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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김기태/하어영, <은밀한 호황>

 

 

 

 

주간지 <한겨레21>의 기자인 김기태와 하어영의 2012년 11월 작.

 

 

 

 

저자들은 여성가족부에서 2010년 말 서울대 여성연구소에 의뢰해 작성한 성매매 실태 조사 보고서를 언론 종사

 

자 가운데 최초로 입수하였다. 해당 자료는 700여 쪽에 걸쳐 45개 성매매 밀집 지역과 3만 5천여 곳의 성매매

 

알선 업체에 대한 현장 조사가 담긴 귀중한 것이었다. 여기에 여성가족부가 자체적으로 작성한 성 매수 실태 보

 

고서도 입수하였다.

 

 

 

 

<한겨레 21>의 내부 기획에서도 이 아이템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더 많았다고 한다. 의도와 관계 없이 성

 

매매 밀집 지역이나 성 구매의 방법에 관한 가장 효율적인 정보책이 될 수도 있는 것이고, 기사가 자칫 선정성의

 

시비에 휘말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기자들은 이것이 한국 사회의 깊은 컴플렉스를 조명할 수 있는 기

 

회라고 생각하여, 총 다섯 차례에 걸쳐 <한겨레 21>에 관련 기사를 연재하였다. 이 기사는 관련된 기사와 연구

 

를 쏟아낼 정도로 큰 관심을 얻었으며, 나 또한 해당 시기에 흥미로운 자료라고 생각하며 잘 갈무리해두었던 바

 

있다. 특히 성매수 실태 보고서의 내용을 보도한 2회의 '한국 남성 중 10명 중 4명은 지난해 성매매 했다'는 기

 

사는 며칠동안 각종 포털의 상위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저자들은 취재 과정에서 접하고 얻은 이야기들을 다 싣기에는 주간지의 지면이 모자랐다고 여기고, 기사

 

를 고치고 빠진 내용을 보강하여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은밀한 호황>이다.

 

 

 

 

성매매라는 주제 아래에는 여러 가지의 쟁점이 있을 수 있다. 쟁점에 따라 요구되는 배경지식과 논하고자 하는

 

가치가 상이한 경우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한 권의 책에 담기란 무리이다. 그래서 저자들은 두

 

가지의 집필 원칙을 세웠다. 하나, 성매매의 여러 형태 가운데 '해당 여성이 원하지 않는, 외부적인 변수에 의해

 

강요된 성매매'를 주로 다룬다. 둘, 성매매 문제의 해결책과 답안보다는, 확보된 풍부한 자료로부터 성매매의 현

 

실을 다양하게 보여주는 데에 주안점을 둔다. 그러니까 이 책은, 원치 않는 성매매를 했던, 그리고 하고 있는 여

 

성들을 둘러싼 현실과 그들의 육성을 전하는 책이다.

 

 

 

 

 

책은 총 여섯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성역聖域 없는 성역性域'에서는 한국 성 산업의 생태계를 해부한다. 이미 많은 연구에서 증명되었듯, 한국

 

의 성 산업은 국가의 방조와 묵인, 때로는 적극적인 장려 하에서 거대하게 성장하였다. 이제는 파는 여성과 사는

 

남성만이 그 구성원이 아니다. '업소' 덕에 지역 부흥의 꿀을 함께 빨 수 있는 인근의 자영업자들도 이미 주요한

 

이해당사자이자 로비 세력을 형성하고 있으며, 성 판매자의 '관리자'들과 관리자를 다시 '관리'하는 국가 권력도

 

암묵의 카르텔로 연대한지 오래이다.

 

 

 

 

2장 '불법은 맞지만 범죄는 아니다?'에서는 한국 남성의 성 매매 현황과 그 의식을 살폈다. 이 장은 크게 두 부분

 

으로 나눌 수 있는데, 앞 부분에서는 설문조사를 통해 성 매수자의 학력, 결혼 여부, 소득 수준, 매수 횟수, 선호

 

업소 유형 등을 수치로 보여 주었고, 뒷 부분에서는 익명의 남성 열 명의 심층 인터뷰를 실었다. 인터뷰에 응한

 

남성들은 20대부터 40대 후반까지 분포되었으며 미혼자 3명, 기혼자 7명이었다. 인터뷰는 다섯 가지 질문에 답

 

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는데, 질문은 다음과 같다.

