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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8

코미디언 곽현화 양 논란

얼마 전 KBS의 개그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인기코너 '키컸으면'에서 춤을 추며 선정적인 장면을

연출하여 도중하차당했던 코미디언 곽현화 양이 이번엔 같은 방송사의 '폭소클럽 2' 란 프로그램에

서 노출이 과한 옷을 입어 구설수에 올랐다고 한다.  (이 부분은 확실치 않은데, '노출이 심한 옷'

을 문제삼는 기사도 있었고 '부분적인 유두노출'을 문제삼는 기사도 있었다.)


마침 재방송을 주로 하는 채널에서 해당 프로를 방영해 주길래 그 코너를 처음부터 끝까지 봤다. 성

적 호기심이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이지만, 논란의 중심인물이 된 곽현화양에 대해서는 지난번 '키컸

으면' 사건 때 워낙 주위의 평가가 엇갈렸던 터라 (주관적인) 평가를 유보했었기 때문에 궁금증이 풀

릴 좋은 기회라고 여기는 마음이 더 컸다.

당시 주위에서는 연습기간이 1주일인데 선정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을 몰랐겠냐, 공영방송에서

있을 수 없는 악질, 저질 홍보수단이다, 라는 의견도 있었고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생각할 수 있

는 장면인데 일부 언론이 지나치게 과장하여 전달하는 바람에 신인 코미디언이 묻혔다, 는 의견도

있었다. 마침 집에서 문제의 '키컸으면' 방송을 보았던 나는 어느 정도 전자에 동의하는 입장이었지

만 확실히 알 수는 없는 일이라 혹여 주위에서 토론이 벌어지더라도 입 다물고 있었던 것이다. 여하

튼 그래서, 이번에 논란이 된 방송을 끝까지 봤다.


캡쳐한 사진등이 아니라 실제 TV로 보면 유두가 노출됐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복장이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기준보다는 확실히 과하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했다.


이 사건에 대해 곽현화 양 본인은 '프로그램의 내용 중 마술을 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무척 어려운

기술이었기 때문에 노출이 더 심해지는 것까지 신경쓸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지난 번

대중의 발레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가슴노출 사진을 했다는 어떤 발레리나의 말만큼이나 어처

구니가 없었다. 곽 양의 발언만으로는 마치 그녀가 천만분의 일로 일어나는 불운의 주인공이 된 것

처럼 여겨지는데, 실제 그녀가 입고 나왔던 의상은 입고 가만히 서 있을 때 이미 가슴의 반 이상을

노출시키는 것이었다. 유두가 노출되었다 하더라도 '불의의 사고'라고는 부를 수 없었던 것이다.

설마 스스로 유두를 노출하면서까지 홍보를 하려 했을까, 라는 동정적 의견을 수용하고, 백보 양보

하여 '섹시한 여인 대 못생긴 여인'의 전통적 코미디 권력관계를 보다 효율적으로 연출하기 위한 장

치였다고 보아준다 하더라도 처음부터 그 자체로 논쟁이 될만한 수위의 노출임은 누구나 알 수 있었

다는 것이다. 애당초 입었던 옷 자체가 문제가 있었던 것인데, '마술을 하느라 신경을 못 써서'라는

것은 본질적인 인과관계 자체를 인식하지 못 하는 수준 이하의 발언이거나 쟁점이 될 만한 부분을 피

해 가는 비겁한 발언이다.

게다가 문제의 곽 양은 이미 한차례 선정적 이미지와 관련하여 징계를 받은 상태였다. 십년이고 이십

년이고 자숙할 필요는 없지만, 이전의 아무도 도전하지 않았던 노출 수위까지 일부러 시도할 필요는

더더욱 없지 않았을까. 아니면, 차라리 떳떳하게 '유두가 노출된 데에 대해서는 죄송하게 생각한다.

섹시한 이미지가 필요한 코너였고 열심히 하다 보니 일어난 사고였다. 앞으로는 조심하면서 시청자

여러분을 더 웃겨드리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식으로 말했다면 그것 참 뻔뻔하구나, 싶으면서도 자신

의 의견을 분명히 밝힐 줄 아는 코미디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곽 양을 비판하는 목소리들에도 문제는 많이 있었다.

