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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4

충성.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지난번 일기를 휙하니 뿌려놓고 도망간지 벌써 7주가 지났다. 누군가가 7주간 여행을 다녀온다고 연

락을 해 왔더라면, 나는 아마도 부산스러운 짓을 한다고 핀잔을 줬을 것이다. 그정도는 아는 나이였

지만, 나의 7주, 그것도 고단한 7주마저 이렇게 빨리 지나버릴 줄은 몰랐다. 이경이 되기 전에 받는

7주간의 훈련과정, 그 가운데에서 다른 기억들을 압도적으로 누르고 오로지 단 하나 생생하게 기억

나는 것은 입대날 아침뿐이다. 시간상으로는 가장 오래 되었고, 별달리 기억할 이벤트가 있었던 것

도 아니었던 그 아침만이 커다란 노력없이 떠올릴 수 있는 단 하나의 기억이라는 건 우습거나 서글

픈 일이다.


4주간 논산에서 훈련을 마치고 이곳 충주의 중앙경찰학교로 옮겨온지 19일째. 모레면 나는 인천 어딘

가의 경찰서에 배치받아 이경으로서 제대로 된 군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지금은 훈련기간중의 거의

마지막 수업인 정보검색 시간. 배치지와 보직을 결정하는 시험을 어제 끝낸 탓에 짧은 과제 뒤에 자

유시간을 준 틈을 타 이 곳에 다시 온 것이다. 그간의 이야기는 곧 소설로 출판하여 절찬리에 판매

예정이니 다같이 기쁜 마음으로 기다려 보도록 하자.


긴, 아주 긴 이야기를 적고 싶었다. 자서전같기도 하고 소설같기도 한, 그러나 처음과 끝은 확실히

정해져 있는 어떤 이야기를 적고 싶었다. 몇번째 문단은 무슨 단어로 시작해야지까지 수십번의 불

침번을 서면서 생각했지만, 막상 이곳에 다시 돌아와 나를 내려다 보니, 기름때가 끼고 까매진 손과

근 몇 년동안 입지 않았던 내복 말고는 지난번의 일기를 적던 나와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어 새삼스

럽다 싶어 쑥스럽게 씩 웃고 넘어간다. 곧 최이경의 경찰 일기가 시작되니 모두들 기대해 주시라.


덧붙여. 농담이라 생각했겠지. 내 동기와 앞기수의 선임들이 사이버수사대로 발령 났다. 그간의

만행은 눈감아주겠지만 앞으로 음란사이트의 소개글을, 그것도 건방지고 어이없게도 방명록도 아닌

일기장에 올리는 놈들은 대한민국 행자부의 따끔한 맛을 보여주마. 아니, 너희가 왜 내 일기는 대신

쓰고 지, -아니지, 난 국방부가 아니라 행자부, 우리 행자부는 욕을 쓰지 않는다. 언제나 친절한

국민여러분의 행자부.- , 난리야. 착하게 좀 살아라 이놈들아. 혹여 내 군생활이 무사히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간의 게시물들을 지울 수 있게 비밀번호까지 가르쳐 주는 축복을 보내 준다면

이것도 인연으로 생각하고 나도 너희의 앞날을 위해 기도 한번 하겠다.


내일과 모레, 걸어가다 말고 날벼락에 맞아 죽지 않는다면, 이렇게, 최대호 무사히 귀환하다.

충성. 여러분,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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