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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3

이사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었을 일이지만, '이사'의 '이'는 '옮길 이', '사'는 '일 사'자였다.

실제적으로 한 일은 없어도 여하튼 이사의 준비를 시작하였다. 서울의 하숙방에 있는 짐들을 택배로

부치면 인천의 방 안에 자리가 부족할 것 같아 내려올 짐들을 미리 예상하고 거기에 맞는 자리들을

치워 두기도 하고, 가구의 새 배치를 계획해 보기도 하였다.


스무살부터, 매해 겨울마다 숙소가 바뀌는 바람에 짐을 옮기느라고 한바탕 소동을 벌이고는 했었지

만 이번에는 한동안 없을 완전한 정리라 생각하니 잡감이 든다. 생각해 보니 여러가지로 할 일들이

있었다.


일단, 신촌으로 지정해 놓은 TTL지역할인을 해제해야 할 것이고, 학교에서 빌려 온 책들을 모두

반납해야 할 것이고, 휴학생은 공제가 덜 되므로 휴학하기 전에 건강검진을 받아봐야 할 것이고,

서울에서 있었던 관계들에 모두 작은 안녕을 고하고 와야지, 서울에서 하는 과외는 되도록 이틀

연속으로 잡아 여관방이나 찜질방등에서 밤을 보내고 가야겠는걸, 짐들 중에 줄 것이 있는 후배들

은 따로이 만나 밥이라도 사 줘야지, 그리고 휴학을 하게 된다.


근래에, 인천에 며칠간 있다가 서울에 올라가서 하숙방에 들어갔을 때에 문득 반바지로 갈아입고 뒹

굴기가 머쓱했었는데, 아마도 마음은 이미 이사를 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의 새 생활의 시작. 그리고 그 차이에 어색한 느낌을 가지게 해 줄 정도로 나를 푹 담구어 주었던

서울의 생활. 고맙게 되었다. 몇년후에는 다시 서울에 가야 하겠지만 그것은 다른 환경과 다른 마인

드의, 새로운 텀의 시작이겠지. 삼년동안 신세 많았다.


남은 것은 잡일이다. 무슨 일이든 그렇지. 마음을 옮기는 일이 힘들지. 이사. 있던 곳을 떠나가는 일.


마음의 이사가 많아 머리가 소란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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