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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2

잡감. 짧은. 길이도 깊이도.





제부도 사진을 찾기 위해 'pictures'폴더를 뒤집어 엎고 종류별로 준비하면서 한 번도 쓰지 못 한 '굿

닥터'공연 사진들을 찾았다. 그러나 조도가 형광등의 몇 배나 되는 무대조명 아래서 얼굴 윤곽을

뚜렷하게 보여주기 위해 얼굴에 덧씌운 무대분장들은 평범한 불 아래에서는 그 존재감을 십분 발휘

하고자 발악을 하는 탓에, 차마 사진으로 올릴 용기가 나지 않아 아마도 준비중에 찍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멀쩡한 사진들을 올린다. 무슨 얘기가 저렇게 재미있었을까. 기억이 나질 않네.



공연이 끝나고 나는 한동안 무악에서 하는 공연들에 가지 못 하였다. 다행히도 조금은 느지막히

공연을 하는 동아리들이 있어 근래에는 몇 개 갈 수 있는 행운이 있었다.


무대를 보면서 괜한 애상감에 젖곤 했던 것이 그 이유였다. 뭐, 물론 나 혼자 우렁각시처럼 일한

것도 아니고, 무대디자인도 온통 내 손으로 한 것도 아니고, 무엇 하나 나 혼자의 손으로 한 것은

없지만. 이놈의 무악극장에 어떤 무대를 어떻게 쑤셔 넣어야 할까, 하고 밤에 혼자 남아, 혹은 아침에

혼자 먼저 학교를 찾아 머리를 싸쥐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정말로, 내가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더 애착이 간다는 것은 아니다. 문자 그대로 미친듯이 일해줬던 우리 송지희

님,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되어 평소의 허풍떠는 버릇을 단단히 고쳐 놓으려고 시켜본 일을

거뜬히 해낸 차기 연인 무대감독감 김신각군. (무쌍을 무사히 빌리려는 개인적 의도는 0%임.  ...약

20%임.)

이외 설명하는 것을 못 알아들어 큰 일들은 못 하였지만 의지는 넘쳐났던 니나. 감히 무슨 일을 하

였다고 내 입으로 외람되게 말할 수 없는 동기님들.  그러나 나는 이러한 감정을 혼자 독차지하고

자 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떳떳할 수 있었다. 다 같이 애착 가지면 좋잖아. 지난 건 지난 거지만.


벌써 공연이 끝난지도 50여일이 지났다. 게다가 이번에는 세미나도 그렇고 오고 가는 이야기들도

그렇고, 다음 공연에 대한 담론들이 굉장히 빨리, 그리고 자연스레 나오는 편이라 이미 오래전에

지나가 버린 듯한 기분이 들지만, 온 힘을 들여 처음으로 세워 보았던 연극, 정말 재미있었다.


뭐, 인생에 갖는 의미도 뭔가는 있을 테고 깨달은 것도 뭔가는 있을 터이지만, 가장 먼저는 재미있었

다는 것이다. 정말이지 연극을 접할 수 있던 난 행운아다. 앞으로 그때 연극 안 했더라면 요모양

요꼴로 살지는 않았을텐데라고 생각할 때가 올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그때 얘기다.



그 연극이 다시 돌아온다. 그것도 더욱 치열할 것같은 모습을 살랑살랑 내비치면서. 다시 이 안의

연극변태가 살아나기 시작한다. 다시 간다, 최대호. '이' 최대호님 다시 나가신다.  다 죽었어.


굿 닥터 얘기는 이제 이걸로 그만 해야지.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연극동아리 제 19회 정기공연

<굿 닥터>, 안녕. 이젠 술자리의 담화거리로 물러나 줘.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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