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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4

총선후감

총선이 끝났다. 수치로서 나온 결과들을 가지고 여러가지 분석들이 난무하고 있는데, 그 중간에서

마음에 드는 것과 사리에 맞는 것과의 차이를 가늠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정말로 여러가지 분석을 읽었다. 조선일보도, 오마이뉴스도 읽었다. (이렇게 병렬하는 것 자체가 나

의 사상을 밝히는 것이 아닐까 싶어 저어하였지만, 그렇게 보인다는 것 또한 나의 사상을 정당

화시켜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여 일단 그대로 쓴다.)


올바른 이야기를 수용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나의 의견인양 다시 쓰는 것은 도덕적인가 아닌

가의 문제를 떠나 인터넷강국인 이 땅에서 별로 효율적인 일은 되지 못 할 것 같다.


다만, 읽었던 기사중에 문득 하나의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있어 굳이 짚고 넘어간다.


나는 정형근과 이철의 '빅매치'를 함부로 말할 수 없다. 두사람에 대해 아는 것은 사형수와 공안검

사라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 이후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떠한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어떠

한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웠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것이 없다. (모르기 때문에 이정도 강도로밖

에는 글을 쓸 수 없는 신세가 답답하다.) 사형수였으니까 그 이후로 마이너리티의 입장을 대변하며

깨끗이 살아왔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정동영이네 당이 되면 김정일이랑 손잡고 경상도에 쳐들

어와서 노인들을 총으로 쏴 죽일거라고 생각하는 것과 한치의 차이도 없다 할 것이다.


다만 과거를 알고도 왜 정형근을 찍으셨죠, 라는 질문에 대한 60-70대 투표자들의 대답중 눈길을

떼지 못하게 있었던 것이 있었다.

'다 지난 얘긴데 뭐...'

어쩌면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중에도 그 당시에는 분노하던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소식을

전해듣고 혀 한번쯤은 쯧, 하고 찼던 사람도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과거에 어떤 행동을

하였든, 현재에서 그러한 발언을 하는 사람에게 정치적으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

고 투표권을 주는 것에 대해 나는 찬성할 수 없다.

국민이면 누구나 투표권을 갖는 것이고 그것은 법에 명시되어 있는 것이다, 라고. 또한 이 사례처럼

그 사리가 분명한 일이면 모를까 판단기준이 애매한 때에는 어떤 기준을 사용할 것인가라는 질문도

있을 수 있겠지. 거기에 대해 더 저명하신 분들의 반박이 있을까 두려워 조용조용히 말하는 중이지

만, 적어도 이 경우에 한해서, 나는 도저히, 이들을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람들이라 생각할 수 없다.

발언 자체로서도 대단히 위험하고 몰상식적이지만, 발언의 주체 또한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으로서 어쩔 수 없는 자조인지도 모른다. 술한잔을 걸치며

부끄러이 내뱉는 말이라면, 나는 가해자이며 동시에 어느정도 피해자이기도 했던 그들의 어깨를

툭툭 쳐 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투표권이라는 권력으로 작용하여 새시대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데에는 잘못되었다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제 다시 탄핵을 이야기해야 할 때이다. 탄핵을 말했던 사람들은 입으로 사죄했지만 손으

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다면, 언젠가 우리가 나이가 들어, 정말 용서

해줄 만한 과오가 있는 사람을 용서하고서도 우리의 후배들에게 당신들이 과연 누구를 용서할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냐는 질문을 받아도 할말이 없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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