먼저, - 유일하게 다소간 공감하는 의견이긴 하지만- '공영방송에서 감히!'라는 의견이 있었다. 나도

사실 그 코너를 보며 썩 편안한 기분은 아니었지만, 첫째로 '폭소클럽 2'라는 프로그램이 '개그콘서

트'와 달리 심야에 방송되며 애당초 성인시청자를 대상으로 한 방송이라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공영방송'이라는 언급에도 문제는 있어 보인다. 시청률에는 차이가 있지만, 이미

대부분의 가정에 케이블 방송이 보급되어 있고 거기에서 각종 선정적-위해적 프로그램들을 대낮과

심야의 구분 없이 무차별적으로 쏘아보내는 판에 굳이 KBS만 매도당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정말 사족이지만, 근래 자동차 학원에서나 운전면허시험장에서 등 원치 않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 일

이 많아 화제의 소개팅 프로그램이나 불륜재연 프로그램등을 시청할 기회가 종종 있었는데, 나는 진

심으로 그 프로그램들이 사회에 위해를 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비판의 잣대가 되는 '공영방송'으로서의 위치에, KBS는 과연 합당한 방송인가? 이때의 '공영

방송'이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방송이라는 제도상의 의미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건전한 가치를

실현하는 방송이라는 개념적 의미로 쓰인 것이라면, 나는 KBS가 공영방송이라는 언급에 동의할 수

없다. KBS의 일련의 프로그램들이 보여주고 있는 선정적 작태와 줏대없는 정치의식은, 그저 '방송'일

뿐이라면 폭력과 포르노의 잡탕인 개중의 우위에 놓아줄만 하지만 '공영방송'이라는 칭호에는 턱없

이 모자란다. 요컨대, '공영방송에서 감히!'라는 언급은 나올 주제가 안 된다는 것이다.


두번째로 이상한 것은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않고 그저 선정성 위주로 표제와 내용을 재단질하는

인터넷 언론이다. 곽현화 양 사건을 다루는 수십 건의 인터넷 기사는 대부분 친절하게도 선명한 화

면 캡쳐 사진과 함께 단순히 '곽현화가 언제 어디서 가슴을 드러내어서 물의가 있었다더라'는 짤막

한 언급이 따라붙는 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공식기사는 아니지만, 베스트 조회수를 기록하는 한 블로

그의 기사는 아무런 내용도 없이 그저 '곽현화 동영상 보러가기' 단 한 줄의 링크만 띄워져 있다.

낚시성이 아니라 진짜 곽현화 동영상을 링크했기 때문이라는 게 베스트 조회수의 이유였다.

요컨대, 공중파인 KBS에서 가슴 큰 연예인이 많이 벗고 나왔다더라, 보러 가자, 라는 것이다. 목적

은 오로지 성욕의 자극과 그를 통해 이어지는 자사, 자기 블로그에의 접근성 증대뿐이다. 글자를

통한 자위행위나 다름없는 글을 쓴 그 손으로, 도덕군자인양 평가를 달았다면 더 꼴사나왔을테니

차라리 다행이랄까.

혹여 가뭄에 콩 나듯 비판이 있더라도, 앞서 나왔던 '공영방송에서-'나 '코미디언이-'따위의, 스스

로 어떠한 논증도 할 수 없는 기준들을 들고 있다. 심지어 정말 어처구니없게도, '이대 나왔으면서-'

도 있다. 이대를 나왔으니, 그만한 지각은 있어야 한다는 것인가? 이대를 나오지 않았다면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이었던 것인가? 아니 애당초, 코미디언과 이대 출신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결국 더욱

선정성을 부각시키는 도구로 쓰였을 뿐이다. 그 입으로 점잖은 척 비판을 하고 있으니, 보고 있으면

기가 차는 것이다.


본인의 해명을 분석하고 논평한 기사는 없었다. 당연히 출연자들을 관리하는 제작진에 대한 비판도

없었다. 데뷔한지 몇년도 되지 않은, 이미 한차례 물의를 일으켰는데도 또 다시 논쟁거리가 될 만한

의상을 입고 출연한 연기자, 그를 제지하지 않은 제작진, 이들은 도대체 '방송'을 무엇이라 생각했

길래 이런 일들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의문도, 나아가 과연 오늘날 방송이 행하는 역할과 문제는 무엇

인가에 대한 의문도 없다. 있는 것은 오로지 곽현화의 유두를 향해 쏘아지는 수천 수만번의 사정들

뿐이다.


백화점이 주저앉은 것도 아니고 다리가 무너진 것도 아닌데 곽현화 양의 이 사건은 며칠째 동영상을

통해 유명 포털을 달구고 달궜다. 오늘 마침내 네이버 인기 검색어에는 곽현화 끝, 혹은 곽현화 매

장 등의 주제어가 올라왔다. 나는 푹하고 웃음이 나왔다. 곽현화를 매장시키는 것은 누구인가.

곽현화의 유두를 충실히도 보여 준 언론인가. 생각없는 댓글로 무수히도 사정을 해 댄 네티즌인가.

그도 아니면 KBS를 공영방송이라고 생각하는 꼰대들인가. 그들 중 누가 무슨 권리로 곽현화를 매

장시킨단 말인가.


'곽현화 끝'이 맞았나, '곽현화 매장'이 맞았나를 다시 확인해 보기 위해 몇시간 만에 네이버 검색어

를 다시 찾아본 나는 할 말을 잃었다. 1월 12일 22시 현재 네이버 인기검색어 1위는 로또 267회,

나머지는 양녕과 효령, 충녕이 점령했다. 결국 이런 것이다. 곽현화와 곽현화의 유두는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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