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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4

지금의, '생각'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안이 가결되었다.


아.

아.


뭐라고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바로 이 일기에 내가 정치인으로서의 노무현을 지지하게 되고

결국 대통령 선거에서 한표를 던지기까지의 과정들이 쓰여 있는데, 같은 공간에 이런 글을 쓰게

되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그리고 슬프다. 가슴을 누군가가 꽉 내리누르는 듯한 느낌이다.

내 손으로 뽑은 나의 대통령이 기득권을 수호하려는 꼰대들의 더러운 합작으로 탄핵을 당했다.


나는 비록 전두환 치세에 태어나 노태우의 취임을 바라보며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김영삼이 TV 쇼프

로에서 인기 1위를 하는 시대에 중학교를 다녔지만, 비록 그런 대한민국에서 자라났지만, 내가

정치라는 것을 알게 되었던 때는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던 때였고 광주가 노무현을 선택했

던 시대였다.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나의 평가가 긍정적이라는 것에 대해 반감을 가지실 분이 내

주위에도 있을 것으로 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 후보자의 당선은, 그의 이후의 치세가 대한민국

에 미친 영향이 긍정적이었나 부정적이었나를 떠나서 그 당선이라는 사실 자체가 우리 역사가 지

켜보고 넘어가야 할 과제였다. 그는 개인으로서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로서 당선

된 것이다. 사람은 언제나 대화와 타협에 열려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 후보자의 당선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에 대해 나는 대화를 나눌만한 이성적인 사람이라는 평가를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이성과 합리가 통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믿었다.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전두환이 9200억원을 해 처먹었다는 것을 소리높여, 떳떳하게 비판할 수 있는 국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평생을 해 나아갈, 나의 생활으로서의 정치가, 그 시작인 나의 20대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의 시대라니. 나의 후배가, 나의 아들이, 나의 손자가 이 시대를 물어오면 나는 무엇이

라 해야 하는가. 스스로도 부끄러운 시대를 살았으면서 어찌 다른 시대를 비판할 수 있겠는가.  


나는 법을 모른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법에 의거해'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을 제출하였다. 박관용

국회의장은 '법에 의거해' 경호권을 발동하여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내쫒았고 '법에 의거해' 찬성

193표, 반대 2표로 탄핵안이 가결되었음을 선포하였다. 이 모든 사태들을 움직이며 개나소나에게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시켜 줄 권위로 쓰이는 그 법. 그러나 나는 법이 인간의 윤리와 상식으로

이해될 수 있어야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잘 알 수 있다. 법이란 약속이므로 그 구성원에게 이해

될 수 없는 법이란 이미 법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법을 모르는 나는, 나의 윤리와 상식으로

보건대, 작금의 사태에 대해 분노하는 자신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백보 양보해서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을 받을 만한 짓을 했다치자. 그렇다 해도 16대 국회, 그 중에서

도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감히 탄핵을 말할 수 있는가. 그것도 감히 국민의 입을 빌어서. 감히 국민의

이름을 빌어서. 냉정하게 글을 쓰고자 애쓰고 있지만, 나는 논리적으로 생각하기에도 이 표현에 느낌

표를 붙이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감히 국민의 이름을 빌어서!


초등학생도 안다. 제대로 가정교육만 받고 자라난 아이라면 유치원생도 알 노릇인 것이다. 훨씬 더

큰 잘못을 저지른 놈들이 옆에 있는 친구가 잘못을 했다고 선생님한테 이르면 안 되는 것이다.

그것도 다른 친구들도 다 그렇게 생각한다는 명분까지 붙이면 안 되는 것이다. 사람으로서, 사람으

로서의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이래서는 안 되는 것이다.


조선일보를 읽고 있는 사람이라도 알 수 있다. 아무리 조선일보라도 조금만 생각해 보면서 읽고

있으면 알 수 있다. 700억대 0원이면 검찰이 편파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말하기 전에 국민한

테 사과부터 하는 것이 먼저다. 부정선거비용이 우리가 쓴 것의 10분의 1을 넘었으니 했던 말대로 물

러나라라고 말하는 그들을 보라. 그러고도 감히 국민의 이름을 거론하는 그 얼굴을 보라. 그것은

이미 역사의 심판이 두려운 얼굴이 아니다. 충심으로 국민의 공복이라 생각하는 얼굴이 아니다.


민주당 조순형 대표는 인터뷰에서 찬성표를 던진 193인은 구국의 결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한나라

당 최병렬 대표는 국민의 뜻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민의 뜻'이 '나라를 구한' 셈이다. 2004년

3월 12일 금요일, 우리 국민이 나라를 구했다.



나는 글을 쓰고 있던 중 노무현 대통령의 인터뷰를 보았다. 그는 점퍼를 입고 지방의 기업들을

순찰 중이었다. 계속 웃음을 지으려 하는 그의 모습에서 지난 대선때 민주당 후보로서의 그의 모습

이 떠올라 나는 어쩐지 눈물이 났다. 이것은 감정적인 표현이라 오히려 이 글의 신용을 잃게 할지

모른다. 그러나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상식'이면 된다. '상식'이면! 최첨단 테크놀러지에 대한

지식이나 엄청난 법률적 지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 사회를 살아가는 평범한 구성원으로서의,

정치적이거나 학문적이지도 않은, 그저 '상식'이면 되는 것이다!- 이 사태에 대해 눈물이 날 것

같은 이 심정을 감정적인 대응이라 비판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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