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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송호근, <그들은 소리내 울지 않는다> (이와우. 2013,3.)

 

 

 

 

 

 

40대를 맞이하는 여러 개인적 소회가 적혀 있던 우석훈의 <일인분 인생>을 읽고 독후감을 쓰면서, 언젠가 내 세

 

대의 이야기를 담은 책들을 쓰고 싶다는 말로 마무리를 한 바 있었다. 어느 집에서 태어나 어느 학교에 가서 어

 

떤 배우자를 만났느냐 등에 따라 각자의 삶은 천양지차이겠지만, 그래도 1981년의 어느 날에 태어났다는 점만

 

으로도 우리의 생을 관통하는 '선'들이 있을 것이다. 그 선을 찾아 어떤 것은 함께 깔깔 웃고 어떤 것은 함께

 

위로하는 책 한 권이 꼭 쓰고 싶노라고.

 

 

 

와중에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인 송호근 씨가 자신을 포함한 '베이비부머' 세대에 관한 책을 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기대가 됐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할 무렵 인수위원장이나 총리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던 이인 만

 

큼, 정치적 성향이 달라 그의 글을 부러 찾아 읽지는 않지만, 이따금 우연히 접하게 되면 설핏설핏 비치는 문청

 

향기에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다행히도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책 소개를 보니 보수 정권 출범의 희망찬 나팔

 

이나 혹은 각종 보고서가 인용된 논문집이 아니라 단지 교수라는 특정 직업을 가졌을 뿐인 50대 베이비부머의

 

일원으로서 적은 소회, 그리고 다른 베이비부머들과 나눈 몇 편의 인터뷰들이 실려 있다 했다. 인기가 있었던 것

 

일까, 예약을 걸어놓고 한참이나 기다렸다.

 

 

 

이 책을 읽던 밤, 나는 그간 쌓아두었던 책들 가운데 반납 기한이 다가온 것들을 골라 연달아 읽었다. 다소간 기

 

대에 미치지 못한 책도 있었지만 어쨌든 대체로 재미있는 독서였고, 독후감을 쓰고 싶은 마음도 충만했다. 하지

 

만 마지막에 읽은 이 책 때문에 나는 자판을 앞에 두고 두어 시간 동안 엎치락뒤치락하며 이 책 저 책의 독후감

 

을 쓰려고 찔러 보다가 결국 다 엎고 말았다. 다소간 짠하지만 대체로 재미있어하며 읽었던 <서울을 먹다>의 독

 

후감에까지 눈물이 뚝뚝 흐르는 문장을 쓰다 보니 그날 쓴 독후감은 어떤 책의 독후감이든 결국 이 책의 자장에

 

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56년 잔나비띠인 아버지가 저자와 동갑인 내 개인적 상황 탓도 있었을 것이다. 81년생인 나는, 한국에서는 55

 

년에서 63년 사이에 태어난 전후 세대를 지칭하는 '1차 베이비 부머'의 자녀 세대에 속한다. 이 책에서 분석하는

 

베이비부머의 사회적 입지와, 몇 개의 인터뷰를 통해 전하고 있는 현실적 삶의 모습들은, 내 아버지, 혹은 내 아

 

버지의 친구, 혹은 내 친구의 아버지들의 이야기이다. 이미 들어 알고 있거나, 모르다가 들었더라도 놀라지 않을

 

내용이 대부분이다.

 

 

 

책의 언급과 내가 갖고 있는 자료 몇 개만 참고해서, 아주 건조하게 몇 가지 수치와 역사적 기록만 살펴 보아도,

 

이들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1인당 국민소득이 50불 언저리이던 해, 베이비부머의 80% 가량은 농촌에서 태어났

 

다. 이들이 유년기를 보냈던 60년대, 나라의 수출은 1억 불을 달성한 지 칠 년도 되지 않아 열 배로 불어났다. 너

 

도나도 중동으로 독일로 외화를 벌러 떠났던 70년대, 20대의 이들에게는 가장 힘들고 고된 일이 주어졌다. 모두

 

는 아니었겠지만, 87년 6월 학생들과 함께 거리로 쏟아져 나와 대통령 직선제를 외쳤던 '넥타이 부대'는 이들의

 

또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마흔 언저리에 찾아온 IMF는, 이들의 선배들에게는 당연한 말이었던 '완전 고용'을 사

 

전에서 지워 버렸다. 그리고 이천년대, 사십대를 지나며 부동산 광풍에 한 발을 담그고 이자를 부어서 겨우겨우

 

마련한 자가는 쉰이 되자 팔리질 않는다. 집이 려야 프랜차이즈 닭집이라도 알아볼 자금도 마련하고 초혼 연

 

령 늦어진 자식들도 신혼집을 얻어줄 터인데.

 

 

 

동생뻘인 386세대는 이들의 탐욕이 부동산 가격의 합리적 인하를 막고 있다고 비판하고, 자식뻘인 88만원 세대

 

는 힘들게 쌓은 스펙 발휘 좀 해보게 직장에서 비켜달라고 말한다. 평균 정년이 58세라지만 실제로는 쉰 넘어서

 

자리를 차고 앉아 있으면 도둑 소리를 듣는다. 자료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강의 실질 정년은 쉰셋. 국민연금 수령

 

까지는 8년이 남았는데 중간 정산을 한 퇴직금으로는 사업 하나 차려보기 어렵고, 그나마도 자영업은 2년 내 폐

 

점률이 80%라는 흉흉한 소식도 들린다. 탑골 공원에 나가기엔 너무 젊고, 색색의 아웃도어를 입고 출근하듯 산

 

을 오르는 것도 하루이틀이다. 어쩌란 말인가. 답답한 생각에 젊은 애들 얘기만 들어주는 민주당이 못 미더워 우

 

루루 달려나가 82%의 투표율로 박근혜 밀어줬지만, 대통령이 바뀐다고 바로 내 삶이 좋아지는 건 아니라는 걸

 

이 세대만큼 직접 체험한 세대도 드물다.

 

 

 

그래서 어쨌을까. 이 책은 그 고민의 결과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한 통계청 수치를 인용한다. 다섯 살

 

단위로 나뉜 집단에서, 우리나라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집단은 55-59세였고 그 다음은 50-54세였다. 어쩌

 

란 말인가. 어쩔 수가 없다.

 

 

 

이 책은 참으로 합리적이어서 깔끔해 보이기까지 한 이 한 세대의 연대기를 찢어, 글자와 숫자 안에 순대 속처럼

 

가득 차 있던 이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국립 서울대의 정교수인 저자의 처지조차, 적어도 이 책의 내용에 따르

 

면, 결코 넉넉하거나 여유롭지 않다.

 

 

 

책에서는 결국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것, 눈높이를 낮추어서라도 일자리를 구해 볼 것, 그리고 자신만의 취미를

 

가질 것이라는 세 가지의 대안을 제시하긴 한다. 실제로도 많이 오가는 충고일 것이고, 지금 여기의 삶에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이 행복으로 가는 편도선 티켓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어쩔 수' 정도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중간중간에 들어간 학문적 분석을 논리적으로 따져볼 수도 있고 한 권 전체를 관통하는 문학적 감수성과 문체도

 

즐길 법 하련만, 내가 사랑하는 아버지의 삶이고 또 언젠가는 내 삶이기도 할 이야기여서, 내내 슬프게 읽었다.

 

다 읽고 나서 제목을 보니 처음에는 심상하게 보았던 그 글자들에서 다시 눈물이 묻어난다. 이왕에 울 거라면 눈

 

물도 뚝뚝 흘리고 엉엉 소리라도 내서 시원하게나 우시면 좋으련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