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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8

THE 有頂天 ホテル






'라디오의 시간' 극화 작업 중 함께 보았던 미타니 코키의 2006년 작. 전작들과 달리 영화를 위해 쓰

여진 시나리오이지만, 감독이 즐겨 사용하는 연극적 밀실공간과 수십개의 복선이 얽힌 캐릭터 관계

까지 이른바 '미타니 코키 테이스트'를 마음껏 맛볼 수 있다.


두명의 주연이 모든 이야기를 이끌어 나갔던 '웃음의 대학'과는 비교할 수도 없고, 주요 배역이 열명

이 넘었던 '라디오의 시간'에서도 전개에 책임이 있는 배역은 서넛 정도로 좁힐 수 있었지만 '우쵸

우텐 호텔'은 표면상 야쿠쇼 코지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실은 여남은 개의 관계들로 이루어진 일

종의 옴니버스 영화이다. 명백히 '라디오의 시간'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작은 역

할일지라도 반드시 다른 모든 배역들과의 관계와 자신만의 이야기를 부여하는 이런 장치에 대해 감

독이 따로이 언급을 한 바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극화를 위해 수십번 영화를 보고 연출을 위해

수백번 극본을 읽었던 나로서는 -한명의 극작가이자 연출로서 나 자신이 왜 이런 장치를 사용하는지

에 대해 고민해야 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바도 적지 않지만- 이 것이 인간에 대한 관심과

관계에 대한 애정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라디오의 시간'에서는 '꿈과 현실', 그리고 '우쵸우텐 호텔'에서는 -미약하지만- '호텔이란 무엇인

가'라는 표면적인 주제가 있지만, 그 이면에 작가이자 감독으로서의 미타니 코키가 일관되게 잡고

있는 주제가 바로 이 휴머니즘이라고 여기며 나 스스로가 주요하게 생각하는 '하고 싶은 이야기'이자

'해야 하는 이야기'인 탓에 취지에 크게 공감한다. 이 이야기는 언젠가 따로이 하도록 하자.


다만 '산만하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라디오의 시간'만 해도, 나는 이것이 이야기가 취할 수 있

는 한 이상향이라고 여길 정도였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잡스럽다는 평도 있었는데, '우쵸우텐 호텔'

은 작가-감독의 팬인 나로서도 집중해서 보기가 어려웠다. 일본에서는 4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

다고 하니, 이것은 한국인 특유의 서사강박증인지 어떤지, 아무튼 탐구대상이다. 영화나 연극을 보고

는 '그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데?'라는 질문을 항상 하는 사람에게는 이 작품을 그다지 추천

하고 싶지 않다.


'웃음의 대학'에 이어 다시 미타니 코키의 작품에 호의를 보인 야쿠쇼 코지는 자신이 맡은 캐릭터에

게 가장 중요하게 요구되는 '중심감'을 충실히 수행하면서도 예의 입체적인 연기술을 발휘한다.

특히 장면전환을 통해 바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한 장면 내에서 일화와 일화들이

연결되는 순간에는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만큼 야쿠쇼 코지의 노련한 연기가 있다. 한 컷 내에

서 전혀 연관이 없는 감정의 흐름을 순식간에 변화시켜야 하는데, 야쿠쇼 코지는 지금 이야기가 변하

고 있다는 사실을 관객이 눈치챌 수 없게 한다. 원래 이야기가 성긴 부분을 야쿠쇼 코지가 채웠는지,

아니면 그가 채워줄 것이라고 생각한 감독이 더 많은 이야기들을 엮은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러한

부분에서는 배우가 작품 내에서 얼마나 많은 역할을 차지하는가에 대해 새삼 느끼게 된다.

오다기리 죠가 소심남으로 나오고, 곧 시집을 간다는 마츠 다카코도 나오지만 일본의 연예계 사정에

썩 밝지 못 한 나로서는 그다지 큰 감흥을 받지 못 했다. 오히려 즐거웠던 것은 '라디오의 시간'에 출

연했던 배우들이 거의 정반대의 성격을 갖는 역할들을 맡아 호연을 펼쳤던 것. 이른바 '사단'을 보는

재미란 이런 것이다.


음악도 좋았다. 나는 아직도 가끔씩 실제 연극에도 쓰였던 '라디오의 시간' OST를 혼자 들으며

눈물짓곤 하는데, '우쵸우텐 호텔'의 음악은 이런 음악을 자신의 작품에 쓸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미타니 코키가 부러워 죽을만한 것들 일색이었다. 막연하고도 무식하게 '재즈'라고 통칭해 부르는

장르에 무한한 경배를 보내는 나로서는 정말 오로지 이 앨범을 구하러 일본에 가고 싶어질 정도의

음악들이 많았다. (이후 일본에 가는 사람에게 진짜로 부탁할 생각이다.)


결말은, 내용은 적지 않겠지만, 전체적으로 다소간 집중도가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눈물이 왈칵

나는 것이었다. 행복해서 웃고도 싶고, 감동해서 울고도 싶은 이 어쩔 줄 모르는 기분은, 스스로의

생각과 기분을 빨리 결정하고 합리화하는 나로서는 좀처럼 누리기 어려운 것이어서 한층 감흥이

더했다. 여러분도 보고 그렇다면, 꼭 나에게 말해 주시라. 그렇다면 나는 스스로 감동하며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한 이상점을 찾아낸 것이다.


아무튼, 언젠가 돈 많이 생기면 DVD 구입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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