어 인천에서 일산으로 갔다가 다시 인천으로 돌아갔던 일은 있어도 서울에서

 

일산으로 가는 것은 처음이다. 바로 가는 버스가 있는 것에 놀라고,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 것에

 

차례 더 놀랐다가, 직접 가 보니 인천도 별로 안 멀던데요, 라고 말하는 서울 치들에게 눈쌀을 찌푸려 주던 것

 

떠올라 반성을 했다.

 

 

 

 

 

 

 

 

이 날, 나는 무척 기대하여 빌렸으나 시간이 많지 않아 읽지 못하던 책을 들고나간 터였다. 책은 예상보다 조금

 

더 재미있었는데, 서울을 벗어나 일산구에 들어서기 전까지 펼쳐지는 중소도시의 풍경에 몇 차례고 독서를 멈

 

추고 창 밖을 보았다. 집에서 뒹굴거리는 날에는 책 몇 권 들고 경기도로 나가는 버스에 좀 앉아있어 봐야겠다

 

는 생각을 했다.  

 

 

 

 

 

 

 

 

일산까지 간 이유는 바로 이것. '아람누리'에서 열리는 우쿨렐레 축제, '우크페페Ukufefe' 때문이었다. 부러 우쿨

 

렐레 커뮤니티를 찾아 새 악보도 받고 연주법도 배우고 하던 것도 오래 전의 일이다 보니 이런 축제가 있는 것

 

축제 하루 전 한 인터넷 신문사에 올라온 홍보 기사를 보고서야 알았다. 이번이 1회라 한다.

 

 

 

 

 

 

 

 

행사의 이름인 '우크페페Ukufafe'는 'Ukulele Fair & Festival'의 준말이었다. 이름 그대로 '아람누리'의 야외 공연

 

장에서는 국내외 유명 가수, 연주자들의 공연이 이루어지고,

 

 

 

 

 

 

 

 

공연장 바로 옆의 잔디밭에서는 하와이 여행업체와 유명 우쿨렐레 회사들의 제품 판매 행사가 이뤄지고 있었다.

 

처음 우쿨렐레를 사던 때 며칠이고 인터넷을 탈탈 뒤지면서 눈에 익히던 회사 이름과 우쿨렐레 제품들이 눈에

 

띄어 새삼 반가웠다.

 

 

 

 

 

 

 

 

잔디밭 옆 농구장에 가보니 하와이 음식과 음료를 파는 식료품 텐트에 줄이 길고, 한 쪽 구석에서는 공연을 끝낸

 

팀이 아쉬워서 반성회를 하는지 준비 중인 팀이 마지막 연습을 하는지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모여 우쿨렐레를

 

치고 있었다.

 

 

 

 

 

 

 

 

사진의 작은 도로 하나를 두고 오른쪽이 공연장, 왼쪽이 잔디밭과 농구장인데, 그 사이사이마다 우쿨렐레 동호

 

회 사람들, 주말이라 함께 나온 가족들이 삼삼오오 앉아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많은 우쿨렐레 연

 

주자들이 모여있는 것은 처음 보았는데 그것만으로도 무척 즐겁고 신이 나는 광경이었다.

 

 

 

 

 

 

 

 

프로그램 북의 디자인이 귀엽다. 알게 되었으니 내년부터는 미리미리 알아 두었다가 음식도 준비하고 돗자리도

 

마련해서 놀다 가야지. 이번에는 하루 전에야 알게 되어서, 기왕의 일정 때문에 한두 시간 정도 밖에 못 보고 돌

 

아왔다.

 

 

 

 

 

 

 

 

타임테이블. 입장료가 꽤 비싸더라도 꼭 한 번은 보고 싶었던 이름들이 눈에 띄는데, 재능기부로 이루어진 것이

 

라 입장은 무료였다. 부유하지 않은 예술가들을 생각해 보면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덕분에 여유로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었다. 한 시간에 네 팀씩 올라오는 만큼 한 팀당 두 곡씩만 담당하고 내려갔다.

 

 

 

 

 

 

 

 

프로그램 북의 맨 뒤에는 두근두근 조용필 선생님의 '여행을 떠나요' 코드 진행이. 이 코드 표는 3시에 진행되었

 

던 '동시에 최대 인원이 우쿨렐레 연주' 기네스 도전을 위한 것이라 한다. 하나의 공연이 끝나고 다음 공연이 시

 

작될 때까지의 쉬는 시간동안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연습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과연 우쿨렐레 동호회 주최의

 

행사라 그런지 동네 꼬맹이나 썬캡 아주머니들이 고가의 우쿨렐레를 척척 꺼내드는 와중, 최저가 보급형 우쿨렐

 

레를 들고 간 나도 슬그머니 꺼내어 연습을 했다.

