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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강상중, <도쿄 산책자> (사계절. 2013, 4.) 읽은 감상 한 마디 먼저. 산뜻하다! 책 좋아한다는 사람들에게 몇 차례고 추천받아왔던 필자인 강상중 세이가쿠인 대학 교수의 2013년 신작. 부제 는 '강상중의 도시 인문 에세이'. 베스트셀러를 몇 편이나 낸 인기 저자이지만, 아무튼 이 독서일지에는 처음 등 장이다. 본문과 책날개를 빌려 간단한 소개를 옮겨보자. 저자는 일본 구마모토 현 출신의 재일 동포이다. (얼마 전 읽었던 소준섭 선생의 신간에서, 교포僑胞의 교僑는 더부살이하 다, 얹혀 살다, 라는 뜻을 갖고 있으므로 동포라고 불러야 한다는 지적을 접한 바 있었다. '재일 교포' 쪽이 익숙하기도 하고, 동포 라는 단어에는 민족주의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는 것 같아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아무튼 현재로서는 동포 쪽이 좀 더 정당한 표 현인 것 같아 그.. 더보기
허소희 外, <종이배를 접는 시간 - 한진중공업 3년의 기록> (삶창. 2013, 5.) 5월 말까지 해야 하는 종합소득세 신고를 했다. 스스로 뭐라고 생각하든, 국가의 행정 체제에 잡히는 내 공적 신분은 '강사 / 과외 강사/ 학원 강사'이다. 이제의 나는, 내가 어딘가에서 누군가를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 자체 를 부끄러워 하지는 않는다. 내공이 쌓였기 때문은 절대로 아니고, 덜 모자란 사람이 더 모자란 사람을 한 발이 라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도 분명 교육의 한 형태라고 생각하게 됐기 때문이다. 내 수업의 특징 중 하나는 딴 소리를 많이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현대 소설을 강의하면서 나는 소설의 내용 자체보다 소설이 집필된 시기의 사회상과 작가 개인의 삶을 설명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쓴다. 정작 내용은 잘 모르지만 교과서에도 나오고 EBS 문제집에도 나오고 하는 통에 이름만 들어.. 더보기
김기태, <병원 장사> (씨네21북스, 2013, 3.) 대통령의 방미를 수행하던 중 이루어진 청와대 대변인의 음주와 성추행 의혹, 방송 도중 극우 성향 인터넷 사이 트의 유행어를 사용한 인기 걸그룹 멤버를 둘러싼 논란, 스튜어디스에게 무리한 요구를 거듭하다가 끝내는 들고 있던 잡지로 이마를 때린 철강기업 상무의 사건에서 촉발되어 부를 획득한 개인의 품성적 문제가 아니라 대기업 의 밀어내기 관행 등 구조적인 문제의 지적에까지 나아간 '甲질'의 쟁점화, 그리고 서태지의 재혼까지. 독후감을 쓰고 있는 2013년 5월의 뉴스 란은 'A급'으로 가득하다. 이명박 정권의 핵심 사업인 4대강 사업에 검찰이 수사 를 착수했다는 소식이나 5.18 당시 전남도청을 점거했던 것은 시민군이 아니라 북한에서 온 게릴라였다는 한 종 편 채널의 괴 보도 급 뉴스도 언론사의 메인 페이지.. 더보기
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 (아포리아. 2013,3.) 길고 길게 썼다가, 스스로의 눈에도 마뜩찮은 부분이 많아 모두 지웠다. 그만큼, 현재의 유시민과 한 결과물인 이 책을 접하는 내 심상이 복잡하기 때문일 것이다. 책 자체로만 좁혀서 말하자면, 미완성품이라는 인상이 강하게 들었다. 만약 누군가가, 그거 무슨 책이야, 라고 물어오면, 근래에 읽은 저작들 중 가장 긴 설명을 필요로 하는 책일 것이다. 이 책의 곳곳에는 여러 유시민이 오 도카니 서 있다. 범박한 제목에서 최초로 연상되는, 청년, 그리고 저자의 동년배들을 위한 제언을 나직하게 읊는 '지식소매상' 유시민이 있고, '하필, 지금' 정계를 은퇴한 저간의 사정과 심경을 고백하는 전 진보정의당 공동대 표 유시민이 있다. 1980년 5월의 어느날 서울역 앞에서 십만 대학생 앞에 섰던 20대의 유시민이 있고,.. 더보기
