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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나카무라 요시후미中村好文, <집을, 순례하다>






일본의 대표적인 건축가 중 한 명인 나카무라 요시후미가 20세기 주택의 명작 여덟 채를 찾아다니며 쓴 일종의

수기이다.




먼저, 디자인. 위에 실린 표지 이미지 중 하단부의 인물 그림은 띠지이다. 벗기고 나면 상단 우측에 있는 것과

같은 따
뜻한 건뮬 손그림이 그려져 있다. 해당 건물의 건축가가 직접 그린 그림을 소개하는 경우를 제하고는,

책 중의 건물 스
케치나 인물 캐리커쳐 등은 모두 저자가 그린 것이라고 한다. 그림은 굵은 펜으로 한 번에 그린

것 같은데 채색이나 음
영을 의도적으로 서투르게 처리한 것이 아주 귀엽다. 

책의 본문에는 상단과 좌우에 넉넉한 여백이 있다. 아마도 재미있는 사진들을 보다가 다시 글을 읽어야 할 때에

쉽게
집중할 수 있도록 한 것 같다. 다만 다른 방향의 여백들이 엄지손가락 한 마디 만큼의 길이만을 갖는 데 비

해, 하단에
는 엄지 손가락이 하나 통째로 들어가는 여백이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 기억해 두었다가

편집을 하시는 분
을 만나게 되면 물어봐야겠다.



반드시라고는 할 수 없지만, 한 편당 약 30 쪽 가량으로 이루어진 본문의 구성은 대체로 4단이다.


1단에서는 해당 챕터에서 저자가 찾아가게 될 저택에 왜 관심을 갖게 되었는가, 혹은 자신과 어떤 관련이 있는

가 등이
소개된다. 건축 공부를 하다가 접해보니 흥미를 갖게 되어서, 라는 건조한 이유도 있지만 나와 같이 둥

근 안경을 쓴 건
축가, 라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다. 책 전체의 분위기라고 할 수 있는 소박함, 겸손함, 귀여움

등이 개인적인 이야기
를 적는 이 부분에서 특히 빛난다. 비전공인인 나로서도 저자 개인에게 호감을 갖게 되어

이 뒤부터 본격적으로 시작
될 건축 이야기에 부담감을 잊고 접근할 수 있었다. 단순히 본인이 이런 글쓰기를 좋

아했을 수도 있지만, (일종의) 전
문 서적으로서 취할 수 있는 가장 휼륭한 전략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1단과 합쳐져 나오기도 하는 2단은 주택을 찾아가는 이야기, 혹은 주택과 건축가에 관련된 배경 지식이다. 건축

가의
장황한 이력이나 주택이 건축사에서 차지하는 역사적 의의 등이 아니라 앞으로의 내용과 관련해 알아두면

좋을 것들
정도가 소개되어 있다. 다른 부분들에 비해 다소 건조할 수 있는 성격의 단이지만 조곤조곤한 어조와

대화체의 문체가
독자에게 끈기를 불어넣어 준다.


본문이라고 할 수 있는 3단은 저택의 분석이다. 저택의 사진과 직접 그린 평면도, 그리고 소품의 스케치 등과 함

께 설
명이 이어진다. (나는 사실 여기에서 '분석', '설명' 등의 단어를 쓰며 약간 거북함을 느꼈는데, 그건 저택

에 대한 애정
과 건축가에 대한 존경, 그리고 자기가 느꼈던 지극히 사적인 감정까지 독자에게 충실하게 전달하

려고 하는 저자의 의
지를 느끼며 즐겁게 한 독서를 형용하기에는 지나치게 요식적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사람

이 설명해 준다면 세상에서
가장 심심해 보이는 물건에 대해서라도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다.)

이 책에 소개된 개성 만발의 저택들은 하나의 중요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건축가가 저택에 살게 될 사람의 취

향과 필
요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고 그에 대한 애정을 가진 채 건축을 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인 저택은 짓는 사

람과 살 사람
간의 무형의 대화라고 해도 좋다. 그런 부분들을 세심하고 정밀하게 관찰하여 객관적으로 전달하

기만 해도 독자는 따
뜻한 느낌을 받게 되었을 것인데, 관찰자가 개구장이 같은 호기심을 갖고 집 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무형의 대화의
실제 내용은 무엇일까를 재구하는 모습에는 따뜻한 웃음을 짓지 않기가 어렵다. 물

론 무조건적인 영탄법의 반복이라
면 저녁 무렵의 맛집 소개 프로그램이나 홍수처럼 넘쳐나는 해외여행 블로그

에 비해 더 나을 것이 없겠지만, 최고의
건축가가 직접 평면도와 동선을 그려가며 쉬운 말로 설명하는 '컨텐

츠'가 튼실하기에 정보와 재미, 양수를 겸장했다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건축물의 평면도를 보는

것이 재미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하게 됐다.)



4단은 나가는 글로, 저택과 건축가의 그 후의 이야기를 소개하거나 혹은 3단의 여흥을 정리하는 한 두 문장 정

도로 끝
나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분량은 예상보다 길지 않아, 산뜻한 느낌을 받은 채로 다음 편을 접할 수 있

다.




개인적으로는 첫 집은 되도록 짓는 집을 갖고 싶고, 그 설계에 건의 정도만이라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건축-

설계 공
부를 시작하는 책이었다. 물론 전문가들이 보기에는 러브 하우스에 나오는 집 소개와 크게 다를 것이 없

을지도 모르겠
지만 문외한으로서는 '가장 유명한 건축가들의 가장 훌륭한 작품도 결국에는 사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저택'이라는 것
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무척 기쁜 독서였다. 앞으로도 한동안은 이 저자의 책이나 안도

다다오의 책과 같이 수기, 에세
이 형태의 책들을 통해 관련 지식에 천천히 접근해 보려고 한다. 그나저나, 이름

이 호문好文이라니, 과연 멋쟁이란 명
찰부터 남다른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