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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5

칠백하나

우월감은 열등감의 이면이다. 초중교 간부수련회에서, 고교 성적게시판의 상위에서, 대학 술자리의

선봉에서, 나는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강렬한 태양은 더 짙은 그림자를 만들기 마련이다.


그리 운이 좋은 삶을 살아 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부모님을 만났고 어쨌든

원했던 대학에 진학했으며 이날 이때껏 죽을 병 한 번 걸린 적 없이 무사히 살아 왔지만, 성자처럼

아래만을 바라보며 만족하는 기준이 아니라 '보통 사람'의 기준으로 생각하기에, 크게 운이 좋은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머니의 신앙을 온몸으로 부정하던 때가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매일같이 읽고 성당이라

는 건물에 매주 가느냐 안 가느냐로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초월적 대상에게 인정받는지를 판결받

는다는 건 언어도단의 자기만족일 뿐이라고. 혀의 칼날은 되지도 않는 미션스쿨에 진학해서 출석이

반도 안 되는 기독교 수업을 듣고 나서 한층 더 신랄해졌다.


전혀 부연설명이 없는 한마디였지만, 고교 시절 열심히도 다녔던 한 단과학원의 수학선생님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싸인과 코싸인을 커피니 싸이코니 하는 말도 안 되는 단어로 설명하다

가, 탄젠트가 나왔을 때에 문득 그 선생님은 갑작스레 진지한 얼굴로 '탄젠트는, 인생이지'라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타이밍에 교실에는 계속해서 성공하지 못 하던 폭소가 터졌지만, 나는 웃지

않았다.


기복, 일 것이다. 지금의 내 생각이 언젠가 바뀔 것이고, 운도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라 생각한다.

인생은 탄젠트인 것이다.



논리를 앞세워 말할 때에 눈물이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진심은, 전해지리라 믿는다.



그저, 믿는 것이다. 믿는 것밖에 할 수 없었던 어머니, 그렇지만 나에게는 아직 사랑하는 구원이 있

기에 온전한 어른이 되었다 할 수는 없겠다.  




다시 한 번,

진실의 힘을,

눈물의 힘을,

....사람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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