최대호 님은? 이 블로그를 쭉 읽어오신 분이라면 잘 알고 있을 내용이다. 카테고리에 독후감을 올리면, 인터넷 서 점 반디앤루니스에서 포털 DAUM과 함께 매 주마다 열 편씩을 뽑아 게시하고 부상을 주는 '반디 앤 뷰 어워드'에 이따금 선정될 때가 있다. 부상은 반디앤루니스의 적립금 형태로 지급받게 되는데, 5만 원인 1등은 한 차례 뿐이 었고, 그 외의 횟수에는 2등부터 10등까지 균일하게 주는 5천 원을 받았다. 그간 받은 적립금을 더하면 십만 원 가량이 된다. 액수로만 보자면 적은 돈은 아니지만 마음먹으면 지갑에서 꺼낼 수 없는 액수도 아니다. 하지만 그 십만 원의 과정은 정말이지 뛸듯이 기쁜 한 번 한 번이었다. 상 받을 일은 둘째치고 입발린 칭찬이라도 듣기가 어려워진 서른 이후라 더욱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런 .. 더보기
앨런 피즈/바바라 피즈, <당신은 이미 읽혔다> (흐름출판. 2012,11.) 경험이 쌓일수록, 관심을 갖고 생각을 해볼수록, '대화'에서 정작 말이 차지하는 부분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대화가 이루어지는 도중은 둘째 치고 심지어 대화가 시작되기 이전에도, 듣는 사람은 말하는 사 람과 그가 말할 내용에 대한 일정량의 정보를 구비해 놓는다. 얼마 전 시청한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본 내용이다. 제작진은 '실험자'에게 한 번은 단정하고 검소한 차림 을 하게 하고, 한 번은 누가 보아도 알 수 있는 명품을 걸치게 한 뒤 각각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는 거리로 나 가서 시민들에게 두 장의 사진을 보여주고 그가 어떤 사람일지, 그는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을지, 그의 말 을 믿을 수 있을지 등에 대한 설문을 행하였다. 옷을 입은 사람은 동일한 사람이고, 표정, 자세.. 더보기
선대인경제연구소, <두 명만 모여도 꼭 나오는 경제 질문> (웅진지식하우스. 2013,3.) '99%를 위한 정직한 경제연구소'를 모토로 하는 선대인경제연구소의 2013년 3월 신작. 연구소의 소장이자 주 저자인 선대인이 본인의 이름이 아니라 연구소의 이름으로 펴내는 첫 서적이다. 책 제목은 눈을 잡아끄는 재기발랄한 것은 아니지만 내용을 잘 반영한 명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제 질문'은 이 책이 경제에 관한 내용을 질문과 답변의 형식으로 다룰 것이라는 것을 전달해 주며, '두 명만 모여도 꼭 나오 는'은 여러 경제 중에서도 특히 '두 명' 이상의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있는, 즉 '서민 경제'에 관해 다룰 것이 라는 성격을 보여준다. 책은 총 4장, 38개의 소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한 소챕터의 분량은 짧게는 5쪽에서 길게는 10쪽 가량으로, 그 내용은 서민 경제에 관련된 하나의 질문에 대.. 더보기
