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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8

잡상雜想

쇠고기 수입과, 그에 관련된 집회 문제로 연일 좌중이 시끄럽다. 도대체 이 일기에 ‘더 이상의 충격

은 없을 줄 알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써야 하는 것인가, 이 정국은. 와중에 박통의 딸은 아직도 복당

復黨이니 어쩌니 말같지 않은 소리를 해대고. BBK도 잊혀지고, 삼성특검도 잊혀지고.


조중동이 인포information도 아니고 팩트fact를 가지고 장난질 해대는 짓거리야 복장이 터지면서도

수십 번 봐 온 꼴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불리하다 싶으면 꺼내드는 색깔론 얘기에는 정말 눈에 불이

난다.

촛불집회에 모인 사람들 중에 조직적으로 행동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은 사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행사나 집회의 운영에 참가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천 명이 넘는 집단이 도심

의 한복판에서 잘 프린팅된 피켓을 각자 준비해 든 채 우연처럼 같은 사이즈의 촛불을 들고 지휘자

한 명 없이도 사고 없이 모임을 끝마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배후세력으로 지목된 단체

들이 조중동 및 꼰대들의 눈에 기왕부터 점찍혀 있던 ‘불순분자’들인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이른바 ‘보수층’들이 이 집회에 참여한 10대와 20대의 국민들을, 재향군인회나 보수총연합회

따위의 집단에 의해 탑골공원에 앉아 있다 말고 봉투 한 장씩 받고는 머릿수 맞추러 애국궐기회 등에

나와 있는 노인네들과 똑같이 인식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그들에게는 ‘국민’이라는 집단이 자발적으

로 정치적 의사를 표출한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장 어처구니 없어 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꼰대들이 지목한 이 집회의 ‘배후세력’

들이 NL이든 PD든, 혹여 봉하마을에서 노무현이 염력으로 조종하고 있는 것이든, 그게 기성세대보

다 더욱 막강한 정보력을 가지고 성장해 온 지금의 청소년층에게 일정한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

하는 것일까? PC방에 가거나 야자시간에 자기에도 바빠 죽겠는 고등학생들한테, 영어학원 가거나

취업면접 동아리 정모에 가기도 정신없는 대학생 애들한테 고급 송월타올이나 만 원짜리 한 장 건네

면 당연히 나와서 뭔 말인지도 모르는 피켓을 들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꼰대들은 정보

화 시대, 탈권위 시대, 그리고 개인주의 시대의 국민들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 하고 있다.

-물론 조중동의 경우에는 이렇게까지 무식하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배후세력’이라는 프

레임frame으로 또 한 번의 음모론 달성과 자기 보신에 훌륭히 성공했다.-


여담인데, 교육부는 일선 학교에 ‘학생들의 집회 참석을 제지하라’는 공문公文을 당당히 내려보냈다

고 한다. 나는 명백히 이명박 정부의 비판세력이지만, 이 정보를 접하면서 마음 속에 연민이 드는 것

을 어쩔 수 없었다. 저렇게 덜떨어진 짓을 하니 조중동한테도 욕을 먹지. 조중동 및 꼰대들이 원하는

건 사회가 은밀하게 지금처럼 유지되는 것인데, 이명박은 자꾸 티나게 덜떨어진 짓을 해서 어두운 면

들이 드러난다. 쇠고기 수입 때도 작작 엎드렸어야지, 적당히만 엎드렸으면 잠깐 시끄러웠다가 늘 그

랬듯 지나갈 터인데 세계 1위로 엎드려 대니 국민들이 모를 수가 있나. 그런 꼴을 보고 있으면 때때

로 이명박이 김영삼보다 더 바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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