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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한홍구 外, <후쿠시마 이후의 삶> (반비. 2013.3.)

 

 

 

 

 

 

성공회대 교육학부 교수인 한홍구 씨, 도쿄 게이자이대학 현대법학부 교수인 서경식 씨, 도쿄대학 대학원 종합

 

문화연구과 교수인 다카하시 데쓰야(高橋哲哉) 씨의 좌담집. 부제는 '역사, 철학, 예술로 3.11 이후를 성찰하다'

 

이다. 핵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과학 전공자가 아니라 역사학 전공인 한홍구, 문학자인 서경식, 철학 전공인 다

 

카하시 데쓰야가 나눈 대화라는 점에서 붙여진 부제라고 한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에서 리히터 규모 9.0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두산백과사전에 따르면 이 지진은 1900

 

년 이후 인류가 경험한 네 번째로 강력한 지진이었다. 특히 세계가 주목했던 것은 대지진으로 일어난 거대한 쓰

 

나미로 인해 후쿠시마 현에 위치한 원전이 가동 중지되면서 방사능이 누출되었던 사고였다. 핵분열에 의한 폭발

 

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방사성 물질의 유출은 막을 수 없었다. 같은 해 4월, 일본 정부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에서 규정한 총 7등급의 원자력 사고 가운데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최고 위험 등급인 7단계에 속한다고 공식 발

 

표했다. 이전까지 7단계에 속하는 것은 20세기 최악의 원전 사고라고 불리우는 체르노빌 사고 한 건 뿐이었다.

 

 

 

2011년 11월, 후쿠시마가 고향인 철학자 다카하시 데쓰야와, 후쿠시마를 다룬 NHK 다큐멘터리의 제작에 참여

 

한 바 있었던 서경식, 그리고 한국에서 일찍부터 탈핵 운동을 해 온 바 있었던 한홍구는 함께 직접 후쿠시마를

 

답사하고 소감을 나누었다. 본래는 일회성의 개인적 만남이었던 이 자리에서, 세 명은 몇 차례 더 만나서 다른

 

여러 문제에 대해서도 심도있게 토론하고자 하는 데에 뜻을 모았다. 이후 그들은 약 1년간에 걸쳐 한국과 일본

 

을 오가며 다섯 차례의 대담을 나누었고 그 결과물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서 나왔다.

 

 

 

제목과 부제에서 직접 밝히고 있듯,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원전 사고 자체에 대한 기술적 접근이 아니다.

 

일차적으로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한국과 일본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서부터 시작해, 핵을 둘러싼 양

 

국의 역사적 시각들로 논의를 확장시키고, 나아가 이처럼 큰 문제 앞에서 국가와 개인의 관계는 어떤 양태를 띄

 

어 왔는가에 대해서까지 논의한다.

 

 

 

본문은 대담이 이루어진 횟수에 따라 총 5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후쿠시마 현장에서의 첫 만남이었던 1장은 본

 

디 한 차례의 대담으로 기획되었던 탓인지 여러가지의 소회와 소감들이 오고가지만, 2장부터는 만남의 장소와

 

대담의 주제가 면밀히 기획되어 있다.

 

 

 

예를 들어 첫 만남이 있은지 넉달 후인 2012년 3월, 세 명은 모두 경남 합천에서 열린 '2012 합천비핵평화대

 

회'에 참여할 계획이 있어서 이 자리를 두번째 대담의 장소로 삼았다. 한홍구에 따르면, 합천은 1945년 히로시

 

마에 투하된 원폭의 조선인 피폭 생존자와 그 2세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이라 한다. 그래서 원폭 피해자

 

2세들의 쉼터도 건설되어 있고, 비핵평화대회도 여기에서 열린다는 것이다. 여기에서의 대담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히로시마 원폭으로부터 시작해, 원전과 원폭이 갖는 사회적 의미, 그리고 그 피해자들과 국가와의 관계

 

등이 화제로 오른다. 3장인 도쿄에서의 만남에서도 이런 화제가 좀 더 심도깊게 논의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자체에 대한 정보를 원했던 사람이라면 슬슬 불만을 느끼기 시작할 지점은 4장과 5장이다.