메가쇼킹 外,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쫄깃> (청어람미디어. 2012. 10.) 필명 '메가쇼킹'의 만화가 고필헌 씨와, 그와 함께 제주도의 게스트하우스 '쫄깃센타'를 건축, 운영하고 있는 '쫄 깃 패밀리'의 2012년 공저. 학교 도서관에는 얼마 전에야 들어온 탓에 출간된 지 몇 달이 지난 오늘에야 손에 잡 아볼 수 있었다. 고필헌은 똥, 방귀 등의 '더티 코드'와 스킨쉽, 섹스 등의 '에로틱 코드'를 주요 소재로 다루는 개그 만화 와, 두 달 동안 자전거로 전국일주의 신혼여행을 떠났던 본인의 경험을 다룬 으로 유명한 만화가이다. 위의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 단순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디자인의 캐릭터들이 다수 등장 하고, '염통이 쫄깃해진다'나 '부끄럽기가 서울역 앞에 그지 없다'와 같은 언어 유희가 버무러져 이미 많은 인기 를 확보한 바 있다. 그러나 - 책에 따르면 - 2010년 .. 더보기
이우혁, <퇴마록 외전> (엘릭시르. 2013.3.) 엄마는 책의 구입에 한해서는 '안 돼'를 말하는 일이 없었다. 평생의 예외는 단 두 차례에 불과했는데, 과 이 그 주인공들이다. 전자는 추리소설은 어린이의 성정을 잔혹하게 만든다고 해서, 후자 는 허무맹랑한 귀신 이야기라고 해서가 주된 이유였다. 덕분에 본래의 재미에 금서(禁書)를 탐독하는 불경함까 지 얹어 무척이나 즐거운 독서를 했던 기억이 난다. 특히 은 을 읽으며 내 안에 여리게 싹을 틔운 영적 세계, 고대 문명, 원시 종교 등에 대한 호 기심에 들불을 붙여준 작품이었다. 지금이야 온라인 게임만 열심히 해도 어지간한 민족 신화의 설정이나 요괴의 호칭들 따위는 줄줄 꿸 수 있는 세상이지만, 80년대의 소년들에게는 그런 주제에 대한 정보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기껏해야 이따금 헌책방의 구석.. 더보기
피터 챈키지, <자연 모방> (에이도스. 2013, 3.) 천문학을 제하고는 도대체 몇 년만에 읽는 과학책인지 모르겠다. 독서의 폭이 좁아지는 것에 신경을 쓰던 차에, 한 온라인 서점에 '4월은 과학의 달'이라는 표어가 붙어있길래 그렇다면 과학책에 도전해 보자! 하고 고른 책. 먼저, 저자가 결론부에서 정리해 놓은 이 책의 핵심주장을 옮겨보자. 1. 말은 고체물리적 사건처럼 소리 난다. 2. 음악은 사람이 움직이는 것처럼 소리 난다. 3. 호모 사피엔스는 언어와 음악이 자연을 흉내내도록 설계한 문화적 진화 덕에, 즉 자연 응용 덕에 현대인이 되었다. 누워서 책을 읽고 있던 나는 상체를 반쯤 일으키며 '진짜?'라고 외쳤다. 그런데 왜 나는 전혀 처음 보는 주장 같 지? 이유는 단순하다. 나는 책의 9할 정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로 독서를 마친 것이다. 수험생 .. 더보기
한홍구 外, <후쿠시마 이후의 삶> (반비. 2013.3.) 성공회대 교육학부 교수인 한홍구 씨, 도쿄 게이자이대학 현대법학부 교수인 서경식 씨, 도쿄대학 대학원 종합 문화연구과 교수인 다카하시 데쓰야(高橋哲哉) 씨의 좌담집. 부제는 '역사, 철학, 예술로 3.11 이후를 성찰하다' 이다. 핵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과학 전공자가 아니라 역사학 전공인 한홍구, 문학자인 서경식, 철학 전공인 다 카하시 데쓰야가 나눈 대화라는 점에서 붙여진 부제라고 한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에서 리히터 규모 9.0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두산백과사전에 따르면 이 지진은 1900 년 이후 인류가 경험한 네 번째로 강력한 지진이었다. 특히 세계가 주목했던 것은 대지진으로 일어난 거대한 쓰 나미로 인해 후쿠시마 현에 위치한 원전이 가동 중지되면서 방사능이 누출되었던 사고였다. 핵.. 더보기
