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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11



활에 관한 얕은 지식과 추억을 한데 얽어 일기를 쓰다가, 글과 함께 올리기 위해 다운받은 사진을 다시 보고는 모두 지

워버렸다. 우주적 아름다움의 저 한 획 앞에서 꾸며낸 말뭉치가 다 무어냐. 총포와 도검류를 비롯한 여타의 무기와 병

기에는 예비역으로서의 심심한 관심만을 갖고 있지만 활만은 은퇴한 뒤 꼭 한 자루 만들어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을 내

내 가져오던 차에, 영화 <최종병기 활>을 보고는 욕정이 다시 한껏 치솟아 검색을 해 보았다.


의외로, 딱히 큰 마음을 먹지 않고도 보급형이라면 한 자루 정도 살 수 있고, 혹여 공돈이 생긴 경우를 틈탄다면 제법
 
멋을 낸 작품도 눈독을 들일 수 있을 법한 가격대였다. 상시는 아니고 이따금 이벤트 성으로 하는 모양이지만 활 박물

관 등에서 소정의 돈을 내고 나만의 활을 만들 수 있는 행사도 있는 것 같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나무와 가죽 등을 구해

집에서 혼자 활을 만드는 이들도 꽤 많았다는 것이다. 회원수가 이만 삼천 명을 넘는 네이버의 한 카페에는 일반인들

이 뒷산에서 주운 버드나무나 대나무로 만든 '작품'의 사진이 무수히 올라와 있었다. 개중에는 기성품보다 훨씬 더 정

교하거나 독특한 것들도 있었다. 검색을 시작할 무렵에는 기타도 이미 샀겠다, 딱히 더 갖고 싶은 물건도 없던 차에 새

로 채우는 저금통의 목표는 활이다! 싶던 것이 종국에는 이번 추석에 선산에 가면 어디 떨어진 굵은 가지 없나 찾아봐

야겠다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시 스물스물 올라오던 오토바이에의 사모심은 일단 4/4분기로 미루고, 올 가을 남자의
 
잇 아이템은 활. 시방은 당장 사도 방에 놓을 곳이 없지만 당장 살 수 있는 것이라면 참된 잇 아이템이 아닌 법.


다음은 김현기 씨의 홈페이지 보우아트(http://www.bowart.com/)에서 가져온 사진. 직접 작품을 만들고 판매까지

하시는 모양이다. 어떻게 궁시장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을까. 혹 인터뷰 자료 같은 것은 없는지 찾아봐야겠다. 아니면
 
이메일로나마 직접 인터뷰를 청해 볼까? 아무튼 사진 나간다.








영화에 소품으로 사용되었던 화려한 작품들도 판매되고 있었지만, 나는 보다 단순한 디자인의 활에 눈이 끌렸다. '활'

이라는 한글 이름과 '弓'이라는 한자 이름, 그리고 실제의 모양까지, 어쩌면 그리도 일관되게 날렵한 맵시일까. 악기를

연상시키는 유려한 곡선을 가졌으면서도 기마 민족에게 파괴적인 공격력을 선사한 실용성도 놓치지 않았다. '궁시에

걸고 맹서한다'는 표현에서 보듯 신성성의 심상까지 두르고 있는, 정말이지 매혹적인 물체다.  
 









보다 단순한 형태의 활들. 단아함과 강직함이 함께 느껴진다. 언젠가 큰 서재를 갖게 된다면 위의 활들보다는 이쪽의

활을 놓아두고 싶다. 병기는 흉물인데 책이 있는 장소에 웬 활이냐는 비난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실 활쏘기는 고대

에 시, 서, 예, 악, 말타기 (혹은 수레몰기) 와 함께 공부하는 이가 닦아야 할 여섯 가지 소양 가운데 하나였다. 체력 증

진과 건강의 유지 때문이었다고도 하고, 사냥을 다니며 인정과 물정을 경험하고 배우기 위해서였다고도 한다. 후자의
 
경우에는 고대의 제왕이나 제후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이나, 전자의 경우에는 정조가 책만 읽다가 근력이 약해진 정

약용에게 매일 30회씩 활쏘기를 하도록 숙제를 내었다는 등 비교적 근래의 기록도 남아 있다. 책을 읽다가 몸을 쭉 펴

고는 뒷짐을 지고 뜰로 나가 활쏘기 30회. 말만 들어도 명저가 탄생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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