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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4

온라인 시대의 소통에 대하여 (1)

소통이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은 하나의 인간이 어느덧 모여있는 대공동체의 안에서 문득 개개의 차이를 느끼게 되었

을 바로 그때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차이를 느끼게 되었다고 해서 그것을 소통이라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다. 어떤 동물들은 서로의 차이를 뚜렷이 인식하고도 평생을 사막에서 홀로 살

아가기도 한다. 그러니 이렇게 생각해보자. '차이'를 알고 그 '간격'을 좁히려, 혹은 넓히려 노력

하는 것. 이 모두를 과감히 싸잡아 소통이라 부르기로 하자.


소통에의 욕구는 기본적으로 필멸적 존재인 인간의 태생적 한계에 근원한다. 인간은 모두 언젠가

죽게 되어있다. 언제까지나 살아 있으면서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의 모든 사람과 모든 차이가 한 점

으로 수렴할 수 있을 때까지 대화할 수 있다면, 아마도 소통의 절박함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사라져 가는 존재로서 인간은 자신을 남기고 싶어한다. 당장 자신의 몸을 유지하기 위해 식욕이

있고, 자신의 분신을 남기기 위해 성욕이 있다. 그리고 그보다 넓게 혹은 오래 남기 위해, 즉 기억

이나 기록으로 남기 위해 인간은 소통에의 욕구를 갖는다. 이것이 대화등의 사교행위, 혹은 의미없는

성행위, 그리고 예술적인 창조행위등으로 나타난다.


여기에서 인간의 이기심에서 비롯한 딜레마가 발생한다. 필멸적 존재로서의 서로에 대한 깊은

공감과 동정을 갖는다면 소통이 좀 더 쉬워질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인간이 온 신경을 쏟아 남기

고 싶어하는 것은 '나'이다. 소통의 일방향성이라는 문제의 원인은 바로 이것이다. 자기를 말함으로

써 상대방의 머릿속에 또하나의 나를 남기고자 하는 시도는 본능적이지만, 내 머릿속에 남을 새기고

자 하는 시도는 다분히 의식적이다. 이것이 오늘날 앉아서 환자의 말을 차분히 들어 주는 것이

주요 업무인 정신과 의사의 미래가 화창한 이유이다. 이런저런 비유를 들지 않아도,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로, 말을 잘 하는 사람은 인기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말을

잘 들어 주는 사람은 언제나 사람들의 호감을 사기 마련이다. '나'를 남기게 해 주는 사람이기 때

문이다.


인간이 필멸적 존재라는 것도, 인간의 본성이 이기심이라는 것도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그러니 신라시대의 사람도, 조선시대의 사람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 문제로 고민해 왔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특히 이 시대에 더욱더 소통에 관한 관심이 많은 것은

무슨 이유일까.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그때보다 배때기가 뜨뜻하기 때문이겠지만 그건 일단 접어두고 생각해보자.


나는 그러한 현상의 주요한 원인이 온라인의 발전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세대는 온라인의 발전

을 그야말로 온몸으로 겪어 왔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연애편지도 제법 써 봤고, 중학교 무렵 마음에

있는 여학생에게 연락을 하기 위해서는 부모님이 받으면 어쩌나 두근두근함을 무릅쓰고 그녀의 집

전화번호를 눌러야만 했다. 부모님이 받더라도 아무 말도 없이 너댓번쯤 끊었다가 다시 걸었다가 하

면 결국에는 그 아이가 받게 되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소개팅에서 만난 그녀의 삐삐음성을 쉬는

시간 10분내에 듣기에 학교 공중전화의 줄은 너무 길었다. 운좋게 씨티폰을 가진 친구의 마음을 사

게 되면 공중전화 기지국 근처까지 떨리는 마음으로 달려갔었다. 486이나 119, 38317이라도 떠 있으

면 100m 비공식 10초대라도 끊었을 것이다. 또한 우리의 선배들은 꿈도 못 꾸는 일이었겠지만 우리

는 게임방에 숨어 전지현의 마이젯프린터 CF를 다운받아 보며 밤새 침을 흘리기도 하였다. 진도희만

알던 우리에게 진주희를 가르쳐 준것도 인터넷이었다. 대학교에 온 뒤 조모임은 일단 프리챌 커뮤

니티를 만든 뒤부터 시작되었고, 다음이나 다모임에서 우연히 만난 십수년전의 그녀와 반가운 재회

뒤에 부적절한 기억을 갖게 된 것도 꽤나 보편적인 경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메신저에 뜬 수많

은 사람들과 하나하나 인사를 하기가 부담스러워 접속을 피하는 내가 스스로 온라인 촌놈이라 생각

하게 만드는 TV CF도 나왔다. 알지도 못 하는 애들이 메신저에서 봤던 얼굴만 기억하고 현실세계

에서까지 아는 척하는가 하면 드디어 오프라인의 상징인 노교수님까지 메신저상의 아이디로 출석을

부르는 그 CF를 보며 나는 내가 시대에 뒤떨어졌음을 절감했다.


세상은 점점 더 편해지고 넓어진다. 그럼에도 우리는 옛시절에 대해 향수를 갖는다. 그시절의 멋,

이라든가 하는 등의 말로 포장되지만 그러한 감정들이 대중적 공감을 얻는 데에는 현실적인 불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분명히 소통을 하는 데에 더 많은 수단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예전보다 더 소통

이 쉬워진 것 같지는 않다. 이것이 불만이다.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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