이택광, <마녀 프레임> (자음과모음. 2013,2.) 경희대학교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영미문화전공 교수인 이택광 씨(이하 이택광)의 '문화비평'. 철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영문학과에서 문화이론 박사 학위를 취득한 저자의 이력은, 멍하니 글자만 읽으면 무 척 낯설다. 대부분의 우리는 무슨 대학 무슨 과 석사, 동(同) 대학 동 학과 박사라는 목록에 익숙하다. 그런데 철 학 석사와 문화이론 박사라면, 일관된 주제의식을 가진 학자라면 걷지 못할 길도 아니다. 사실은, 생각해 보면, 세부전공에 따라 관심과 주제의식이 한정되어 가는 대부분의 현실 쪽이 오히려 더 이상(異常)한 편이 아닐까 싶 다. - 이상한 편이 모욕적으로 느껴진다면 특수한 편이라고 해도 좋다. - 하지만 정해진 제도권의 안팎을 오가는 발걸음은 역시 위태롭다. 그에게는 빨리 학위를 취득하고 강의를 .. 더보기
정봉주/지승호, <대한민국 진화론> (미래를소유한사람들. 2013, 1.)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 씨의 34번째 인터뷰집. 한 줄 평 먼저. '정봉주의 대권 프로젝트 선언문?'. 각계 각층의 인사들을 만나 그 내면까지를 파고들어 온 지승호 마저도 '봉도사' 만큼은 어쩔 수 없었던 것일까? 자발적인 것인지 압도당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읽는 내내 나는 난처한 얼굴로 지나치게 발랄한 개를 산책시 키는 주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무리 인터뷰집이라지만 인물의 육성이 이렇게까지 생생하게 전달되는 글을 볼 줄이야. 에서 입소 전 그의 마지막 육성을 들은 것도 벌써 재작년의 일이니 오랜만의 목소리에 반가울 법 도 하련만, 귀여웠던 '깔때기'가 대책없이 커져버린 탓에 팬이었던 나로서도 경각심의 눈초리가 번뜩 뜬다. 권력 자의 치부나 정치 필승 전략의 목소리가 경쾌하게 뽑아져 나오던 그 깔대.. 더보기
박경숙, <문제는 무기력이다> (와이즈베리. 2013, 2.) 1. 신선하다고 하기는 어려운 제목과 과장된 느낌의 외국인 모델이 나오는 표지, 둘 다 내게는 내밀었던 손을 다시 거두는 강력한 장치들임에도, 요새의 내가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단어들 중 하나인 '무기력'에 관한 책이어서 출간 소식을 듣자마자 도서관에 바로 예약을 걸어둔 바 있었다. 강의 중 예약도서 도착 문자를 받고는 퇴근 길에 도서관에 들러 바로 받아다가 귀가하여 옷도 갈아입지 않고 그 자리에서 다 읽고 말았다. 본문 중에는 무기력에 관한 유명한 동물 실험들이 소개되어 있다. 코끼리를 어릴 때부터 큰 나무에 묶어 놓으면 다 자라서 그 나무를 뿌리뽑을만한 힘이 생긴 뒤에도 벗어나지 못한다든지, 개에게 무시로 전기 충격을 주면 일 정 횟수부터는 더 이상 저항하거나 도망가지 않는다든지, 어항의 한 가운데.. 더보기
한승태, <인간의 조건> 대단하다! 밤새 공부를 하고, 몇 시간 뒤의 출근을 위해 잠시나마 눈을 붙이려 누운 참에 문득 들어본 이 책, 그 대로 끝까지 읽었다. 읽고 나서 다시 보니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제목인데, 동명의 KBS 예능 프로그램이 근래 인기를 끌고 있는 탓 에 아쉽게도 신선해 보이지는 않는다.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아쉽다. 출판사에서 지어준 것 치고는 최근 접했던 책들 가운데 가장 괜찮은 제목이었는데. 부제는 '꽃게잡이 배에서 돼지농장까지, 대한민국 워킹 푸어 잔 혹사'. 이 제목이 출판사에서 지어준 것임은 저자가 서문을 통해 스스로 밝히고 있다. 그가 본래 의도하였던 제목은 이었다고 한다. 서양장기인 체스에서 가장 흔한 말은 폰pawn이다. 동양 장기의 졸卒에 해당하는 데, 처음 시작하는 폰의 경우에만.. 더보기