 

 

성매매의 시작은?                       성매매의 빈도 및 유형은?              성매매에 대한 인식은?    

 

성매매특별법에 대한 인식은?       성매매 여성에 대한 인식은?

 

 

개개인의 경험과 가치관을 답한 것이므로 질문의 답마다 어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저자들이 느슨한 공통적

 

인식으로 파악한 바는 바로 '불법은 맞지만 범죄는 아니다'였다. 말하자면, 나라에서 법으로 정했으니 형식상으

 

로야 당연히 불법이지만, 내 스스로가 죄악을 범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는 것이다. 하기사, 아무리 짜

 

릿한 경험이라 해도 스스로 죄를 범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면 '열 명 중 네 명'이 성 매수를 했겠나.

 

 

 

 

3장 '보이지만 보지 않고 들리지만 듣지 않는'에서는 성매매 여성들의 현실을 전한다. 자료에 따르면, 업소마다

 

차이는 있지만, 성 매매는 보통 한 시간을 잡는 1회당 최저 6만원에서 최고 수백 만원에 이르'고가'의 서비스

 

산업이다. 그럼에도 성매매 여성들이 '대박'을 치거나 적어도 경제적으로 자립할 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하는 이

 

유는 초반에 여러 명목으로 빚을 지게 해 놓고 수입의 대부분을 이자로 뜯어가는 구조적인 문제에 있다.

 

 

 

 

4장 '어쩌면, 이 모든 문제의 시작'에서는 청소년 성매매를 다룬다. 연구자들은 10대를 가출과 성매매 경험이 없

 

는 A 그룹, 가출은 했지만 성매매 경험은 없는 B 그룹, 가출과 성매매 경험이 모두 있는 C 그룹으로 나누어 설문

 

조사를 행했다. 그 결과는 분명한 경향성을 갖고 있었다.

 

 

가출을 하지 않았고 성매매를 해 본 적이 없는 A 그룹의 경우 친부모와 동거하고 있는 비율이 77.5%인 반면, 가

 

출을 한 적이 있고 성매매도 한 적이 있는 C 그룹은 19.6%에 불과했다. 성폭행 경험에 관해, A 그룹에서는 5.3%

 

가 성폭행을 당했던 적이 있다고 대답한 반면 C 그룹은 55.2%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불우한 환경과 가정의

 

불화가 10대의 성매매에 중요한 요인임이 밝혀진 것이다.

 

 

가출을 한 뒤 성매매를 시작한 청소년의 68.7%가 생계비가 없어서 성매매를 시작했다고 답했다. 이들이 성매매

 

에 노출된 경로는 인터넷 채팅이 84.7%를 차지했다. 

 

 

이 장의 뒷부분에는 이 설문조사를 그대로 반영한 듯한 한 청소년의 경험담들이 실려 있다. 알콜중독의 부모, 알

 

던 어른으로부터의 성폭행, 청소년기의 가출, 정상적이고 안정적인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어려운 사회 환경, 생

 

활비의 압박, PC방을 전전하는 중 채팅을 통해진 성매매의 유혹. 앞부분의 조사 결과를 읽지 않았더라면 '어린

 

애가 너무 고생이 많았구나'하고 체험담의 그 아이만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삶은 이미 한국 청소년 상의

 

한 전형이다.

 

 

 

 

5장 '국경 없는 성매매'에서는 '해외' 성매매의 사례들을 살핀다. 여기에는 외국에서 성매매를 하고 있는 한국

 

여성, 한국으로 들어와 성매매를 하고 있는 외국 여성, 그리고 해외로 원정 성매매를 떠나는 한국 남성의 사례

 

가 소개되었다.

