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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정월 일기 하루가 이틀인지 아침이 새벽인지도 알지 못하고, 배고프면 부를 때까지 먹고 졸리면 깰 때까지 잔다. 배가 차면 두어 숟갈 들었더라도 곧 그만두고 차지 않으면 두 그릇이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정신이 깨면 두 시간을 잤어도 일어나 앉지만 혼미하면 시계도 보지 않고 다시 돌아눕는다. 오롯이 남는 시간은 자고 일어난 자리에서 한 발짝 떨어진 앉은뱅이 책상에서 옛 글을 번역하는 데 쏟아붓는데, 덕분에 못해도 하루에 한 권은 읽던 다른 책들은 사 흘이 지나도록 반 권도 못 읽는 일이 허다하다. 진즉에 이렇게 했으면 박사과정의 학기도 이미 끝나 있을 것을, 때늦은 석사를 따겠다고 짧게는 백 년 길게는 삼천 년 전의 글을 붙잡고 기진맥진 애를 쓰는 모습이 반은 기특하 고 반은 허망하다. 계사년 정월에 연희동에서 쓴다. 더보기
김수항이 죽기 전날 밤 귀신 꿈을 꾸다 문충공 김수항은 용모가 매우 수려하였다. 일찍이 한 마리 나귀를 타고서는 한 동네를 지나가는데, 역관 집안의 딸이 창문 틈으로 그를 보고서는 마음으로 흠모하게 되었다. 그를 지아비로 삼고자 생각하였지만 입 밖으로 내 기가 어려워, 마침내 병에 걸려 거의 죽을 지경이 되었다. 그 아비가 캐묻자 딸은 비로소 이유를 말하였다. 아비는 이야기를 다 듣고 김공을 찾아가 인사한 뒤 딸을 거두어 처로 삼아주기를 청하였다. 김공은 성격이 본래 강직하여, 그 딸의 행실이 바르지 못한 것을 크게 질책하였다. 아비는 두려워 벌벌 떨면서 집으로 돌아와 딸에게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딸은 그 말을 듣고는 눈물을 삼키며 죽고 말았다. 후에 김공은 대신의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탄핵을 받아 섬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고, 유배 몇 년 후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