김기태/하어영, <은밀한 호황> 주간지 의 기자인 김기태와 하어영의 2012년 11월 작. 저자들은 여성가족부에서 2010년 말 서울대 여성연구소에 의뢰해 작성한 성매매 실태 조사 보고서를 언론 종사 자 가운데 최초로 입수하였다. 해당 자료는 700여 쪽에 걸쳐 45개 성매매 밀집 지역과 3만 5천여 곳의 성매매 알선 업체에 대한 현장 조사가 담긴 귀중한 것이었다. 여기에 여성가족부가 자체적으로 작성한 성 매수 실태 보 고서도 입수하였다. 의 내부 기획에서도 이 아이템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더 많았다고 한다. 의도와 관계 없이 성 매매 밀집 지역이나 성 구매의 방법에 관한 가장 효율적인 정보책이 될 수도 있는 것이고, 기사가 자칫 선정성의 시비에 휘말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기자들은 이것이 한국 사회의 깊은 컴플렉스를 조.. 더보기
강준만, <증오 상업주의> 강준만과 그의 출판벽(癖)을 알고 있는 분이라면, 이 블로그의 카테고리의 몇십 권도 안 되는 목록 에 웬 강준만 책이 그리 많냐고 타박하지는 않을 것이다. 2011년에는 여름 경 한꺼번에 나온 5권을 빼고도 6권, 2012년에는 '교양 영어 사전'이라는 사전을 포함해 6권을 출간한 바 있었던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강준만 교수의 2013년 첫 작품, . 부제는 '정치적 소통의 문화정치 학'이다. 강준만의 책은, 읽기는 즐겁고 독후감 쓰기는 괴롭다. 메세지와 논거가 명확하고 문장이 쉽기 때문에, 읽을 때에 야 편하고 즐겁지만, 독후감을 쓰자면 별볼일 없는 내 감상을 적는 것보다는 출판사의 책 소개를 옮겨 두거나 책 의 목차를 다시 정리해 두는 것이 훨씬 나은 경우가 많다. 이 책도 예외가 되기는 어려울 것.. 더보기
위르겐 슈미더, <구원 확률 높이기 프로젝트> 독일의 유명한 신문의 스포츠부 기자이자, 본인이 스스로 설정한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그 경과와 결과를 저술로 전달하는 저널리스트, 위르겐 슈미더의 최근작. 부제는 '지옥에 가기 싫은 한 남자의 요절복통 종교체험기'. 비 록 부제라고는 하나 아직도 책 제목에 '요절복통'이라는 말이 들어가는구나, 하고 좀 놀랐다. 기자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어떤 인물이나 사건을 취재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개입하거나 혹은 스스로 주 체가 되어 글을 작성하는 이런 방식을 '탐사 저널리즘', 혹은 '몰입 저널리즘'이라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독일 에서는 이것을 조롱하여 스턴트 저널리즘, 혹은 곤조 저널리즘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곤조 저널리즘의 곤조Gonzo는 우리가 흔히 '곤조가 있어야 한다'고 할 때에 쓰는 일본식 속.. 더보기
이문영, <만들어진 한국사> 外 오늘의 독후감은 메모에 가깝다. 시간을 들여 읽었더라면 충분히 흥미로운 점들을 더 발견할 수 있었을 책들이 지만, 버스를 타고 오가는 때에나 졸린 눈을 비비며 침대에 누워 잠들기 전까지의 촌음에 접했던 터라, 생각하 며 읽기가 어려웠다. 언젠가 정보가 필요할 때에 다시 찾아볼 수 있을 정도의 기록만을 옮겨둔다. 첫번째 책은 이문영의 . 이문영이라는 이름은 낯설지 몰라도, 에 관심을 갖고 있 는 사람이라면 '초록불의 잡학다식'이라는 블로그의 이름은 한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역사학과 출신이자 관련 서적을 출판해 온 저자는 위 블로그의 운영자로, 특히 한국의 상고사에 대한 일각의 주장들을 논파해 왔다. 이 책은 그 기사들을 종합하고 편집한 결과이다. 논파의 대상이 되는 주장은 저자가 명명한 이른바 '유사 사.. 더보기