 

세 학자는 세 차례의 만남에 만족하지 않고 제주 강정 마을과 오키나와를 방문하기로 결정한다. 두 장소 다 자

 

국의 군대와 미군의 기지가 관련되어 있고, 따라서 핵이 이슈 중의 하나이긴 하지만, 보다 주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은 핵과 같은 논쟁적 주제와 관련해 국가가 국민(시민)과 맺는 관계, 혹은 대응에 대한 비판이다. 여기에서는

 

제주 4.3 사건이나 류큐 왕국의 멸망과 같은 역사적 사건들까지 주요한 주제로 다루어진다.

 

 

 

세 학자들은 전공을 넘어 여러 영역에 도전해 온 이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시각과 관심사, 더 크게는 경험과 정

 

체성이 온전히 같을 수는 없다. 게다가 대담의 횟수가 정해져 있다는 점이나 언어의 장벽이 있다는 점 등을 고려

 

해 보면, 이들의 대화가 같은 전공을 가진 한국인 전문가들끼리 나누는 대담에 비해 유기적인 흐름이 다소 떨어

 

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바로 거기에, 같은 전공을 가진 것도 아니고 핵 문제가 주업인 것도 아닌 세 사람이 사비를 내면서까지

 

다섯 차례나 만난 열정의 동력원이 있는 것 같다. 이들은 예측할 수 없었던 수준의 다른 경험, 시각을 접하고 큰

 

영감을 얻었으며 때로 공감하였다. 애당초 관심사나 시각이 같았던 사람들보다 자극과 공감이 주는 감정의 폭이

 

훨씬 더 컸을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세 사람의 대담을 따라가다 보면, 목적은 같으나 경험과 시각이

 

달랐던 사람들이 토론과 대화를 거쳐 공동의 언어를 산출해 나가는 과정을 즐겁게 지켜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는, 고수인 세 사람이 가르쳐 주는 팀티칭 수업을 듣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마지막 5장의 대담은 12월 22일에 이루어졌다. 6일 전인 12월 16일 일본은 총선에서 아베 신조가 이끄는 자민

 

당이 3년만에 정권을 탈환하였고, 3일 전인 12월 19일 한국은 새누리당의 비대위원장이었던 박근혜가 대통령

 

으로 당선되었다. 한홍구의 표현에 따르면, '한반도의 남쪽은 박정희의 딸이, 북쪽은 김일성의 손자가 다스리게

 

되었고, 일본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의 (외)손자가 총리가' 된 셈이다. 한홍구는 이어 중국의 최고지도자에 오

 

른 시진핑도 건국 8대 원로에 꼽히는 시중신의 아들로 태자당에 속하는 인물임을 지적하면서 '동아시아 전체가

 

21세기에 들어와 퇴행해버린' 것 같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기점으로 탈핵과 평화를 바라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던 때에 대담을 시작하여, 우연인

 

지 필연인지 동아시아 3국에서 보수적인 정치 세력이 집권하게 된 상황 하에서 마지막 대담을 나누게 된 세 사

 

람은, 다소 가라앉은 목소리로 핵, 원전, 국가, 동아시아 등의 논의를 한 차례 정리하고 다카하시 데쓰야의 다음

 

과 같은 발언으로 책을 마무리 짓는다. 그 육성을 옮겨 적는 것으로 독후감의 끝을 갈음한다.

 

 

 

 

20세기의 위대한 철학자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라는 논고에서 인류의 역

 

사는 승자가 쓰는 것이라고 하면서 "희망은 희망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주어지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

 

습니다. 절망적인 사람들에게야말로 희망이 주어진다는 것이겠죠. 패배가 이어지는 역사를 우리만 경험하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웃음) 역시 포기하지 않는 것 외에 달리 길이 없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