 

이 행사가 진행될 때 나는 마침 도착했다는 동행을 데리러 버스 정류장 쪽으로 나갔다 오느라 참가하지 못했는

 

데, 후기를 살펴보니 일본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기록인 2100명에 미치지 못해 실패했다 한다. 행사장 전체를

 

오명가명 본 우쿨렐레가 다 해도 천 대를 넘을까 말까 했으니 그렇게까지 아까운 일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래도

 

내년에는 꼭 성공했으면, 그 안에 나도 있었으면 좋겠다.  

 

 

 

 

 

 

 

 

동호회에서 온 모양인지 옷을 맞춰입고 스테이지 바로 앞 좌석에 나란히 앉은 아이들. 귀여운 모습에 웃음을 짓

 

다가 (내 것에 비해) 무척이나 고가인 그들의 악기와 화려한 손놀림을 보고 주제넘은 웃음이었음을 깨달았다.

 

 

 

 

 

 

 

 

우쿨렐레를 처음 혼자 연습하기 시작하던 무렵 그 노래를 많이 들었던 '우쿨렐레 피크닉'의 공연.

 

 

 

 

 

 

 

 

장기하의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에서 함께 퍼포먼스를 했던 '미미시스터즈'의 공연. 본인들은 사실 우쿨렐레 초

 

보라 F만 쳤다는 솔직한 발언이 아주 좋았다. 재미있는 노래와, 굉장히 열심히 추는 일반인 급 댄스가 어울려 뜨

 

거운 호응을 받았다.

 

 

 

 

 

 

 

 

그리고 님. 축제 하루 전에야 기사를 보고도, 가 보지 않았던 일산까지 얼마가 걸릴지도 모르고도, 일정이 있어

 

길어야 두 시간 보고 올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것은 가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이상은 누나. 홀로 인도

 

여행을 할 때 기억에 남는 순간마다 가장 많이 들었던 노래의 가수여서, 언젠가는 꼭 한 번 공연을 보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게다가 우쿨렐레 공연이라니. 안 갈 이유가 없었다.

 

이상은 콘서트가 아니라 우쿨렐레 공연이고 또 동호회 사람들만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많이 참가하는 성격의 공

 

연인 것을 감안한 것인지 누나는 가장 유명한 노래들 중 하나인 '비밀의 화원'과 '언젠가는'을 불렀다. '비밀의

 

화원' 때만 해도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나왔는데, '언젠가는 불러 드릴게요'라는 말에는 느긋하게 공연을 지켜

 

보던 관객들도 대부분 열광적인 호응을 보냈다.

 

 

 

 

 

 

 

 

강산에 씨와 한영애 씨의 공연을 놓치는 것은 아쉬웠지만 원래의 일정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상은 누나의 공

 

연이 끝난 뒤 일어났다. 나오는 길에 돌아보니 유명 가수의 공연이 끝난 직후이고 빗방울이 톡톡 떨어지는 중인

 

데도 사람들은 우산을 펼쳐들고 대부분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냥 나오는 것이 아쉬워 행사 상품을 샀다. 왼쪽이 티셔츠, 오른쪽은 뱃지와 스티커인데 나는 뱃지를 샀다.

 

 

 

 

 

 

 

그리고 '아람누리'의 입구로 빠져나오다가 공연을 마친 뒤 돌아가는 중인 이상은 누나를 만났다. 동경하던 이를

 

만나 어쩔 줄 몰라하며 발을 동강거리는 내 모습을 보고, 동행은 손목을 우악스럽게 잡고 끌고 가서는 이상은 누

 

나를 불러 세워 함께 사진을 찍어 주었다. 생각치도 못하던 때에 만난 행운에 감격과 당황을 하고, 동행의 용맹

 

함과 헌걸참에 감탄하고, 또 몇 년 전 인도여행때의 추억들이 갑작스레 용솟음쳐, 과부하가 걸린 나의 내면은 마

 

침내 '선'의 표정을 내보내어 주었다. 거기에 당일 아침 스스로 자른 빙구 머리까지 한 몫 단단히 하여, 찍고

 

나서 바로 확인했을 때에는 평생에 한 장 찍을까 말까한 누나와의 사진에서 이런 멍청이 같으니, 하고 자책하는

 

마음이 들었는데, 시간을 두고 몇 번 다시 보다보니 당시의 심정이 잘 드러난 인간적인 표정 같아 조금 마음에

 

드는 구석이 생겼다. 

 

 

 

갑작스런 외출에 풍작을 거두어 내년에는 큰 기대 갖고 다시 한 번 찾아가 보려 한다. 그 때쯤 되면 여기에도

 

보를 해 둘 터이니 관심가는 분들은 우쿨렐레 들쳐 메고 함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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