김태권, <히틀러의 성공시대 1> '믿고 보는 김태권!'. 와 로 이미 유명세를 얻은 바 있는 작가의 2012년 11월 작. 원작은 토요판에 연재 중이며 1월 3일 현재에는 12월 14일에 올라온 47화가 게재되어 있다. 1권 에는 그 중 21화, 1930년 총선에서 히틀러의 나치당이 약진하는 내용까지가 실려 있다. 바야흐로 히틀러의 '성 공시대'가 시작되는 즈음이다. 작가의 책을 펼쳐들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독특한 그림체이다. 중세 유럽의 청동 판화로부터 그 대로 발전해 온 것만 같은 굵은 펜 윤곽선은 주로 일본 만화에 익숙해져 온 눈에는 몹시 낯설다. 이 낯선 느낌이 지나치면 불편함이 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 김태권의 그림체는 딱 신선함의 경계 위에 서 있는 것 같다. 그 림을 보는 것 만으로도 따로이 새로운 재.. 더보기
나영석, <어차피 레이스는 길다> MBC의 과 함께 2000년대 후반의 예능을 양분한다고까지 불리웠던 KBS 의 감독 나영석 씨(이하 나영석)의 2012년 12월 신작. 부제는 '마흔을 준비하는 100일간의 휴가'. 2001년 KBS에 입사한 나영석은 2007년 같은 KBS 예능국의 이명한 PD가 안정적으로 런칭한 새 프로그램 의 연출직을 넘겨받아 그 뒤로 5년간 동 프로그램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프로그램이 장기화됨에 따라 분위 기의 전환을 위해 2012년 2월 시즌 1을 종영하고 새 출연진을 구성하여 시즌 2가 런칭되었는데, 이 때 연출인 나영석도 함께 하차하게 된다. 스탭도 함께 참여하여 만들어간다는 의 컨셉에 주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던 감독이었기에 그의 하차 배경을 두고 시청자 일반의 아쉬움과 함께 많은 추정들이 뒤따랐는데, 그 .. 더보기
우석훈, <모피아 : 돈과 마음의 전쟁> 인기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꼽사리다'의 진행자 중 한 명인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의 신작. 이번엔 소설이다. 책의 판형이 조금 작고 두께가 적당히 두툼하여 '소설책'의 느낌이 강하게 든다. 3, 40년대 신문의 만평을 떠올 리게 하는 표지 삽화도 지나치게 세련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양장이나 금박, 아니면 거창한 문구 의 띠지가 있었다면 집어드는 마음이 좀 무거웠을 것 같다. 온라인 서평 몇 개를 살펴보니 표지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의견이 대부분이기는 하다. 메시지는 명확하다. 대한민국의 명운을 실제로 손에 쥔 것은 국회의원도 대통령도 대기업 총수도 아닌, 옛 재경 부 출신의 모피아(MOFIA)들이다. 그들은 거미줄같은 인맥과 거대한 국제 자본을 등에 업고 오직 자신의 이해 관 .. 더보기