 

 

 

 

6장 '성매매의 논리들'에서는 집필 의도에서 밝힌 바와 같은 '원치 않는 성매매를 하게 된 여성의 이야기'에서

 

잠시 눈을 떼고 성매매 자체에 관한 논쟁적 시각들을 소개한다. 예를 들어 페미니즘 내부에서도, 성매매를 성 노

 

예제이자 여성에 대한 남성의 성폭력으로 보는 급진주의 페미니즘이 있는가 하면,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과

 

성 판매 여성에 대한 차별 철폐에 주안점을 두는 자유주의 페미니즘도 있고, 여성들이 빈곤으로 인해 어쩔 수 없

 

이 성을 팔고 있는 것이니 구조적 빈곤을 해결하고 성 판매 여성의 노동권을 보장할 것을 주장하는 마르크스주

 

의 페미니즘도 있다. 현재 성매매 사업에 종사하고 있는 여성들의 육성도 실려 있는데, '자존감이 낮아진다'는

 

고백이나 '손님들이 안쓰럽다'는 술회, '국가가 우리를 지키려고 성매매를 금지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비

 

판적 주장 등 다양한 관점들이 보인다.

 

 

 

 

 

수치와 육성을 숨가쁘게 교직해 내던 저자는 '닫는 글'에서 또 하나의 충격적인 사례를 소개한다. 미대 진학을

 

지망하던 한 여학생이 수능 점수를 잘 받아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비싼 입학금과 등록금을 마

 

할 수가 없어, 오전에는 미술 학원에서 실기를 대비하고 낮부터 자정까지는 오피스텔에서 성매매를 했다고 한

 

다. 잘못된 방법을 택했다고 비난하기는 쉽다. 하지만 집에서 지원을 해 줄 수 없다면, 일반 학과에 비해 훨씬 더

 

비싼 미대의 등록금을 대기 위해 이 아이가 현실적으로 택할 수 있는 방법이 몇 개나 되었을까. 이 아이와 업주

 

는 입건되고 업주는 구속됐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경찰의 단속은 아이를 불법에서 건져 놓았지만, 아이의

 

꿈은 그만큼 멀어진 셈이다.' 이것이 설마 아이가 더 이상 몸을 팔지 못하게 된 것을 안타까워 하는 발언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사례로 '닫는 글'을 시작한 뒤, 책을 통해 밝히고 주장한 바를 열 가지로 정리한 저

 

자는 다시 이 사례로 돌아와 이런 질문을 던진다.

 

 

  

"국가의 진짜 역할이 저걸까? 돈이 없어서 성매매에 나선 아이를 잡아들이는 게 국가의 구실일까? 그게 다일까?

 

그러면 성매매 문제가 해결될까? 아이는 행복해질까? 동의하기는 쉽지 않다."

 

 

  

물론 모든 성매매 여성의 경우가 이 아이의 열여덟처럼 드라마틱하다고는 할 수 없다. 다섯개나 이어지는 물음

 

표는 다소간 감정의 과잉으로도 여겨진다. 하지만 '열 명 중 네 명'이 성매매를 하는 나라라면, 그리고 그 나라의

 

남성들이 다른 나라의 남성에 비해 과도한 성욕을 가지고 있다고 과학적으로 증명을 할 수 없는 거라면, 성매매

 

의 합법성이나 남성과 여성의 성별적 차이 따위의 논의를 하기에 앞서 국가의 역할에 대해 함께 다시 한 번 생각

 

해 보는 것이 타당하고 또한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강준만의 <매매춘, 한국을 벗기다>(인물과 사상사, 2012)가 근현대 한국의 매춘의 역사를 통사적으로 개괄하였

 

다면, <은밀한 호황>은 오늘 여기의 민낯에 돋보기를 들이댄다. 읽기에 따라, 이 이야기는 '한국의 매춘'일 뿐 아

 

니라 '한국' 그 자체이기도 하다. 한국에 관심이 있는 한국인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