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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3

이름

1.

어느날인가, 천사가 하느님한테 물어 봤단다.

'인간은 저만 다른 동물들과 다르다고 저렇게 잘난 체들을 하는데, 도대체 왜 그들만 다르게 만드

신 겁니까? 아니, 그건 둘째치고, 그들이 동물들과 뭐가 다른 건가요?'

그러자 하느님이 말했단다.

'이런 일이 있었단다.'


태초에 하느님이 그의 창조물들을 빚어 내는데에, 서로 다른 동물들이 뒤섞여 있는데도 함께 노는

것이 보시기에 흐뭇하여 뒷짐을 지고 찬찬히 살피는데, 유독 인간만이 어울려 놀지는 않고 이리

저리 활발하게 다니며 재잘대더란다. 그래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가 궁금해진 하느님이 가만히 다가

가 얘기를 듣자 하니, 이 인간이란 창조물이

'너의 이름은 코끼리. 이제 나는 너를 알았다.'

라고 말했단다.



2.

오늘 낮에는 영화 '데어데블'을 보았다. 다른 수퍼히어로들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지는 커스튬 센스

나 어설프게 스파이더맨을 따라하는 트레일러등 여러가지로 마음에 들지 않는 영화라서 비디오로

보기에도 꺼려졌지만 기대치가 워낙 낮으니 시간때우기로는 괜찮겠지 싶어 빌렸는데, 어, 세상에.

그렇게 재미없는 수퍼히어로 영화는 보다보다 처음 봤네. 제이 앤 사일런트 밥이 백배정도 나았다.

여하튼, 거기에 보면 벤 애플렉이 처음 그 여자주인공 (못생긴 여자주인공. 젠장.)을 만나고서는

이름을 알려주지 않자 기어이 알아내기 위해 몰래  따라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걸 보고 있다가

예전에 어디서 읽었던 그 얘기가 생각난 것이다. 인간은 이름으로 상대물(物)을 인식한다는.



3.

조금만 더 나아가 봐도,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본질에 관계없는 것들에 의해 그 상

대물을 잘 못 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결국 오락 조조전때문에 사고가 끊기긴 했지만 언젠가는

다시 생각해 볼 법하다라고 느꼈다.



4.

지저분한 글의 마지막에, 다음에 다시 사고를 연장해 볼 만한 꺼리가 생각나 덧붙여 적는다.

기억난 것은 만화 '몬스터'에서 읽었던 한 마디였다.

'그러나 괴물의 이름을 불러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요한. 멋진 이름이었는데.'


관계와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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