김기협, <해방일기 1> 공부를 하다 보면 딱히 대학원에서의 주전공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더라도 반드시 공부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분야가 있다. 최근의 몇 년 간 나는 주로 그런 분야의 책들을 읽는 데에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데, 하나하나 씩을 리스트에서 지워 나가는 동안 끝내 도전하지 못하고 남아있는 주제들이 몇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해방 직 후의 한국사이다. 식민지 시기는 전공인 한국 한문학에서도 어느 정도의 연구들이 진척되어 있어 전공 공부의 일환으로 접할 수 있었고, 6.25부터는 한국 현대 소설을 강의할 때 작품과 연계하여 설명하면서 스스로 다시 한 번 정리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해방 전후부터 6.25까지는 무슨 책으로 첫걸음을 떼어야 할지 몰라 차일피일 미루던 차에, 우연한 기회를 만나 추천받았다. 사학자.. 더보기
지승호/이상호, <이상호 GO발뉴스>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 씨의 11월 작. 저자는 2012년에 네 권을 출간하였는데, 출간 순으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 다. 오슬로 대학 한국학 교수 박노자를 인터뷰한 , 영화감독 양익준을 인터뷰한 와 를 다른 한 묶음으로 가를 수 있을 것 같다. 모두 인터뷰집이긴 하지만, 전자는 탈자본주의와 서울시장선거라는 '이슈'에 보다 초점이 맞춰져 있고, 후자는 영화인 양익준과 기자 이 상호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인터뷰가 이뤄지고 있다. 전자는 깊어서 좋고, 후자는 넓어서 좋다. 책은 총 4장으로 나뉜다. 1장 '요즘 기자로 산다는 건'은 현재 이상호과 관심을 갖고 취재하는 사건, 그리고 만나 는 사람들에 관한 내용이다. 2장 '워스트 5 & 베스트 10+α'는 제목 그대로 이상호가 스스로 뽑은 기자 인생 최고 의 .. 더보기
지승호/박노자, <좌파하라> 열흘 상간에 지승호 씨의 책을 네 권이나 읽게 됐다. 예약의 타이밍과 '도서관의 천사'가 겹쳐 일어난 우연일 수 도 있지만, 한 해에 책을 네 권씩 내는 저자의 왕성한 활동 덕일 수도 있다. 아무튼 그런 저자의 4월 작. 부제는 를 읽기 전에 읽었던 저자의 다른 책은 양익준 감독과의 인터뷰집인 에서 지승호는 인터뷰어라기보다는 양익준의 팬이거나 친구에 가깝다. 여기에는 인터뷰가 이루어지던 시점에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모두 정신적인 공황 상태를 겪고 있었고 마침 서로가 서로에 게 어느 정도 위안이 되어주었다는 점, 성장 환경과 그로부터 발원한 정신 세계에 유사한 특성을 갖고 있다는 점 등이 주요했을 것이다. 문자로 정리되어 있기는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술이 익는지 밤이 익는지 모르고 정다운 대화를 주고받는 .. 더보기
최장집,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몇 달 전의 일이다. 지인과의 대화 중에 '교사는 노동자인가'라는 새로운 화제가 나왔다. 나는 '당연하다'라고 답 을 했는데, 신성한 교육의 행위를 어떻게 노동으로 볼 수 있느냐는 반응을 받았다. 시간 되면 출근하고 업무가 안 끝나면 야근을 하고 몸이 아프면 휴가를 내고, 그 노력의 대가로 월급을 받는 것이 노동이 아니고 무엇이냐, 는 요지의 의견을 펴 보았지만 설득은 성공하지 못했다. 교육을 신성한 행위로 간주하고 교사를 노동자 이상의 무엇으로 숭앙하는 것이 일견 교사의 사회적 위치를 높이는 것 같지만, 사실은 교사가 노동자로서 간취해야 할 당연한 권리들을 주장하는 데에 더 방해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는 주장도 먹히지 않았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화의 끝에 나는 아마도 빨갱이 취급을 받았던.. 더보기
우석훈, <시민의 정부 시민의 경제> '우띨' 우석훈 씨의 2012년 10월 신작. 본래는 전 독후감인 편의 끝부분에서 시민단체에 관 해 언급하며 이어서 이 독후감을 쓸 작정이었는데, 쓰다 보니 내용이 길어져서 권 별로 나눈다. 함께 엮어 생각 하면 더 재미있는 독서를 할 수 있으니 이 책을 읽을 분은 와 같이 읽으시면 좋겠다. '정치'의 참여자를 그 참여도에 따라 선 상에 배열해 보면, 맨 아래에는 정치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 투표도 하 지 않는 유권자가 있을 것이고, 맨 위의 정점에는 공당의 당직자와 국회의원들이 포진해 있을 것이다. 87년 체제 가 이루어진 이후, 우리 중 다수는 아주 오랫동안 그 사이에 누가 있는지를 고민해 보지 않았다. 마음에 맞는 대 통령 하나와 국회의원들을 뽑아 놓으면 그들이 말했던 대로, 혹은 그들이 행해줄 .. 더보기
지승호 外, <시민은 현명하다> 박원순 씨가 서울 시장 보궐 선거에서 당선된지 1년하고도 한 달 여가 지났다. 트위터와 진보 성향 언론을 통해 간간히 전해지는 시정을 살펴보면, '박 변'이자 '우리의 원순 씨'였던 행정의 달인으로서의 그의 면모는 대체로 잘 발휘되고 있는 것 같다. 커다란 공사나 알맹이 없는 구호로 지면을 장식하기보다는 협동 조합이나 도서관 등 과 같이 시민의 삶과 직접 맞닿아 있는 곳에서의 성과를 쌓아나가고 있는 듯 하다. 그의 행정을 평가하는 데 있어 이렇게 좋은 소식을 전해듣는 것도 하나의 참고할 점이지만, 나는 오히려 나쁜 소 식이 전해지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참고점이라고 생각한다. 이 독후감을 쓰고 있는 시점은 2012년 11월 21일 의 새벽으로, 18대 대선의 야권 단일화 후보로 무소속 안철수 후보와 민주.. 더보기
김종배, <삼십대 정치학> MBC 라디오 프로그램 에서 11년간 '뉴스 브리핑' 코너를 진행하다가 이 정권 하에서 퇴출 당하고 현재는 인기 팟캐스트 를 매일 진행하고 있는 시사평론가 김종배 씨의 9월 신작. 일찌감치 예약을 걸어두었는데도 몇 바퀴나 돌아 11월 중순인 이제에야 손에 떨어졌다. 바로 전의 저작인 의 경우 예약을 하지 않고도 바로 서가에서 빌릴 수 있었던 것을 떠올려 보면 적어도 연 대 도서관 사용자들에게 있어 이 주제가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었던 것을 추론해 볼 수 있다. 위의 사진에서 표지를 두껍게 가린 띠지를 벗겨내고 나면, 정장을 입은 채 백팩을 메고 있는 젊은 남자의 사진이 나온다. 짧게 잘라 세운 머리, 몸에 다소 밀착되어 있는 느낌을 주는 정장, 그리고 언뜻 정장과는 잘 매치되지 않 는 백팩. 모두 30대 .. 더보기
한만수, <잠시 검열이 있겠습니다> 재미있어 보이긴 하는데 책 읽을 시간은 많지 않아 어쩔까 고민하다가, 출판사인 개마고원의 이름을 보고 집어 들었다. 결과는 절반의 성공. 부제인 '먹칠과 가위질 100년의 사회사'와, 책날개에 소개된, 꾸준히 검열에 관한 논문을 집필해 온 국문학도로 서의 저자의 이력을 보고 식민지 시대나 박정희 시대의 검열에 관한 문화사가 아닐까 생각했던 것이 본래의 기 대였다. 하지만 이 책에서 논쟁적으로 언급되는 검열의 역사는 주로 이명박 정권 하에서 일어난 일들에 집중되 어 있고, 이따금 등장하는 식민지 시대의 사건이나 혹은 유럽에서의 사건 등도 이명박 정권 하에서의 사건과 연 계되는 수준에서 등장한다. 말하자면 '100년의 사회사'라는 부제는 읽는 사람으로서도 좀 낯부끄럽다. 아울러 40여개에 달하는 꼭지들 중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